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오디션의 벽

백문이 불여일견

by 푸하퐁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외출준비를 했다. 지난밤 늦게까지 버스표를 들여다보며 취소를 하고, 다시 예매를 반복했다.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시간을 고려해 점심 식사는 어디서 뭘로 할지, 저녁은 추우니까 따끈한 국물이 들은 걸로 먹는 게 좋을지 등도 미리 다 정해놨다. 네이버 길찾기와 카카오맵을 몇 번이고 눌러보면서 길과 노선, 방향도 계속 확인했다. 막상 자고 일어났더니 전날 밤 마지막 산책 때 염화칼슘을 밟아버린 푸딩이가 발 하나를 들고 다니고 있어 급하게 발을 씻기고 말리고, 소독과 연고처치를 하다 보니 계획의 시작부터 삐걱거리긴 했지만, 버스를 제시간에 맞춰 탈 수 있었다. 좋다, 위기를 해결하고 계획은 다시 궤도로 돌려두었다.


아이가 정한 메뉴인 버거킹 갈릭불고기와퍼세트로 점심을 해결하고, 근처 화장실에서 양치도 꼼꼼하게 한 뒤 약간의 백탁현상이 있어서 좋아하는 어린이용 선쿠션을 톡톡 발랐다. 거의 다 써서 잘 나오지도 않는 탱글탕후루 립글로스로 마무리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목적지의 역에 맞춰 내려서는 카카오맵의 현재위치를 확인해 가며 조금 걸었다. 지도에 나온 커다란 간판은 무심결에 옆을 보지 않았더라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작은 것이었지만 운 좋게 옆을 두리번거리다가 제대로 찾아냈다. '여기가 맞나?' 싶은 정도로 조용한 골목가. 마지막 코너를 돌자 저 앞에 스태프 목걸이를 착용한 사람들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첫인상은 항상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운명의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을지 모르니까 밝게 인사를 해보았다. 아이는 언제나처럼 내 손을 꼬옥 잡고 있었는데 어쩐지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손에 힘이 더 들어간 것 같았다. 슬슬 긴장이 되나 보다. 안내직원분들은 하나 같이 친절했다. 추운 날씨에 두툼한 패딩과 작은 난로 두어 개를 뒤에 두고, 자기 몸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꿈을 품고 온 아이들의 신원확인과 접수에 열심이었다. 14세 미만인 어린이라서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던 우리 아이의 신원확인을 마치고, 나는 작은 스티커를 하나 건네받았다. 이제부터 아이는 오디션 대기장소로 입장하고 나는 보호자 대기실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파이팅을 격하게 해 주었던가? 한 번 더 꽈악 안아주고 들여보낼 걸 그랬나 보다. 긴장반 설렘반으로 통통거리는 아이는 또 다른 직원분을 따라 대기장으로 갔고, 나는 반대 방향으로 안내받아 한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보호자에게 무료 음료를 제공한다는 사내 카페테리아였다.


아이의 오디션 시간은 오후 3시. 정해진 순서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간을 안내해 주었던 것이었다. 몇 시간이고 마냥 기다려야 되는 줄 알고 돌아가는 버스를 느지막이 예약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음료를 주문하러 카운터로 갔더니 중년의 여성분이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제공 메뉴가 많지 않았지만, 굳이 오래 보지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요청드렸다. 레지에 2,500원이 찍히길래 의자에 두고 온 지갑을 가지러 가려고 돌아서자 다급하게 나를 부르시고는 오늘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무료라고 하셨다. 덧붙여 리필도 해드린다고 말씀해 주셨다. 친절하시기도 하여라. 부자동네라고 이름만 들었던 곳에 올 일이 없었던 나는 괜한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있던 많은 직원들의 인간적인 친절과 배려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주문 후 벽에 붙은 안내문을 보니 오디션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추가 오디션이 필요한 경우는 더 걸린다고도 적혀있었다.


'금방.. 오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3시 30분이 조금 넘어가자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까 헤어진 곳에서 만나"라고 하고 짐을 챙겨 내려갔다. 두리번거리며 나오는 아이가 나를 발견했다. 한눈에 알아차렸다.


'잘 안 풀렸구나.'


아이는 나를 와락 안고 걸어가면서 울음이 터졌다. "어떻게 됐어?"라고 물어봤는데 가사를 절었단다. 나는 그저 웃으며 들어주었다. 6명씩 한 번에 심사장으로 입장했는데, 자기 말고는 다 댄스였다고 한다. 분명히 자기 옆에 언니가 춤을 출 때까지 가사가 생각났었는데, X표시가 있는 자리로 이동해서 자기소개를 하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졌단다. 첫 번째, 두 번째 실수했을 때 심사위원분이 긴장하지 말고 해 보라고 말해주셔서 세 번째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 번째는 성공했어?"

