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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민 Jan 19. 2016

냉장고 주인들은 왜 분노받이가
되어야 하나?

- 게스트 마녀 사냥의 문제점 

   지난해 한국을 강타한 수저론은 우리나라 청년들의 삶을 더욱 힘 빠지게 만들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잡히지 않는 꿈과 유리천장에 부딪히는 청년들에게 수저론은 씁쓸한 현실을 증명해주는 것만 같다. 수저론에 따르면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이 청년들에게 그대로 세습된다. 별 능력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잘 사는 현실은 한국판 카스트 제도를 연상시킨다. 보이지 않는 계층의 구분은 청년들의 의지까지 꺾어버리고 있다. 20대 희망퇴직도 이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헬조선이라는 씁쓸한 유행어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언론에서 수저론이 부각되어 미디어에 끊임없이 노출되다보니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도 한층 높아지는 모양새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허무주의는 물론, 불안한 미래에 사주에 빠진 젊은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침체된 경기에 모든 미래가 불안해진 젊은 층의 발걸음이 철학관, 사주까페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또 크게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 조절 장애에서부터 작게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악플 세례까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또한 사회적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분노가 댓글이나 연예인들에 대한 무차별 악플과 인신공격 양상으로 번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날씨 기사에 의미 없는 남녀의 댓글 전쟁, 연예인의 일상 기사에 대한 부분별한 언어폭력 등 그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는 추세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2015년 미디어를 강타했다. 10인의 셰프의 음식을 구경 할 수 있는 재미와 연예인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듯 한 희열은 대중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했다. 인피니트 성규, 하석진 등 남자 연예인의 냉장고는 위생과는 거리가 먼 인간적인 모습으로 큰 열광을 받았다. 또 GD나 박찬호, 강수진 등 사생활 노출을 꺼려하는 유명인들의 냉장고 속 진귀한 식재료는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재미와 유익함을 고루 갖춰 열풍을 일으킨 “냉장고를 부탁해”가 어느 순간부터 네티즌들의 이유 없는 뭇매를 맞고 있다. 최근 발생한 이하늬, 최정윤 냉장고 논란은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조금은 당혹스러울 수 있는 비난 여론이 형성되었다.      


 시청자들이 느끼는 냉장고 속 재료들에 대한 현실적 괴리감은 냉장고 주인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그 불만은 개연성 없는 인성 논란으로까지 이어지며 이하늬, 최정윤은 악플러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녀들의 “평가 아닌 평가”가 셰프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스튜디오 녹화 당사자들은 느끼지 못하는 실체 없는 충돌은 아무렇지 않았던 대중들까지 색안경을 끼게 만들었다. 도 넘은 악플은 아무런 제약도 규칙도 없이 빠르게 여론을 형성하고, 의도치 않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냉장고 주인들은 이유 없는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개인이 가진 불만을 애매한 약자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예인을 약자라 할 수는 없지만 어찌 보면 부분별한 공격을 감내해야 하는 소위 정신적 약자임은 분명하다. 수저론과 함께 각박한 사회에 만연해 있는 삶에 대한 불만은 이제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각자의 삶에는 그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내 삶이 힘들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비난하고 깎아내릴 권리는 없다. 연예인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해서 대중들의 무차별 공격을 다 받아내야 할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고 도를 넘는 비난에 상처받는 보통 사람들이다. 나와 다른 삶, 미디어 속에서 삶의 괴리를 느끼는 대중들에게 분노는 발생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표출 수단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수준으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 특정 태도에 대한 정당한 비난과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내 삶과 다르다고 해서 단순히 한 사람을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행태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대중들의 심리는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세상에 좌우되고 있다. 모든 미디어는 우리 인간 감각의 확장이라고 하지만 이 감각이 개개인의 인식과 경험을 형성하는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테크놀로지가 새로운 인간환경을 조성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정신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성숙한 미디어 수용과 올바른 인터넷 문화 조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방송, 인터넷 미디어의 올바른 여론 형성이다. 기사는 클릭수 전쟁이라 했던가? 그 의미 없는 클릭 전쟁에 죄 없는 희생양이 되고 있는 불특정 다수는 계속해서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여론을 형성하는 미디어도, 이 여론에 의견을 개진하는 대중들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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