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해봐서 깨닫게 된 감사한 것들
길을 잃고 잘못 들어갔거나 우연히 간 장소에서 뜻밖의 선물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마침 노을이 가장 멋들어지게 흩어지는 시간대에 뷰 스폿에 들어서거나, 얼결에 들른 식당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기분 좋은 시간을 만들고 오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가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행운이다.
나는 길을 헤매다 우연히 들어선 플랫폼에서 근사하고 다정한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10년이 넘도록 그와 일상을 이어나가며 작은 환승을 반복하고 있다. 원래 가려던 목적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한 만남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우리만의 동화를 그리며 살고 있다.
고양이들이 하염없이 창문을 바라보는 걸 집사들은 냥플릭스라고 부른다. 냥이들처럼 나도 밖을 보는 게 좋았다.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재밌는 것들 투성이었다. 트럭에 과일을 잔뜩 실어와 쩌렁쩌렁한 스피커를 틀고 장사하는 아저씨, 그 옆을 살금살금 지나다니는 강아지와 고양이들 그리고 바람에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들까지 모두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다.
‘다들 어디에서 왔지?
아저씨는 과수원을 하시나?
바람은 어디서 시작된 거람?‘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상상하는 건 정말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다.
그러다 가끔은 정말 아무도 모르게 훌쩍 떠나곤 했다.
교통카드만 들고 나와 아무 버스를 타고 모르는 곳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곳을 하염없이 걸어 다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의 은밀한 취미였다. 낯선 장소에 갈 때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묘한 일탈감을 느꼈다.
‘킁킁, 냄새마저 낯설구먼!’
소심한 겁쟁이라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그냥 이렇게 잘 모르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보물을 찾으러 온 모험가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또다시 버스에 환승해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곤 했다.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에 대해 고민하다 페루로 떠나는 티켓을 끊었다.
최대한 먼 미지의 세계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전공을 최대한 살려 남미의 IT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멋지게 세계를 누비며 능력을 펼치는 멋진 여성이 된 미래의 나를 꿈꾸며 컴퓨터 기술을 전파하는 봉사 단원으로 환승했다.
그리고 동시에 꿈꿔왔던 삶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를 습득했고, 원하는 일을 시작했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춤을 배웠다. 그것도 정열의 상징인 살사댄스를 말이다! 그간 모범생으로만 살았던 내겐 모든 것이 흥미진진했고 새로웠다.
처음으로 가져본 아무 제한 없는 자유였다. 틈이 나는 데로 여행을 다녔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경험들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경험엔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점점 장엄한 자연을 봐도 감흥이 없어졌고 매사가 심드렁해졌다. 그토록 신기했던 것들이었지만 반년 정도 지나니 일상이 돼버렸다.
미지의 세계였던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본인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들을 별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오히려 그들은 나와 내가 자라온 고향을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별이라고 생각했다.
해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의 길을 걷다 보니, 내가 원했던 건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여행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내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사실이었다. 들인 시간이 아까웠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먹었다.
‘그래. 돌아가자!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취업 행 열차를 탔다. 2년이 넘는 공백을 따라잡기 위해 제일 먼저 학원에 등록을 했더니 스터디 그룹을 추천해 줬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 요즘 학원 스터디 맛이나 봐보자며 첫 주만 할 생각으로 참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까치라고 해요!.”
단정한 차림의 또래 남자애가 인사를 했다. 그간 괄괄한 남자들만 봐왔던 나는 그가 좀 생소하게 느껴졌다. 조곤조곤한 말투 때문인지 호전적이지 않아 보이는 인상이 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설명하기 어려운 여유가 묻어났다.
이 시기에 어떻게 저렇게 평온해 보이는 건지 궁금했다. 호기심은 대화로 이어졌고, 한 번만 가보려 했던 스터디는 달이 끝날 때까지 꾸준히 참여했다. 그리고 스터디가 끝난 이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그는 은은한 햇살 같이 온화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에게서 풍겼던 여유의 향기는 시간과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선을 어디에 뒀나였다. 나는 늘 미래를 위해 뭘 선택해야 할지 따지고 재느라 우유부단할 때가 많았지만 그는 현재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래서인지 본인과 관련된 선택엔 대범했고 “만약”이라는 가정을 두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남과 비교하는 법이 없었다. 열심히 한 결과에 만족하고 즐거움을 발견해 내니 초조해할 이유도 없었다. 덕분에 알았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 자존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한편, 취업 열차 안에서 잦은 탈락의 고배를 마신 나는 우는 날이 많아졌다.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내 나이를 탓했고 스스로를 원망했다. 같은 취업행 열차를 탔지만 그는 나처럼 호들갑 떨지 않았다. 이번에 떨어졌으면 다음을 기약할 뿐이었다.
“뽕구야.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될 거야. 걱정 마. “
당시에는 이런 와중에도 여유를 부리는 그가 야속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우리는 결국 목표를 이뤘으니 말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한 덕분에 어둡고 추운 길 터널 속에서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서버 개발자가 되었다. 직장인으로 환승을 했더니 이번 열차는 너무 흔들렸다. 새 열차 안에서 중심을 잡는 건 더 어려웠다. 빠르게 바뀌는 기술 트렌드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부담과 압박감은 나를 성장시켰지만 한편으론 일의 먹잇감으로 전락시켰다. 나는 자꾸만 예민해져 열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까치는 근육을 키워보자고 했다. 일상과 나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불쾌한 말들이나 상황을 오래 곱씹지 않을 방법으로 운동을 권했다. 운동 후 맛있는 거 먹고 훌훌 털어내자며 말이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막상 운동을 하니 마음에도 근육이 생기는 것 같았다.
사소한 일상 속 환승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불편한 마음들을 털어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늘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의 허기졌던 마음은 그의 옆에서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좋은 에너지 덕분에 배가 불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닮은 따뜻하고 밝은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그와 함께 열차를 타고 평범한 일상을 달리며 작은 환승을 반복하고 있다.
같이 밥을 먹고, 출근을 타고, 운동을 하고, 집을 정돈하거나 텃밭에서 채소를 키운다. 생에 의미를 두기보단 그냥 지금 행복하기로 한다. 별이 되고 싶었던 치기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날 보면 참 시시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무진장 행복하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갈림길 끝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 봤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길을 위해 애쓰고 있다면, 꼭 가보고 싶었던 그곳에 용기를 내서 가보라고 응원하고 싶다.
생각했던 길이 아니더라도
분명 그곳엔 감춰진 보물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