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즐거웠어, 푸딩."
"가는구나, 코코. 고생 많았어."
"고생은 뭘. 앞으로 살게 될 집이 어떨지가 걱정이긴 해. 좋은 사람들이면 좋겠어."
"너처럼 덩치 큰 유기견을 입양하는 사람들이라면 나쁘진 않을 거야."
"무슨 소리야, 덩치 큰 유기견이라니. 지금은 푸딩이 네가 나보다 더 덩치라고."
"거짓말하지 마. 지금까지고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고 네가 더 덩치야."
"푸딩... 거울 좀 보자. 킥킥. 그건 그렇고 너는 어때? 너 만나러 자꾸자꾸 오는 아주머니가 너 안 데리고 가신대?"
"모르겠어. 아주머니가 확실히 나를 엄청 예뻐하시긴 하는데, 매번 혼자 집에 돌아가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사람들은. 예뻐라 할 때는 언제고 돌아설 때는 매정하기 짝이 없군."
"어떻게 되겠지, 뭐. 너야 말로 앞으로 집 밖에서 고생하지 말고 뜨끈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
"부디, 제발. 좋은 사람들이어라! 기왕이면 마당도 있는 집이면 더 좋고!"
"욕심이 과해."
"좀 그랬지? 킥킥."
옆 방 코코는 꽃이 피기 시작하던 좋은 날 드디어 입양을 갔다. 녀석은 나보다 조금 먼저 입양센터로 왔었고, 나보다 먼저 특별 임무를 맡았다. 얼마 전부터 행사에 자주 나가지 않는다 했더니 입양 갈 준비를 하고 있었나 보다. 코코는 늘 내가 더 크다고 말했지만, 사실 비슷비슷하다. 심지어 녀석은 까만 털을 가졌고 나는 그에 비해 훨씬 밝은 금색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까만 털을 가진 강아지보다 밝은 털을 가진 강아지를 더 좋아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녀석이 나보다 나은 점은 아마 나이뿐일 것이다. 아마도. 코코는 아직 4살 정도이기 때문에 눈이 반짝반짝거린다. 나도 어디 가서 할머니 소리 들을 모습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숫자에 예민한 것 같다. 언젠가 바깥에서 코코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올까?
홍보생활을 한지도 벌써 일 년이 훨씬 넘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몸이 예전 같지 않기는 하다. 이곳 센터에 처음 온 것은 더워지기 시작하던 무렵, 그리고 가족을 찾지 못한 채로 교육견 생활을 시작한 것은 추워지던 때였다. 여기저기 홍보를 다니는 동안 꽃이 한 번 피었다가 아주 무더워졌다가 나뭇잎이 다 떨어지며 추워졌고, 또다시 꽃이 피었다가 이제 나뭇잎이 떨어지는 계절이 되었다. 모든 밤을 안전하고 배고프지 않은 센터에서 지내고 있지만, 날씨가 추워지니 여기저기 몸이 쑤셔온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찬 바닥 말고 따뜻한 이불 위에서 잠을 자야 개운할 나이라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나를 만나기 위해 봉사를 오신다. 라하는 학교를 가니까 방학 때나 주말에 가끔 따라오기도 한다. 어쩌다가는 라하가 솜뭉치를 데리고 오지만, 모처럼 견방을 나가 산책의 자유시간을 갖는 나로서는 솜뭉치에게 관심을 둘 시간이 없다. 코흘리개였던 솜뭉치도 벌써 한 살이 넘어 성견이 되었다. 그런다 한들 한 주먹거리인 점은 변함이 없다. 며칠 전에도 아주머니를 만났다.
"푸딩, 일주일 동안 잘 있었어? 살이 더 찐 거 아니야?"
'살 아니에요. 이거 다 털이예요.'
"어구, 이거 이거 등짝에 살집 좀 봐. 엉덩이도 토실토실해졌어."
'잘 먹는 건 건강한 강아지라고요. 하나도 안 쪘는데, 자꾸 뭐라고 하시네.'
"예쁘다. 우리 푸딩이, 예뻐. 점점 추워질 텐데 털이 있어서 일단은 안심이야."
'바닥에 이불도 있고, 따뜻하면 좋겠어요. 제 털로는 이제 부족해요.'
"오늘은 라하랑 하퐁이도 같이 왔어. 봉사 끝나고 나면 직원분께 말씀드리고 같이 얼굴 보자. 알았지?"
'뭐, 솜뭉치는 썩 좋지 않지만 라하 얼굴 정도는 괜찮죠.'
