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누구나 오길 기다리고 가길 슬퍼하는 주말이다. 이틀 중 토요일은 합격 가능성이 희박한 오디션에 또 참가한 아이를 마냥 기다리느라 하루가 다 갔다. 오라는 시간에 맞춰 갔지만 행사 진행이 매끄럽지 않았는지 3시간 반을 더 기다렸다가 1분을 보여주고 칼퇴장을 하고 돌아왔단다. 날씨는 참 좋았다. 바람이 꽤나 요란하게 불었지만 햇살만큼은 봄의 그것이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붙인 탓에 피곤함에도 생각보다 일찍 잠들지 못했다.
일요일이었던 오늘은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다. 아이가 2년 정도 조르고 있던 스키장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무렵, 다니는 학원에서 매년 그렇듯 스키캠프를 공지했는데 이번에는 꼭 참가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매년 잘만 유치되던 행사가 하필 올해 참가자 인원 미달로 취소된 것이다. 그렇게 두 달이나 미루고 미루던 스키 체험을 오늘에서야 어찌어찌 가게 되었다. 하필 어제 날도 17도까지 올라 뜨뜻했고, 오늘 아침에는 부슬거리는 비바람이 내렸으며 황사와 미세먼지가 최최최악을 찍는 오늘 말이다. 어쨌든 아이를 깨워줘야 했기 때문에 6시 반에 일어나야 했다.
아이가 나가고 난 후에도 강아지 아이들이랑 조금 더 누워있었다. 애들은 보통 우리가 일어날 때까지 잠자코 잠을 자는 편이다. 8시 반이 넘어서 스멀스멀 일어나 빨래를 돌리고, 강아지들 아침밥을 챙겨주고, 나도 빵을 대충 먹은 후에 아침 배변산책을 다녀왔다. 그러고 나서는 뭐 했더라...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스마트폰 캘린더에 4개쯤 저장해 두었는데, 그중 하나 글쓰기 외에는 결국 다 다른 날로 옮겨버렸다. 당장 오늘 하지 않아도 별로 상관없는 일들이기는 하니까. 올림픽 하이라이트를 훑어보다가 자녀양육에 대한 전문가의 영상을 보다가 어느새 아이들 점심을 주었다. 원래는 1일 2식이었는데, 나이가 많은 한 친구의 소화력이 약해졌는지 사료토를 하는 횟수가 늘어서 급여 횟수를 늘리는 중이다(다행히 오늘은 한 번도 토하지 않았다). 나는 뭘 먹었더라... 명절 때 엄마가 싸주신 약과랑 샤인머스캣을 먹었나 보다. 강아지들 장난감을 꺼내서 놀아주다가 학학거리며 체력이 다소 빠진 것 같아졌을 때,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었더니 살짝 차가운 기운이 올라왔다. 주섬주섬 전기장판과 이불을 가지고 나와 거실 한복판에 깔고 아이들과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어제보다 한층 거세진 바람으로 방충망이 이쪽저쪽 드르륵거리며 요란을 떨었다. 스키를 타러 간 아이의 약한 기관지가 걱정되었지만 중간중간 전화를 걸어온 아이는 신이 잔뜩 난 목소리로 자기가 오늘 강습반 참가자 중에 에이스라고 칭찬받았다며 재잘재잘 자랑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깥의 소란함에도 집안에 작게 틀어둔 '용감한 형사들' 재방송을 ASMR 삼아 따뜻해지고 있는 이불속에서 강아지들과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가끔씩 작은 녀석이 현관 밖 인기척에 '꺙'하고 소리를 내서 깊은 잠은 들지 못했지만, 40분 정도는 자다 깨다 했다. 나는 평소에 소파나 바닥에 잘 눕지 않는 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 중 일부는 성장환경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너무 편하면' 스스로 게으른 느낌이 들어서 불편하다. 쉼과 게으름의 중간이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한 시간 동안 뭔가에 집중하고 난 뒤 10분쯤 화장실을 가거나 스트레칭을 하는 것? 쉼이다. 그 외에는? 게으르다고 느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굉장히 게으르고 태만한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이런 생각이 일상적으로 든다는 것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고, 항상 뭔가를 해야 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안다.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삶에 적용이 되지 않아서 나는 게으른 자신을 책망하며 하루를 마감하기가 부지기수이다. 주변 사람들이 '좀 누워'라든지 '잠깐 쉬어', '눈 좀 붙여' 같은 말을 자주 한다(이번 명절에도 몇 번이고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대게는 거절한다. 잘 시간이 아닌데 눕거나 낮잠을 잔다면 그날은 정말 피곤했거나 어디가 불편한 날일 정도이다. 그런 컨디션일지라도 스스로에게 딱히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오늘은 낮잠을 잔 것이다.
불편함이 물밀듯 흘러들었다. 오늘도 게으른 자신이 한심했다. 누운 지 40분 후에 나를 따라 일어난 강아지들을 만져주고는 2차 배변산책을 다녀왔다. 황사바람이 셌기 때문에 오래 걸을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 환기를 시키기에 적절치 않은 날씨라서 그냥 문을 닫고 청소기를 돌려버렸다. 청정기, 게으른 나를 대신해 열심히 일해주렴. 스키장을 간 아이가 올 때가 되었기에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저녁에는 강아지 아이들에게도 매일 화식토핑을 얹어주느라 늘 냄비 하나는 써야 한다. 오늘 토핑의 고기류로는 특별히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홍두깨살을 삶았더니 애들이 평소보다 코가 바빠졌다. 자기들이 느끼기에도 닭안심이 일반식이라면 소고기는 특별식의 느낌인가 보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부스스한 머리칼에 빨갛게 차가워진 볼로 모양새가 말이 아니었지만, 눈을 반짝거리며 오늘 자기가 얼마나 멋졌는지 늘어놓았다. 점심도 많이 먹었지만 스키를 타서 배가 많이 고프다며 어서 저녁을 차려주길 기대하는 모습을 보니 시간 맞춰 밥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 다행이라 여겨졌다. 식사 후에는 뒷정리를 하고 씻고, 자기 전 마지막 배변산책을 다녀오는 것이 루틴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오늘 꼭 해야 하는 일 중에 안 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 쉬는 날 낮잠 잘 수도 있지 않나? 생산적인 일은 안 할 수도 있지 않나? 내일 해야 할 일을 꼭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알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쉬는 날 쉬어도 마음이 불편한 채로 월요일을 맞이하는 내가 참 피곤해서 고개를 젓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