"응. 세 번째 때는 안 절었어."

"그럼 됐지, 뭐."

"안 된 것 같아."


아이는 말하면 말할수록 울음이 커졌다. 자기가 가장 어린 지원자였는데 언니들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왔었다고 한다. 어떤 언니는 작년에 최종까지 진출했다가 떨어져서 다시 왔다고 했단다. 언니들 화장도 해서 예쁘고, 댄서처럼 춤을 췄다고 했다. 아이는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자, 우리 아이의 꿈 중 하나는 바로 K-POP 아이돌, 많은 아이들의 꿈의 직업이다. 지금은 꿈이 많을 때니까 굳이 희망을 꺾지는 않았다. 어딜 가나 예쁘다는 소리도 늘 듣고 자라서 자기가 예쁜 건 알고 있다. 다만... 춤이나 노래, 박자 등등에 재능이... 별로 없다. 그게 큰 문제인 것이다. 나는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편인데, 이 성격이 글쎄 딸에게도 적용되어 버렸다. 아이의 잘하는 점과 부족한 점이 꽤나 명확하게 보인다. 물론 아직 기회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이이기에 지금 뭔가를 못해서 글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그러고 나서도 안되면 그때 생각하라는 주의이다. 대신 아이에게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하고 희망고문을 시키지도 않는다. 잘하면 잘한다, 못하면 못한다라고 피드백을 하는 편이다. 가능한 상처 주지는 않으려고 하지만,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솔직하게 말해준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네가 예쁜데, 노래나 춤을 잘하는 건 아니잖아. 표정 연기를 해서 광고모델이나 연기자 쪽을 지원해 보는 건 어떨까?"

"난 아이돌을 할 거야. 연기가 아니야."

"그래라..."


수년간 우리는 챌린지에 도전했었다. 나름대로 댄동 출신이었던 나는 굳은 몸을 가지고 열심히 안무를 따서는 아이에게 속성으로 가르쳐주었다. 며칠 정도 연습한 뒤 영상을 찍어 쇼츠에 올리기도 했다. 인기영상에는 근처에도 못 갔지만, 우리들만의 재밌는 추억으로는 남았다. 매번 이 친구의 무브에 탄식이 절로 나왔지만 아이 스스로의 눈에는 만족스러워 보였었다. '그래, 네가 좋음 됐지' 하고 넘겨왔었다.

'아이돌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어렵다, 그러니까 연습이라도 열심히 하던가 해라'라고 말했지만, 딱히 몰입하지도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그저 한낱 지나가는 꿈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땀을 흘린 만큼 늘지 않는다면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아이는 위로가 필요할 정도로 땀을 흘려 노력하진 않았다. 찔끔찔끔 깔짝대본 후에 거울을 보며 "나 좀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초긍정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아이가 현실의 벽을 목격한 날이었다, 바로 이 첫 번째 오디션이 말이다.


이 기획사의 오디션 마감일을 얼마 앞두고 짧은 영상과 사진을 가지고 지원했는데, 1차에 합격해서 2차 현장오디션 안내를 받았다. 1차에 얼마나 많은 인원을 러프하게 합격시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는 마냥 행복해하며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도 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머쓱하게 학원을 가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예상보다 깔끔하게(무척 빨리) 끝난 오디션 덕분에 생각보다 집에는 일찍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고부터 며칠 전까지와 비교하면 폭풍 연습에 들어갔다. 다음 주에도 다른 기획사에 지원할 예정이 있어서다. 세상에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많고, 재능러도 노력러도 많으며 자기 또래라도 프로만큼 잘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엄마가 백 번을 말해도 귓등으로 듣더니 한 번의 목격으로 체감해 버린 아이였다. 다행히 회복력이 좋아서 속상함은 금세 털었다. 이 친구의 장점이다. 충격의 하루였지만, 이게 바로 산교육 인가 싶다.


☆ 아이에게

다음 주에는 후회 없게 쏟아부어보렴. 올해 안되면 내년도 있고, 내후년도 있어. 그 사이에 아이돌의 꿈이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야. 다른 꿈을 찾으면 그때는 그거대로 준비하면 되고, 너는 기회가 많은 나이니까 괜찮아. 너 덕분에 엄마가 대형 기획사 카페테리아에서 무료 커피도 얻어 마셔봤다니,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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