직원 언니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푸딩이가 요즘 살이 쪘어요."
'그런 건 말하지 마세요. 이미 아주머니가 흉보고 있다고요.'
"그쵸? 만져보니 찐 게 느껴지네요. 하하. 잘 먹나 봐요."
"먹성이 여전히 대단해요. 너무 찌면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까 요즘은 밥양을 조절하고 있어요."
'이런, 밥이 적은 건 기분 탓이 아니었어!'
"오, 확실히 조절이 필요하긴 하겠어요. 뱃살이 두리두리한 것이 귀엽긴 하지만 건강해야 하니까요. 푸딩, 너 내가 다음 주에 와서 또 볼 거야. 얼마나 빠져있나."
'귀여운데 살을 빼라니. 그건 말이 다르잖아요. 귀엽게 살찌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다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흥!'
아주머니는 늘 다정하게 말을 건다. 청소시간에 나가는 자그마한 운동장에는 나 말고도 많은 덩치들이 같이 있지만, 내가 돌아볼 때마다 아주머니는 날 바라보고 있다. 나는 처음 보는 다른 봉사자들의 냄새도 맡고, 직원들 뒤도 쫓아 다니고, 어쩌다 봉사자들이 손에 작은 간식을 쥐고 있는 날이면 아주머니는 뒷전으로 내팽개치고 간식을 따라다니기 바쁘다. 간식이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야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머니는 다른 강아지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도 나에게 마지막 한 입을 내민다. 마치 나를 위해 남겨둔 것처럼.
"푸딩아. 보고 싶었어. 엄마가 맨날 자기 혼자만 오고, 나는 잘 안 데려와. 보고 싶은데!"
'오, 그 사이에 키가 더 자랐나? 처음 봤을 때보다 점점 크고 있잖아.'
"라하는 학교랑 학원이랑 가야 하니까. 엄마랑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잖니."
"주말에 오면 되잖아, 나도 봉사하고 싶어."
"초등학생은 봉사 안 받는대요. 주말에는 개인봉사 자리가 거의 없더라고. 어쩔 수 없었어. 그래도 오늘 이렇게 푸딩이 볼 수 있으니까 다행이지?"
'음, 키는 자랐지만 아직 힘이 한참 부족해. 내 산책줄도 잡기 힘들겠어. 확실히 봉사는 무리인 것 같네요.'
"푸디이잉!"
라하는 항상 격한 동작으로 나를 껴안는다. 머리를 슬쩍 뒤로 빼보아도 소용이 없다. 이 친구는 아주 적극적인 어린이인 것이다. 처음 만났던 날, 얼굴이 울긋불긋하게 변했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은 그때만큼 아프지 않나 보다. 다행이다.
"라하, 얼굴 올라온다. 가서 헹구고 와."
"앗, 또... 응!"
다 나은 건 아닌 가보다. 저런...
"덩치!"
"...?"
"덩치! 여기!"
"야, 꼬맹이. 덩치라고 하지 마라."
"나도 왔어. 보고 싶었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아주머니가 예의를 안 가르쳐주셨나."
"엄마는 하퐁이 항상 예뻐해. 하퐁이가 뭘 해도 예쁘대."
"한참 언니에게 덩치라고 부르는 걸 아신다면 꿀밤이라도 주실텐데 말이야."
"꿀? 하퐁이 그거 알아. 엄청 달달한 거잖아. 꿀밤은 맛있어? 푸딩이는 먹어봤어?"
"어휴..."
역시 골치 아픈 녀석이다. 못되고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지만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수준이 안 맞는달까? 이렇게나 고생 한 번 안 해 본 녀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진하다. 하퐁이는 여전히 입양센터가 뭐 하는 곳인지 조차 모른다. 이곳에 있는 강아지들이 그저 큰 집에 대가족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이좋은 강아지들 정도라고 생각하는듯하다. 뭐, 세상에는 버려지는 강아지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걸 굳이 알고 싶은 강아지는 없을 테니까.
"푸딩, 하퐁이가 얼마 전에 여기 왔었어! 그때 뭐라고 하더라. 페... 페... 펫 뭔가라고 했어. 잔디밭에서 뛰뛰도 하고 간식이랑 강아지 음료수랑 선물도 엄청 받았어.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는 하퐁이가 개인기 보여주고 선물 받은 적도 있어. 대단하지? 멋지지? 하퐁이 똑똑한 강아지야."
"앉아, 엎드려, 기다려 같은 거는 개인기가 아니야. 가족이 있는 강아지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하퐁이는 손이랑 반대손이랑 코랑 하이파이브랑 우정팀도 할 줄 알아! 엄청나지?"
