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컨버세이션 #장편영화 #단편영화
컨버세이션은 딱 120분 길이 (크레딧 길이 조절해서 120분 0분 0초 0프레임으로 맞춰둠...;;) 의 장편영화로 개봉을 준비하게 되었지만 처음 시작부터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써야지, 하고 시작 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건, 장편영화 시나리오야! 하면서 각을 잡고 썼더라면 중간에 이게 정말 맞을까? 하고 수많은 회의와 주저함이 더 생겨 꽤 다른 결과가 나왔을수도- (그게 오히려 좋아 있을 수도 있지만)
수다로 시작했던 인물은 여성 3명이었고, 그들은 5개의 씬을 구성으로 매듭을 지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였고 원래 생각했던 데로 [건전대화] 란 제목으로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나름의 일련의 주제의식이 있었고, 그때 그 단편영화의 구성대로라면 5씬의 경우에는 지금처럼 1컷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수많은 컷들로 나뉘어지는 그림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스탭을 모아 프로덕션을 구성하고, 배우들과 협의하고 하는 건 영화가 짧건 길건 다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기왕 하는 거 좀 늘려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도중에는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건전대화]는 여성 3명의 대화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면, 남성 3명의 대화는 어떨까?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단편을 마치 시즌제처럼 하나씩 선보이는 식으로.
여성 3명의 단편을 첫번째로 내놓고, 남성 3명의 단편을 두번째로 내놓고... 세번제 시즌에선 뭔가 혼합? 종합? 퓨전? 같은 걸로 해보고... 오, 기획은 좋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채워야 할 지는 모르겠는... 패기만 조금 있던 상황.
씬 5까지로 구성된 [건전대화] 와는 다르게 남성 3명의 시나리오는 쉽게 휘리릭- 쓰여지진 않았다. [건전대화]에서 다뤘던 주제의식과 흡사하게 가보려고 하니 아류 같았고 비교대조를 하는 식으로 하려고 하니 젠더 미러링으로 읽혀지곤 했다. 이미 앞에 여성 3명의 대화의 장에서 이미 내가 대화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어떤 모티브를 써먹어 버렸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모티브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화 그 자체에 관한 새로운 모티브는 별로 떠오르는 게 없었고 오히려 이걸 각각의 독립적인 단편으로 가기보다, 장편영화로 엮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전대화] 에서 했던 모티브를 장편영화 전체로 좀 더 확장시키고, 장편영화를 이끌어 가는 하나의 축, 일련의 서사를 끼워넣는 식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니, 남성 3명의 이야기에서 굳이 대화 그 자체라기 보다는 인물간 관계가 얽혀 있는 데 더 집중을 하고 그것을 펼치는 형태에서 대화를 우선시 하는 것, 정도로 정리하고 갔다. 여기서 인물 캐릭터를 구성하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내 머릿 속 아이디어 같은 것 보다, 바깥에서 왔다.
배우였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고,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음 박종환, 곽민규 배우 둘이 먼저 생각이 났고 이어서 곽진무 배우가 생각이 났다. 이들 관계망 속에 로맨스가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들이 술 취해 좀 높은 텐션으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식으로 이 배우들이 내가 보고 싶은 욕망의 갈피대로 펼쳐보았다.
그때까지는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었기 때문에 해당 배우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명의 팬으로서 가상 캐스팅을 해놓고서 일단 시나리오를 쓰는데 그 배우들의 인상에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쓰면서 여러가지 디테일들이 추가되면서 보니깐 작은 소망은 욕망이 되고, 욕심이 되어...
나중에는 아, 진짜 이 배우님이 안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설레발까지 쳐가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그 이후엔 또 꽤 수월해졌던 것 같다. 입체적인 가상 캐스팅의 힘을 빌어 인물들 각자의 개성과 욕망 그리고 그 엮임이 꽤나 반서사적인 이 영화에 어떤 줄기를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연작단편으로 생각했던 것을 장편영화로 바꾸면서, 여성 3명이 나오는 첫번째 단락도 꽤 영향을 받았다. 첫번째 단락만 돌출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장편의 첫번째 단락에 부합하도록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고민했었다.
일련의 과정이 단계적으로 진행된 것도 같지만, 사실 어떤 부분은 꽤 동시에 진행된 부분도 있고, 이리저리 엮이면서 진행되기도 했는데- 정리해서 말하자면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장편영화 컨버세이션 시나리오가 마무리 되었다는 것.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이 전체의 과정이 그리 길었던 것 같진 않다. 처음 써보자! 했을 때부터 다 쓰기까지 한 두달정도? 그것도 당시 다른 작업을 같이 좀 하고 있는 게 있어가지고... 초반에는 그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 아 빡쳐... 하면서 이건 내키는 대로 쓰는 거니깐 하면서 썼던 게 컨버세이션 이었다. 그리고 최종 촬영고까지 시나리오가 그렇게 많이 바뀌진 않았는데, 그것은 컨버세이션의 불완전한 구어체의 말들을 정교하게 가다듬는게 그다지 좋은 방향은 아닐 것 같아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