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 때 나는 성장한다
혼자와 함께가 행복하기 위해
‘혼자 노는 거 좋아하고 잘 놀아’
언제부턴가 나를 이렇게 말한다.
어릴 적에는 성향상 혼자 뭐 하는 것에 부담은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하고 싶어 했다.
지금이야 혼자 영화 보고 전시회도 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만 내가 20대 때만 해도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충무로에 혼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괜히 시크한 척 혼자 전시회도 가보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남자친구들이 생겨 시간 잡기 어려운 친구들을 양보하고 씩씩하게 혼자서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것이었지 함께 할 친구만 있었다면 더 좋아했을 것이다.
결혼 후에 함께하고픈 맘이 더 커졌던 것 같다. 둘째가 3살이 될 때까지 이맘은 더 커졌고 바빠서 신혼 때처럼 신경을 못 쓰는 남편이 밉기만 했다. 산후우울증이 조금 있었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주말부부가 되어 독박육아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된 큰아이 돌봄까지 힘들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나는 예쁜 가족, 괜찮은 부모, 편안한 부부사이를 꿈꿨는데 그래서 가족이 함께 할 때 즐겁고 많은 것을 공유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계획한 대로 뭔가가 잘 안 되고 감정적으로 삐거덕거리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둘째가 3살이 되던 해, 아이 둘 만 데리고 2박 3일 경주로 여행을 떠났다.
남편 없는 첫 여행이었다.
약간 두렵기도 했지만 설레었다.
안전한 숙소를 잡고 떠나기 전 일정을 빼곡히 정리하고 공부했다. 용인에서 경주까지 쉬엄쉬엄 휴게소마다 들려 놀다가 가다가 6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했지만 힘들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데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움직이니 행복했다. 여행 가면 쉬고 싶어 하는 남편과 부딪힐 일도 없고 3살인 둘째도 얼마나 잘 다니는지 기특하기만 했다. 이 여행을 시작으로 바쁜 남편만 바라보지 않고 제주도, 부산, 강원도, 충청도 등 전국을 여행 다녔던 것 같다. 먼저 여행하고 있으면 나중에 남편이 합류하기도 했고 일정 중에 하루는 리조트 안에서 푹 쉬는 날을 넣어 조율을 했었다.
혼자인 듯 아닌 듯 이렇게라도 함께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40대가 되어 많이 자란 아이들 의견을 참고하니 조금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여행이 맞춰졌다. 체험등에 들여보내면 혼자서 기다리는 시간도 점점 많아졌다. 심지어 이제는 큰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둘째는 중학생이 되어서 내가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
양가 부모님은 70-80대가 되었고 병원에 가야 할 일이 많아졌다. 암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은 아빠, 넘어져서 대퇴골이 부러져 큰 수술 2번과 재활에 1년이 걸렸던 시어머니, 인공관절 수술과 재활로 오랜 시간이 걸린 시아버지와 친정엄마, 초기치매를 진단받은 시어머니,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친정아빠...
10년 사이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양가 부모님과 다른 환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짐했다.
할머니가 되어도 혼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자식들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 시간에 나를 맡기지 말아야지, 내가 주도적으로 하루를 살아야지.
멍 하니 하루종일 tv를 보거나 누가 와서 말동무해주지 않나 기다리거나 무료해서 우울한 생각이 많아져 괴롭히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집순이라 혼자서도 잘 노는 성향에 이런 맘이 플러스가 되어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취미부자를 만들기로 했다.
혼자의 시간을 만들어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다. 집중을 하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사람이 많은 가까운 산은 혼자 다니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시켜놓고 하고 싶은 것 하는 것도 좋은 시간이다. 혼자 밥 먹을 때도 잘 차려서 먹고 식당에서도 잘한다. 혼자 영화 보는 건 당연하고 여행도 할 수 있다. 가끔 주말에는 혼자 수영장이나 헬스장을 가기도 한다.
무언가를 배울 때나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때도 친구를 찾지 않고 혼자 시작해서 그곳에서 친구를 만든다. 그 친구들과는 나이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기에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적당히 잘 지낼 수 있다. 가족과도 따로 또 같이 하는 시간들이 익숙해졌다. 혼자 잘 놀다가 친구를 만날때는 하루종일 시간을 비워 충족감을 준다.
혼자일 때 성장을 위해 애쓴다.
필요한 공부와 독서로 마음을 채우고 운동으로 몸을 가꾼다. 그림으로 집중해서 잡생각도 날린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도 이런 모습으로 늙고 싶은 꿈을 꾼다.
아파서 병원생활을 하게 되면 내가 결정할 정도의 정신력이 있는 동안에는 맘에 드는 간병인을 골라 가족들과도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 긴병에는 효자도 없고 남편도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20년 후 70대 할머니가 되어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밌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지금보다도 더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노년의 나이에도 돋보기 끼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릴 거다.
무료하게 재미없이 보내지 않고 내가 시간을 주도해서 무엇이든 지금처럼 열심히 배울거다. 문화센터도 다니고 실버합창단원이 되어 목소리가 잠기지 않도록 노래연습도 할거다.
예쁜 할머니는 혼자서도 얼마나 잘 노는지 친구들의 부러움도 사고 싶다.
혼자여서 편한 게 아니라 혼자여도 함께여도 좋은 그런 유연한 삶을 살고 싶어 지금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