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보다 브런치가 좋은 이유

by 푸하퐁

잘린 김에 전직한다고, 작년 한 해의 많은 시간을 인스타 힐링툰 작가가 되는 데에 썼다. 모아놓은 돈이 점점 줄어가며, 식구들 입에 들어가야 하는 먹을 것들의 양은 늘어가며 하반기부터는 다른 일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인스타 작가도전의 스코어가 처참했기 때문이다.


귀엽고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위로가 되는 문구를 추가한다면 피드 한 번에 인기작가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팔로워 늘어가는 재미라도 생길 줄 알았다. 소싯적 미술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던 나름대로 영광스러운 시절도 있었기에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가장 노릇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장, 두 장, 세 장... 열 장, 스무 장... 피드가 늘어갈수록 고민만 늘었다. 왜지? 내 그림은 왜 노출이 안되지?

인스타 CEO가 말하길 이제 태그는 아무짝에 쓸모없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지? 카카오 오픈채팅방에서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모인 방에 들어가 맞팔도 해보고, 피드 올리면 '제 것도 한 번씩 봐주십사'하고 홍보를 해보고, 다른 작가들이 홍보하면 열심히 찾아가서 좋아요를 눌렀다. 댓글 숫자도 중요하다고 하기에 용기를 내어 댓글도 달았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픈채팅방에서 다른 작가분이 공유해 준 무료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현직 카카오톡 이모티콘 승인작가, 인스타툰 인기 작가의 성공 노하우라며 굉장히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몇 시간 동안 메모를 해가며 열심히 들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구글에 검색해도 금방 나올 내용들이긴 했다. '그림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용 그리고 뾰족한 타겟'. 뾰족한 타겟, 뾰족한... 어쩐지 그 말은 그날 이후부터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뾰족한 바늘이 되었다. 강의 뒤에 이어진 한 시간 넘는 간증 후기가 있었다. '강사 작가님의 유료 수업을 들은 후로 나도 성공해 버렸다'라는 내용이었다. 괜한 반감이 생긴 건 나뿐만은 아니었고, 결국 유료 수업을 들어라는 맛보기 수업이었다는 걸 늦게 깨달은 동지들이 많이 보이긴 했다.


뾰족한 타겟, 전달할 내용... 그것이 성공하는 인스타툰 작가의 필승 노하우일리는 없겠지만, 내 피드들을 봤을 때 뭐가 아쉬운지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림 실력? 그래, 나보다 더 발로 그린 것 같은 그림체들도 인기만 많더라. 뾰족한 타겟? 읽어주는 사람이 생기고 나면 그게 뾰족한 타겟으로 보이는 거지 뭐. 게다가 요즘은 누구나 작가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나처럼) 진입장벽이랄 것도 없기 때문에 세상 온갖 주제와 테마가 벌써 대나무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솔직히 거의 모든 주제가 레드오션처럼 느껴진다. 전달할 내용?


내 그림에 내용이 없었던가?


이게 참 무서웠다. 나는 트렌드와는 엄청나게 동떨어진 사람이다. 요즘 유행하는 밈도 잘 모르고, 챌린지도 아이가 알려줘야 안다. 줄임말은 나에게 이제 거의 외계어나 마찬가지다. 가끔 아이의 친구들을 마주치면 친근해 보이려고 써보기는 하지만 어색하기가 그지없다. 게다가 세상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라 여전히 '선한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이 오길 마음 한 켠에서 기대하고 있다. 친절하고 진실하게 산다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나의 인생의 1분 1초도 불친절하지 않았고 거짓되지 않았었는가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지만, 내가 그런 일을 했을 때에는 악행(!)을 저질렀던 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내적 고통을 받으며 지내곤 한다. 이건 진실이다.

어쨌든 나는 인스타에 올리는 그림에 그런 내용을 담고 싶었고 그랬다고 여긴다. 처음에는 그림만으로 시작했던 피드는 그림만으로 전달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져서 한 문장씩을 추가했다. 가끔은 나름대로 장편(인스타툰 기준으로 8장 정도면 장편 아닐까?) 스토리도 만들었다. 메타에서 릴스를 압도적으로 더 밀어준다고 하길래 시간을 더 들여 움직이는 친구들도 만들었다. 효과 없다는 태그도 넣어보고, 지워도 보고 피드의 설명을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으로도 작성해보기도 했고, 인기 음원을 삽입하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도 내 피드의 노출도는 늘지 않았고 가끔 좋아요가 다른 피드보다 높은 경우는 오로지 광고라는 과금을 했을 때뿐이었다. 1년 동안 100명의 팔로워도 모으지 못했고 이제 게시물 수가 팔로워 수를 앞지르는 기염까지 토했다. 인스타툰 도전은 현재진행형이기는 하지만 꿈과 희망과 자존감을 모두 떨어뜨리기에 효과적이었다.


