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컨버세이션 #프로덕션
장편 시나리오 [컨버세이션]을 써놓고 이제 어쩌지? 어떻게 만들지? 어떻게 나서지?? 라고 생각만 하던 2020년 늦여름.
내가 알고 있던 제작지원 프로그램 영진위 상/하반기 제작지원, 경기영상위와 서울영상위 제작지원 등...
이미 일정이 다 지나있었다. 그리고 해당 제작지원들 다 떨어질 게 분명했다. 컨버세이션 시나리오는 대사가 구어체로 주저리주저리 쓰여있긴 하지만, 그것을 요약해보았을 땐 뭐지?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에요?? 이런 게 장편영화가 되나? 란 질문과 맞닥드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 뭐랄까 보수적이고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공공기관 제작지원 프로그램의 성향이랑 맞지 않을 것 같다, 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본 제작지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는데- 오히려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다 써놓고도 컨버세이션 시나리오의 씬5까지에 해당하는 걸로 편집해서 단편영화 제작지원에 두군데 정도 넣어봤었다. 물론, 바로 탈락!
됐으면, 조금 띄엄띄엄 단편처럼 공개도 하고 나중에 모아서 장편으로도 공개를 하고 그래 볼 생각이었는데... 공공기관 제작지원 프로그램이랑은 정말 인연이 없나 보다, 했다.
아, 조금이나마 재정적인 부담을 줄여보고자 했지만 안되니 어쩔 수 없지.. 사실, 제작지원 프로그램에 떨어지는 것은 사실 늘상 있는 일이었다. 컨버세이션 전에 시나리오를 2편 정도 더 써둔 것이 있어, 부푼 꿈을 안고서 정말 낼 수 있는 제작지원은 거의 다 내보았지만 모두 어김없이 1차 탈락을 거듭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낙담해 할 일은 아니었다. 로또 사는 심정으로 내는 제작지원...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전의 시나리오 2편은 제작지원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규모의 시나리오였지만, 컨버세이션은 제작지원 잆이도 감당할 수 있는 컨셉의 시나리오 였다는 것! (애초에 그걸 감안하고 써놨지롱!)
이제 자체 제작의 규모로 프로덕션에 관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전작 에듀케이션에서 했던 전략을 보완 강화하는 형태의 전략은 최종적으로...
극단의 롱테이크
에듀케이션 을 촬영했던 장비는
Sony A7S2
Sony 16-35mm F4, Tamron 28-75mm F2.8, Sony 70-200mm F4
Sachtler Ace M, Zhiyun Tech Crane2 짐벌
Travor-3090A flexible LED
이렇게 됐는데, 학교 졸업영화라서 카메라, 셔틀러 삼각대는 학교에서 빌렸고 나머지는 모두 내 보유장비였다. 제작비가 빠듯해서 장비렌탈비를 아끼고자 장비를 거의 다 중고로 샀다가 촬영이 끝나고 다시 파는 전략을 활용했던 것.
저 장비중에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컸던 것은 조명장비가 너무 부족했다는 것.
에듀케이션이 아예 조명을 안쓴 줄 알고 계신 분들이 많긴 한데... 사실 쓰긴 썼어요... 너무 미약한 것 하나만 써서 한계가 너무 했던 것이었죠... ㅠ
그런데 문제는 사실, 장비가 없어서 못썼다기보단 장비를 쓰고 진행시킬 인력이 없었다가 더 맞는 얘기였다.
정말 일정은 빡빡했고, 제작비는 부족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스탭 구성에 한계가 있었다.
에듀케이션 대비 달라진 점은 일정은 여유로워 졌을 수 있지만, 제작비는 더 부족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거의 대부분의 씬의 샷디자인을 한 숏으로 처리한다는 전략이었다. 샷을 나누면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은 가능하겠지만, 적은 제작비와 소규모 스텝의 운용상 길어지는 회차 그리고 시간에 따른 노출차를 맞추기가 어려워질 것 같았다.
이미 그런 계획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반영되어 있었다. 컨버세이션은 굵직한 스토리텔링보다는 이어지는 긴 숏에서 대화 그 자체의 재미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되어 있던 것
롱테이크 전략으로 가게 되니 사운드 운용 방식도 좀 더 간편해 질 것이었다. 고정숏 롱테이크 위주니, 주된 인물 위치에 샷건 마이크를 고정하고 찍는 방식. 인물 움직임이 크면 더 난감해질 방식이었지만 움직임에 따른 오프 사운드는 라발리에 와이어리스로 처리하기로 했다.
에듀케이션도 롱테이크 호흡의 영화긴 하지만 컨버세이션이 최종적으로 2시간 영화인데 총 16컷으로 이뤄진 극단적인 롱테이크 영화가 되버린 현실적인 이유이다.
그래서 스탭구성은?
하루에 한숏 정도를 찍는 규모로 해서 그 프레임에 나오는 것을 미리미리 준비를 다 해버린다고 했을 때 최소한의 스텝으로 몇명이 필요한가. 최소한 상시스텝으로 2명은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1명은 촬영, 1명은 사운드. 소규모 프로덕션에서 혼자서 촬영 과 연출을 겸하는 분들도 더러 있지만, 내 산만한 성격상 그렇게 되면 분명 땅을 치고 후회할 실수가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카메라 관련 기술적인 부분에서 신뢰를 줄 만한 촬영감독이 필요했고, 사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 손을 내민 것은 에듀케이션 때 함께 했던 오정석 촬영감독과 전미연 프로듀서
영화 만들기가 사방팔방 어려움 투성이라고 해도,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인간관계! 이미 친밀한 이 두명과 함께라면 못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마음을 굳히곤 곧바로 연락을 해봤다. 영화를 찍으려고 해. 에듀케이션도 개봉을 해버리니깐, 이젠 정말 영화를 찍어야겠어... 처음으로 외부에 컨버세이션의 시나리오를 노출시키는 경우이기에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을 담은 연락. 촬영은 좀 띄엄띄엄 할 것 같고... 한 반년 정도 생각한다고. 뭘 언제찍을 지에 관해 다 확정한 바는 없지만, 계절에 맞게 일정들을 맞춰서 찍을거라고. 뭐 그리고 인건비는 얼마고, 지분은 어떻게 되고... 주저리주저리 해봤더니 생각보다 반응은 쿨했다.
음, 그래요!
아니, 저기....요.. 시나리오 맘에 안드는 거 없어? 로케이션이랑 인물이랑 등등 뭐 걱정되는 거 없어?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약간... 뭐 하면 하는 거죠, 괜찮은 것 같은데요?! 캐스팅은 언제 픽스나요? 뭐, 그런 반응. 오히려 반응이 굉장히 긍정적이어서 오히려 의심이 가는?! ㅎㅎ
암튼 굉장히 기뻤다. 아무리 돈이 없고, 일정이 가변적이라 할지라도 함께 갈 사람이 없으면, 시작을 못하는 법인데. 컨버세이션 이란 어떤 형태로 나올지 모를 이 영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드디어 영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뭐, 그게 그리 훌륭한 결과물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