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식, 늦은 귀가
돌아보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지구 반 바퀴를 뜬눈으로 날아야 하는 철새는 긴 목을 가슴에 비빈다. 얼마나 가야 할지를 따지는 것은 몸 밖으로 나간 정신처럼 얼마나 되돌아올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산, 올라갈 땐 괜찮았는데 왼쪽 무릎뼈가 쑤셔 주저앉았다가 한쪽 발로 하산할 때, 나는 내가 지난 세월에 얼머나 날뛰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울지도 못했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13 울지도 못했다
조금 울고 싶어서 꺼낸 시집. 표제시를 찾다가 제목이 끌려서 읽었다. 돌아보지 말라고 하면 더 돌아보고 싶은 게 사람이다. 그래서 자꾸 길 위를 서성이며 돌아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늦은 귀가처럼 늦은 후회를 반복하겠지만, 어쩔 수 있나. 세상의 모든 길을 다 알고 갈 수는 없다. 막다른 길이 나올 수도, 돌아가야 할 수도, 아님 이도 저도 아닌 교차로에 빠질 수도 있다. 무릎을 혹사해야 할만큼의 뼈아픈 댓가를 치러야하는지도 모른다. 돌아갈 수 없어서, 문득 돌아볼 수밖에 없는 인생의 수많은 갈래에서 후회를 짐처럼 여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울지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