이제야 인스타보다 브런치가 좋은 이유가 시작된다. 인스타는 피드의 첫 번째(또는 두 번째) 페이지에서 성공이 결정된다. 심지어 대부분 판단에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스크롤을 하다가 슥슥 넘어가다가 그걸로 끝난다. 내가 아무리 멋진 멘트를 마지막 페이지에 적어놔도 사람들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안 볼 가능성이 99.9%이다. 그럼 처음 한 두 페이지로 선택받는 게시물을 만들면 되지 않냐고? 말하기는 참 쉽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으려면 압도적으로 예쁘거나 귀엽거나 사랑스럽던가 압도적으로 자극적이어야 한다. 폭력적이든 선정적이든 혐오적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인스타가 적어도 나에게 맞지 않는 첫 번째 이유이다. 나는 평화주의자이고, 지나친 자극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자극을 찾는 사람들에게 맞는 피드를 만들 수가 없다. 그리고 극 T인 사람으로서 말해보자면 내 그림이 전자에 속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압도적으로 예쁘거나 귀엽거나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제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큰 복을 받으실 거예요). 브런치도 글의 제목이나 표지 등으로 이용자가 게시물을 선택할 만한 요소를 일부 제공하기는 한다. 하지만 인스타의 방식에 비교하자면 한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보고 싶은 게시물을 선택하는 데에 훨씬 더 높은 자율성과 시간을 준다.


또 순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간단명료한 한 줄이 필요하다. 잘 만들어진 카피라이트 문구 같은 것 말이다. 다들 사는 게 바쁘니까 글을 길게 읽을 시간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독서도 설렁설렁하듯 글도 주저리주저리 쓰는 편이다. 읽기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아니라면 사과드립니다). 한 장의 그림에 함축적으로 한 문장을 덧붙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 피드 하나로 누군가는 위로받고, 누군가는 감동받으며 누군가는 그날 하루가 행복해지길 바랐다. 나의 그림과 문장이 그만한 힘을 담아냈을까? 인스타보다 브런치가 좋은 두 번째 이유는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원 없이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인스타보다 브런치가 좋은 세 번째 이유가 있는데, 한눈에 남과 비교할 일이 적다는 것이다. 모든 SNS가 그렇긴 하지만, 인스타는 알고 싶지 않은 남들이 잘 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노출된다. 작가의 입장으로 비교하자면 내가 맞팔한 다른 작가들의 피드에 몇 개의 좋아요와 몇 개의 댓글이 달렸는지가 앱을 켜자마자 보인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나의 것과 비교하게 된다. 나와 팔로워 수가 비슷했던 작가가 며칠 사이 몇 백명의 팔로워가 늘었는데, 그림체도 딱히 대단하지 않고 내용은 심지어 애매하게 수위를 줄타기하는 그런 것들 뿐이었어서 무척 자괴감이 들었었다. '아, 역시 그림조차도 선정적이어야 누가 봐도 보는 건가?'라며 나는 안될 놈 쪽인가 보다 싶었다. 브런치는 글의 하단에 라이킷이 있긴 하지만, 아래까지 내려야 보이는 데다가 색감도 눈에 띄지는 않는다. 내가 그 글에 라이킷을 누르고 싶다면 적어도 그 글을 끝까지 읽어야 하기에 봇처럼 클릭할 일도 적은 것 같다. 가끔 구독자 수가 늘었나 확인해 보게 되지만, 인스타에서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상대와 혼자 비밀스러운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 지쳐 피곤한 일은 없다.


아직 구독자 수 0인 내가 인스타와 브런치를 비교하는 것이 웃기긴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브런치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써 가다보다 보면 인스타 팔로워 수보다는 나은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인스타에서든 브런치에서든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는 조용한 글과 그림을 만들어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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