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웨이>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를 돌이켜봤다.
전공 하나를 6년이나 공부했는데 나와 맞지 않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고, 그렇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생산적인 활동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였다.
그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졌고, 난 생각보다 약했다.
'우울증'이라는 것은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내 주변에 우울증 걸린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입장이었지, 내가 당사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끝도 알 수 없는 늪에 빠져있다가 그래도 주변에서 건네준 손을 잡고 늪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내가 원하는 걸 찾자!
이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단순히 나의 힘든 상황을 글로 풀어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마침 서울 청년 프로젝트였나? 아무튼 서울 청년들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는 프로젝트였다. 거기에 운 좋게 합격했다. 그래서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내가 지금 왜 이런 상황이 된 건지 왜 이렇게 우울한 건지 스스로를 돌아봤다.
나는 전형적인 '아들', '아들' 노래 부르는 집안에서 한 살 터울 언니 다음으로 태어났고, 8년 뒤에 남동생이 태어났다. 이런 가정 환경에서 자라오면서 있었던 일들을 다시 돌이켜보고 적어봤다.
어찌어찌 다 썼고 책도 한 100권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걸 아무한테도 보여줄 수 없었고, 독립출판 서점에도 컨택할 수 없었다.
오늘 <아티스트 웨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문구다.
어떤 작품을 만드는 행위는 수치심과 두려움을 사회에 드러내는 것이다. 예술은 그 모든 것을 밖으로 드러내고 빛을 비춘다. 예술은 우리 주위를 맴도는 어두움에 빛을 드리운다. 그것은 우리의 어두운 내면에 빛을 비추어 이렇게 말한다. "봤어?"
수치심 때문이었다. 나의 가정사에 대한 수치심에 누구한테도 보여줄 수 없었다. 책을 만든 지 5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이 책을 쓰면서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는 느낌을 받았다. 쓰면서도 누군가 나와 비슷한 가정사를 겪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응원을 던지고 싶은 마음에 썼던 것 같다.
예술은 굳게 닫힌 옷장을 열고, 어두운 지하실과 다락방에 맑은 공기를 들여보낸다. 예술은 상처를 치료한다.
하지만 난 수치심에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단계까지는 못 갔다.
5년이 지난 이제는, 이 책들을 어디에든 나눠야겠다. 도서관이든 어디든. 누군가의 상처에 조금이라도 치료가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