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건 누구에게나 꿈꾸는 일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 따로, 해야 하는 일이 따로이니까 말이다. 나 역시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늘 해왔었다. 자신도 없고, 실제로 뛰어난 실적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일이지만 매달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타협안이었다.
지난 몇 년 간은 아이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의무감과 죄책감으로 저금액을 줄이고 여행에 지출을 늘렸었다. 아이는 원하지도 않은 탄생과 성장을 겪어야 했고, 그 와중에 어른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오롯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는 그중 하나인 어른으로서 미안함을 많이 느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더 많이 채워주기 위해 매주 어딘가를 나갔다. 바다를 보러 가고 신상 카페 투어를 다니고, 크고 작은 축제나 이벤트마다 찾아다녔다. 예전에 비해 통장에 숫자가 늘어나는 게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체되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만큼 가치가 있기는 했다.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원천은 이런 시간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자기 효능감이, 성취감이, 자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런 맞지 않은 일이라도 이 정도의 수입과 이 정도의 업무라면 충분히 바꿀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찌어찌 전직을 하고 난 뒤에 훨씬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점차 자라서 나의 손이 매번 닿아야 하는 시기가 지났지만, 그럼에도 학교와 학원 사이에 집에 들러 나를 보고 가는 걸 좋아한다. 적절한 시기에 가족이 된 강아지들에게도 나의 해고는 '오히려 좋아' 소식에 가까웠을 것이다. 매일 12시간 이상씩 집에서 가족이 언제나 오나 오도카니 기다리고 있는 건 길어도 너무 긴 시간이었을 테니까. 규칙적으로 산책도 다닐 수 있고, 중간중간 간식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을까. 무엇보다 현관에서 무슨 소리만 나더라도 '왔나?'하고 귀를 쫑긋거리며 기대한 뒤 실망하지 않아도 됐다는 점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얘네들은 딱히 말해주진 않았지만.
최근에 하고 있는 일은 내가 그나마 잘하는 일 중에 하나인데, 여전히 '나는 부족한 것 같아',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쩌지?'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지만 이건 거의 성격에 가깝다는 걸 인정한다. 세상에는 당연하게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많으며, 나는 제미나이나 챗GPT도 아니기에 부족한 건 당연하다. 당연한 걸로 걱정하는 것만큼 시간이 아까운 것도 없을 거다. 다행이라면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보다는 이런 불안감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 정도이다. 지금 말한 '일'은 생계와 관련된 일이다.
해고 직후부터 하고 있는 또 다른 일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하고 싶었던 일에 관련된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그런 일들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는 아니었기에 안데르센처럼 세계명작동화는 지어내지 못하지만, 소소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걸 하고 있다. 이를 테면 조용한 일기장 같은 거 말이다. 그림도 세련미 철철 넘치는 트렌드 한 그림체와는 거리가 멀지만 내가 좋아하는 포근한 스타일을 그리고 있다. 사실 위에서 말한 생계를 위해 하고 있는 일보다 내가 좋아하는 글과 그림에 관련된 일로 인생 제2막을 열고 싶었다. 일 년 정도 바라보고 꾸준히 업로드했는데, 반응이 1도 없었다. 통장의 돈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 같고(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글과 그림으로는 1원도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소 급하게 '잘하는 일'로 생계 일부를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내가 바란 가장 이상적인 제2막의 시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독하게 나쁜 선택도 아니었다. 여전히 모아놓은 돈을 까먹고 있기는 하지만, 까먹는 속도는 꽤나 늦출 수 있었으니까. 통장이 허락한다면 좋아하는 일로 생계도 다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도전하고 싶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다는 걸 안다. 나에겐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으니까!
일부 수입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던 일에 비해 수입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숫자 비교가 민망할 만큼 쪼그라들었다. 이제 곧 다가올 설 명절 선물을 주문할 때에도 며칠이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이걸 사도 되나?', '너무 저렴하진 않나?', '하지만 비싼 걸 살 형편이 아닌데 굳이 사는 건 허영과 사치가 아닌가?', '비싼 걸 산들 부모님이 마음 편히 받으실 수 있을까?', '하지만 저렴한 걸 사서 괜히 어렵게 사는 건 아닌지 오히려 걱정하시려나?' 같이 도돌이표처럼 고민을 반복했다. 결국 주문한 건 세트당 3만 원도 안 되는 거였지만. 거기다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조카가 있다. 세뱃돈으로 얼마를 줘야 할지도 참 걱정스럽다. 누구는 백만 원, 몇십만 원 턱턱 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커오면서 고액의 세뱃돈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일단 배포부터가 XXS사이즈다. 심지어 지금의 형편을 생각하면 무리해서 지출했다가는 봉투를 조카 손에 넘겨주면서부터 다시 되돌려 받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그럴 바에는 형편에 맞게 주자고 마음먹고 있다. 미안하다, 조카야. 이모가 잘 풀리면 세뱃돈 크게 한 번 쏠게(부디 그런 날이 곧 오길 바란다).
이제 정리를 해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의 딜레마는 역시 돈이다. 냉정하게 돈이다. 좋아하는 일로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러니 모든 세상 매체에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파는 거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별안간 부자가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마이너스만 안 나게끔 버는 게 첫 번째 목표다(올해 안까지 그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추석에는, 내년 설에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건강식품이라도 사주고 싶다. 조카에게 넉넉한 용돈도 주고 싶다. 아이들 설빔도 하나씩 해주고, 황태츄라도 한 상자 사주고 싶다. 정말 많이 사치를 부린다면 연말연시에 동해 바다 쪽으로 일출을 볼 수 있는 숙소를 예약하고 싶다(호텔급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혹시 이것도 지금의 나에게 과분한 목표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