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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베란다에서 노지로 간 깻잎

경쟁의 순기능

by 세렌뽕구


우리 집 베란다 한편엔 미니 텃밭이 있다.

작지만 무한한 힐링을 주는 장소다.




해와 바람이 가장 잘 드나드는 곳에 화분을 두고 깻잎 씨를 뿌렸다. 며칠 후 싹이 났다. 흙 위로 빼꼼 나온 초록이들은 쪼끄맸지만 저도 깻잎이라고 살짝만 만져도 손끝에 특유의 상쾌한 향을 솔솔 묻혀냈다.


안온한 시간이었다. 낮이면 연두색 잎사귀를 쫙 피고 햇빛 샤워를 했고, 어둑해지면 잠이 들었다. 쌩쌩하다가도 저녁만 되면 잎사귀를 오므리고 축 늘어뜨렸다. 자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땐 시든 걸로 오해해 적지 않게 놀랐는데 놀람은 곧 동질감으로 변했다.


사람도 식물의 한 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왜냐면 나도 밝은 햇살이 무척 좋고, 물과 양분 그리고 휴식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연의 피조물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초록이들 옆에 있으면 그들과 같이 자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 3월. 노지에 깻잎을 심었다.

“이제 자유롭게 자라라! “


베란다보다 훨씬 넓은 땅에서 더 잘 크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모종 6개를 심었다. 그런데 추위 때문인지 시름시름 앓다 결국 4개만 살아남았고 그마저도 바람에 허리가 꺾여 내 애를 태웠다.


한 달이 지나자 스스로의 힘으로 부러진 줄기를 일으켜 세웠다. 다행스러웠다. 더디지만 다친 부위를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올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저도 애를 쓰고 있었나 보다.




첫 고비를 넘긴 깻잎은 자라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베란다에서 키우던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언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식물들도 경쟁을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약했던 때가 있었나 싶게 이젠 누가 더 잘 자라나 시합 중인 것 같았다. 자리싸움을 하느라 서로를 밀치고 엉켜 자랐지만 생각보다 잘 자랐다. 경쟁하는 한편으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데 강력한 동기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노지엔 손님들도 많았다. 온갖 벌레들이 뛰어다니며 잎사귀를 갉아먹었고, 뿌리 근처엔 거미들과 지렁이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럴수록 잎사귀는 점점 더 빳빳해졌고 향도 더 진해졌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고, 혹독한 더위를 견뎌낸 깻잎은 계속 자라 나무가 되었다. 어느 날 보니 4개의

조그맣던 새싹은 거대한 자연이 되어 있었다.



요즘 나는 익숙한 환경에 머물러있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깻잎을 떠올린다. 태어난 이상 누구나 지구라는 노지 속에서 흔들리고 긁히며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묘하게 위로를 받아서다.


노지에서 자란 깻잎이 베란다에선 몰랐던 고단함을 감내해야 하는 했던 것처럼, 어렵게 정한 내 선택은 언제나 불안하고 무섭고 무겁다. 그러나 과거의 최선이 모여 오늘의 내가 된 것처럼 앞으로의 결정이 나를 더 좋은 모습으로 성장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평가가 싫고 다툼도 싫다. 하지만 경쟁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 과정엔 언제나 힘이 되는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로 영역을 넓히려고 엉켜 자라던 깻잎이 결국 서로를 버팀목 삼아 활짝 피었던 것처럼 말다.




지구라는 텃밭에 사는 나는

나의 방법으로 자라는 중일 것이다.


웬만한 비바람에 끄떡없는 깻잎을 보며,

나도 내 줄기를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노지에서 자란 4개의 모종은 깻잎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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