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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올해의 마지막 자급자족

배추와 브로콜리 그리고 열무

by 세렌뽕구


가을 작물을 심은지 100일이 지났다.


모종을 심을 때만 해도 땀이 뻘뻘 날만큼 덥더니 고작 3개월 만에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버렸다. 생각보다 가을은 성큼 왔고, 겨울은 더 빨리 온 기분이 들었다.


텃밭에 가니 바람은 더욱 매섭고 차가웠다. 조금 더 미루면 식물들이 꽁꽁 얼어버릴 것 같아 아쉽지만 올해의 마지막 수확을 하고 텃밭을 정리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딴 것은 작고 소중하게 자란 브로콜리였다.


시중에서 파는 것 말곤 식물로는 본 적이 없어 어떻게 자랄지 정말 궁금했었다. 꽤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브로콜리가 맞나 할 때쯤 중앙에서 꽃봉오리로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브로콜리는 꽃이었구나!’

가을 농사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100일은 브로콜리가 다 자라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나 보다. 너무 쪼끄맣게 자라서 수확이라고 하기도 좀 민망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남편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여보, 작아도 브로콜리는 브로콜리야! “


맞다. 작아도 브로콜리다.




그다음 수확물은 배추였다.


처음 심을 때 특히 약하고 작아서 걱정이 많았던 배추 모종들은 땅에 잘 적응해 보란 듯이 멋진 배추가 되었다. 뽑아 보니 생각보다 풍성하고 커서 굉장히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직접 해보니 배추 농사도 난이도가 꽤 높았다.


배추를 끈으로 묶어줘야 하는 걸 몰라 틈틈이 물만 줬더니 꽃다발처럼 자라서 고민이었고, 벌레들에게 인기가 너무 많아 여기저기 구멍이 생기고 찢겼다. 심지어 어떤 배추는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어디 내다 팔 건 아니니 굳이 약은 치지 말자고 마음먹었지만 시꺼먼 벌레들을 보며 마음이 약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물로 희석한 식초를 준비해 주변에 뿌리기도 하도 직접 벌레를 털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보니 알겠다. 그간 봐온 마트와 시장에 보이는 단단한 배추들에는 농부들의 많은 정성과 노고가 묻어있던 것을 말이다.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감사한 경험이다.




열무를 수확하며 생각했다.


‘식물은 정말 생각보다 약하지 않네.’


열무는 특히 추위에 약한 작물이라고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쩍 추워진 기온을 견디면서 잘 자라며 제 몫을 하고 있었다. 그게 참 위안이 되었다.


총총 열무친구들


뜨겁던 한여름의 열무는 자라는 속도는 빨랐지만 벌레들에게 인기가 좋아 수확이 힘들었다. 잎사귀마다 까만 벌레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어 물리기도 많이 물렸고 뽑을 때도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가을 열무는 달랐다. 좀 더디게 컸지만 벌레는 이전보다 많이 없었다. 덕분에 뽑으면서 얼마나 수월했는지 모른다. 같은 종류의 식물이어도 때에 따라 자라는 과정과 속도가 이렇게나 다르다.




지지대를 철거하고 밭을 정리하고 돌아왔다. 열무와 배추로 된장국을 끓여 먹었고 부모님에게도 나눠드렸다.


소소한 수확량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뭐 어때? 모두가 행복한 식사를 했으니 됐다.


자급자족의 기쁨을 깊이 느끼게 해 줬던 이렇게 올해의 우리 첫 농사는 끝이 났다. 추운 겨울 동안 땅도 우리도 휴식을 푹 누려보기로 한다.


엄마 집에 보내진 수확물들은 훌륭한 반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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