코랑 하이파이브랑 우정팀이라니. 그건 뭐람. 내가 모르는 거니까 일단 못 들은 척 넘겼다. 아마 하퐁이가 말하는 펫 뭔가라는 것은 얼마 전에 입양센터 앞마당에서 열렸던 축제인 것 같다. 직원들은 축제를 앞두고 한동안 엄청 바빠 보였었다. 어떤 강아지들은 얼마간 훈련을 해서 무슨 대회에도 나갔다고 들었다. 대회 이름이 '어질러따'라던가? 대회 이름이 참 어지럽다. 어지르는 일이라면 어릴 적 나도 꽤나 대단했는데.
이 날은 아주머니와 내가, 라하와 하퐁이가 한 팀이 되어 센터 앞 잔디밭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신이 난 나머지 펄쩍펄쩍 뛰던 나를 아주머니가 말리느라 애를 조금 먹으신 것 같았다. 매일 나오는 산책도 아닌데, 이럴 땐 쿨하게 내버려 뒀으면 싶은 마음도 든다. 어차피 나는 혼자서 멀리 가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아주머니는 어떻게든 차분하게 산책을 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산책 취향은 서로 다른 지도?
라하와 하퐁이는 이미 잔디밭의 끝에서 끝까지 달려갔다 왔고, 둘 다 헥헥거리면서 또 뛰겠다고 나섰다. 우다다다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뛰어다니는데 보는 내가 다 정신이 없었다. 하퐁이는 워낙 작은 탓에 아무리 빨리 뛰어도 내가 사슴처럼 시원하게 달려주면 금방 따라잡힐테지. 줄을 매고도 천방지축으로 날뛰다니... 부러웠다.
"저... 죄송하지만, 혹시 저희 사진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사진이요? 네, 그럼요. 폰 저한테 주세요."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안전을 위해 함께 산책현장에 나와 있던 직원 언니에게 사진을 부탁하셨다. 겨울의 문턱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기 시작한 잔디와 말라 떨어져 버린 나뭇잎들 위로 나와 하퐁이, 라하와 아주머니는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찍을게요. 하나, 두울. 푸딩아! 여기 봐야지, 푸딩! 한 번 더."
"오와, 엄청 잘 나왔어요. 가족사진 같네요. 감사합니다."
하늘은 참 파랬다. 약간 쌀쌀했던 바람은 오밀조밀 모여 앉은 우리를 휘감으면서 온기가 되어 사이를 빠져나갔다. 우리...
산책을 마치고 센터 안으로 들어온 뒤에 늘 그랬듯 작별의 시간이 되었다. 보통은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를 배웅해 주는데, '곧 다시 올게'라는 인사를 끝으로 직원이 줄을 건네받고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처음 한동안은 별생각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지만 언젠가부터 이 시간이 점점 다르게 다가왔다. 최근에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리에 힘을 주고 잠깐 버텨보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사이로 끝까지 아주머니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면 여지없이 밖에서는 아주머니가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목을 빼고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우리가 다 같이 사진을 찍은 이 날은 어째서인지 아주머니와 라하와 하퐁이가 먼저 건물을 나서게 되었는데, 아마도 새로 온 직원은 내가 배웅을 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늠름하고 의젓하게 봉사자를 배웅하는 강아지... 아니, 하마터면 나도 아주머니 가족을 따라 센터를 나갈 뻔했다. 온 힘을 다해 줄을 잡아끌며 아주머니 뒤를 좇아가보려고 했지만 하필 새로 온 직원은 힘이 센 남자였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이 남자를 뿌리치고 벌써 닫혀버린 유리문을 통과할 수 있을 리 없었고, 나도 모르게 "우엉!"하고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주머니 가족은 깜짝 놀라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지만, 잠깐 멈춰 서 있다가 이내 다시 돌아서서 가버렸다. 한두 번 헤어진 것이 아닌데, 처음 보는 뒷모습도 아닌데, 유독 마음이 쿡쿡 쑤셔왔다. 찬바람을 쐬서인지 눈이 따끔따끔해지고 코가 시큰시큰거렸다. 아주머니 가족은 집에 가서 아까 함께 찍은 사진을 몇 번이나 볼까? 혹시 유기견 행사에서 나와 기념사진을 찍는 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걸까? '가족사진' 같은 것에서 나는 대체 무슨 존재일까? 가족 셋과 버려진 강아지 하나...? 가족 셋과 가족이 아닌 강아지 하나...? 가족 셋과... 난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