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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ding May 02. 2016

이별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절벽 끝에 서있는 사이

서로 양보할 수 없기에 이별을 생각한다.

이별을 앞두고 절벽 서 있는 사람들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많이 하곤 한다. 내가 이렇게 많이 양보하고 사랑했는데 변하지 않는 상대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며 지쳐간다.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땐 이런 단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지만 그 사람과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지내다 보니 안보이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처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양보를 해보려고 하지만 계속된 양보에 지쳐 점점 그 사람을 놓게 된다. 결국 이별하면 아픈 걸 알지만 이별을 고하게 된다.


정말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기다릴 수 없다면 이별을 말리진 않는다. 하지만 정말로 해볼 만큼 해보고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건지 물어보고 싶다.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땐 누구보다 가까이 서로 붙어있지만 점점 서운함과 아쉬움이 쌓여 멀어지고 만다. 내가 한 발 물어날수록 그 사람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고 더 이상 물러나면 어딘가로 떨어질 거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뒤를 돌아보니 절벽이 보이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된다. 서로 절벽 끝까지 양보하고 배려했다 생각하고 더 이상 물러나면 우리 사이, 그리고 나에게 큰 상처가 생길까 두려워 이별을 선택하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고 얼마나 쌓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오래 버텨왔고 기다려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고쳐갈 수 있고 조율해나갈 수 있는 연인이 눈앞에 있는 상황을 못 이겨 헤어짐을 보면 안타까움에 글을 써보려 한다.





해볼 만큼 해봤어?
정말 이제 끝이야?



이별까지 생각하는 연인들은 결국 서로를 변화시켜보려고도 했고 나 스스로도 변화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상대를 변화시키자니 싸움이 많아지고 결국 무엇하나 변한 것 없이 계속 제자리를 돌게 된다. 스스로 변화해도 계속 양보하고 배려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렇게 조금씩 실망하고 또 한 발자국 계속 양보하다 보면 나 홀로 절벽 끝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상대가 빨리 변하지 못함에 서운하고 나 혼자만 노력한다고 생각하고 혼자서 이별을 준비하게 된다. 연애는 항상 이야기하는 것처럼 `서로`, `함께`하는 사랑이다. 하지만 상대가 정말 노력하고 있는지 변화할 준비가 안된 건지 혼자 단정 짓고 의심만 하게 된다. 결국 양보하고 배려했다고 생각하지만 끝에선 이렇게 이기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게 이별이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충분히 알고 있고 그 사람도 알고 있을 거다. 심정의 변화가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눈치챌 테니깐. 하지만 왜 그런지 모른 채 조심스럽게 기다릴 뿐이다. 결국 서로 충분히 조율하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된다.


만약 절벽 끝에 서있어 서로 양보할 수 없다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먼저 떠올려보자. 이전에 썼던 글처럼 사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하기보단 양보해도 왜 변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얼마나 양보했고 어떻게 배려해줬는지부터 생각해보자. 그 사람이 연락이 늦다고 무작정 화를 내진 않았는지, 그 사람이 실수했기에 무작정 따지지 않았는지 생각하면 딱히 많은 배려를 한 것도 아니다. 결국 그 사람의 변화를 기다리다 지쳐 포기한 것뿐이다. 결국 어떤 생각을 하고 문제점에 대해서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는 그 사람밖에 모른다. 결국 이 문제점을 고쳐나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내 의견을 말하는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대화역시 무작정 싸우고 누구의 잘잘못인지를 가려내는 대화보다는 내가 이만큼을 양보하고 배려할 테니 너 역시 얼마큼 나에게 양보해줄 수 있겠니 처럼 서로 오고 가는 대화를 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조율 점을 찾을 수 있게 될 거다. 결국 처음부터 이렇게 대화할걸 하며 금방 해결될 사소한 다툼으로 지나갈 수 있을 거다. 사실은 절벽에 서있었던 게 아닌 그 사람이 등 뒤에 있었는데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서운해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떨어지면 아플까 두려워
결국 높이도 모른 채 포기한다.



하지만 정말 이제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범위가 극에 다 달아 이별만 떠오른다면 마지막 딱 한 발짝 더 양보해보면 어떨까. 조금만 더 뒤로 가면 절벽에서 떨어질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정말 절벽에서 떨어지게 될까? 마지막 딱 한 발자국만 더 양보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설령 내가 양보하다 절벽에서 떨어져 상처를 입는다 한들 이별의 아픔보다 더 아플까 생각해보자. 내가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이별의 아픔이 더 크게 남을 거다. 또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절벽에서 떨어지는 나를 그냥 구경만 하고 있을까? 결국 한 발짝 물러나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멀어진 거리만큼 달려와 내 손을 잡아 떨어지는 날 구해줄 거다. 적어도 그만큼 사랑했던 사람이니깐. 잠깐의 아쉬움 때문에 뻔히 눈에 보이는 아픔을 그대로 받게 두지 않을 테니깐. 혹은 그 사람이 너무 늦게 달려와 내 손을 못 잡아준다고 한들 절벽이라 믿었던 그곳이 그렇게 높지 않은 계단 정도 일수도 있으니깐.



눈앞에 멀어지는 네 모습,
떨어질까 무서워 이별을 선택했어.

멀어지던 네가 내 등 뒤에 있는 줄 모르고,
떨어질까 날 받쳐주는 줄 모르고,
생각보다 낮은 절벽인 줄 모르고,

눈앞에 멀어지는 너였지만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가왔다니.


_by pu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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