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아빠의 목 근육이 이유도 없이 떨렸다. 의식하면 할 수 록 손도 의지와 상관없이 더 떨렸다. 대학병원에 입원해 검사해 본 결과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이었다.
파킨슨병은 운동에 꼭 필요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원인 모르게 신경세포가 소실되어 가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안정 시에 떨림, 운동이 느려지고, 근육이 경직되며 자세가 불안정해지는 증상이 발생한다.
아빠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걸 꺼리게 되었고 자신의 모습을 잘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약을 매일 복용해 온 기간이 벌써 10년 세월이다. 그사이 선망증상이 심해져 엄마와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병원을 옮기고 2주간 입원해서 약처방을 바꾸고는 2년쯤 편안이 되찾아왔다. 선망과 환청이 없으니 온순한 아빠로 돌아왔고 엄마와의 관계도 나아졌었다.
지방에 살아서 3개월에 한 번 내가 교수를 만나 아빠의 상태를 전하고 약을 처방받은 후 택배로 보내드리곤 했다. 6개월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1년에 한 번은 교수가 아빠 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올라와야 한다.
오늘은 9개월 만에 아빠가 병원에 가는 날이다. 어젯밤에 막내 남동생이 내려가서 자고 아침에 모시고 올라오면 점심을 함께 먹고 2시에 진료를 본다. 남동생은 오후 회사 복귀를 하고 큰 남동생이 2시 반쯤 병원으로 와서 나와 진료를 소화한다. 한번 올라오기 힘들기에 백내장의 경과를 봐야 하는 안과예약도 함께다. 1시 반부터 진료가 시작되면 5시 반이 되어야 끝나는 힘든 여정이다. 아빠가 컨디션이 괜찮았을 때는 엄마와 함께 올라와서 우리 집에서 며칠 계시다가 내려가곤 했는데 이제는 당일에 내려가야 한다. 집이 바뀌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아침부터 움직여 올라와서 밤이 되어야 전주집에 도착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그런데 오전에 남동생이 출발한다는 전화 목소리가 촉에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부모님 상황이 말이 아니었나 보다. 서로 못 할 말까지 하며 아빠가 보이지 않았던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까지 보이고 심상치가 않았단다.
알고 보니 얼마 전부터 선망증상이 다시 시작되었고 엄마옆에 남자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빠는 마치 의처증환자 같은 모습이 나왔던 것이다. 어젯밤과 아침에 아빠 고집으로 약을 안 먹었고 그래서 아침에 더 증상이 심해졌던 거였다. 엄마도 아들이 옆에 있으니 참고 있던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은 거고 아빠는 또 그 말에 더 안 좋은 반응을 보였던 거였다.
벌써 아빠눈빛이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어서 2년 전 아빠의 모습이 생각나 겁이 덜컥 났다.
인지검사를 마치고 진료를 보는데 아빠는 파킨슨과 치매가 함께인 상태고 치매의 증상이 더 많이 보이고 있다고 했다. 먹는 약을 패치로 바꾸고 6주간의 경과를 보기로 했다.
70대 중반의 노인부부만 사는 부모님은 관계가 힘들어지면 정말 최악이 되는 거다.
아빠만 챙기기도 힘든데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아진 데다가 하루종일 엄마는 앉아있어서 2년 전 수술한 인공관절인 두 무릎이 아프다 하고 에너지를 여러 군데에 분산을 해야 하니 배로 더 힘든 하루였다.
이 상황에서 남편은 엄마가 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부모님 모두 우리 집에 올라와서 계시라고 말한다.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말로 뱉고 보는 p의 기질이 고스란히 나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상의 없이 던지고 보는 남편 때문에 내 스트레스는 더욱 커져만 갔다. 왜냐면 2년 전 아빠의 완전 다른 모습을 본 이후로 다시 눈빛이 달라진 아빠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을뿐더러 또 나에게 책임감을 상의 없이 얹어준다는 느낌에 화가 올라왔다.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는 많이 편안해졌지만 결핍이 있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아빠는 위에 천공이 나서 개복수술을 받았다. 50년 전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도 할머니는 엄마 탓을 했고 갓난아기인 나를 할머니집에 맡긴 채 같은 동네지만 다른 집으로 분가를 하게 되었다.
내 기억에 성실하고 좋은 분이지만 무뚝뚝했던 아빠는 이름만 아빠인 친척 같은 느낌으로 10대를 보내게 된다. 한 번도 같은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에 결혼해서도 먼저 조부모님을 뵙고서야 집에 들르곤 했었다. 그랬던 아빠는 4년 전 위암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정말 부녀지간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나에게도 아빠와의 시간이 주어지는구나하며 감사하게 생각했고 최선을 다했었다.
그때도 우리 오남매와 사위, 며느리까지 정말 일사불란하게 자기 역할을 해줬기에 서울에서의 수술과 치료가 무사히 끝났었다.
큰 딸인 내 지휘아래 움직이면서 책임감에 많이 힘들기도 했었다. 이후로 전보다 많이 편안해졌지만 무의식에는 결핍이 분명 있고 아빠가 아닌 모습까지 감당하기엔 나는 자신이 없다. 그리고 호르몬 변화로 나조차도 견디는 삶을 살고 있는데 내 부모님을 걱정하는 맘은 알겠지만 상의 없이 말하는 남편이 미울 수밖에..
약국에서 약을 헷갈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라벨을 잘 붙여주길 주문했고 알맞게 해 줘서 다행이었다. 진료가 끝나자마자 큰 남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출발했고 집에 가서 다시 한번 약 먹고 부치는 방법 잘 설명해 주고 기존 약은 치우라는 주문을 실행했다.
잘 도착했고 마무리도 잘했다는 동생말에 안심이 되었지만 발진이라는 부작용이 일어나면 입원치료를 해야 할 수도 있어 잘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밤 9시에 다시 올라오는 남동생에게는 또 미안함과 고마움이 커진다. 남매가 많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최근 5년간 확인 중이다.
나는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 서있기도 힘들었다. 몸도 힘들고 맘도 힘들었다.
부모님의 모습에 맘이 아프고 겁이 나기도 한다.
할머니도 파킨슨병으로 힘들게 돌아가셨고 이제는 아빠까지다. 원인이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지만 유전적인 소견도 있을 수 있기에 우리 남매들 중 누구라도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나 파킨슨은 대표적인 퇴행성 뇌 질환인데 약을 먹는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늦추는 목적인 것이고 먹기 시작하면 약을 조율해 가며 죽을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
할머니도 꽤 오랜 기간 파킨슨 약을 먹었고 80대 중반까지 살았지만 마지막 5년은 정말 괴로운 모습을 많이 봤다. 아빠도 벌써 10년째다. 이 모습을 옆에서 다 지켜냈던 엄마는 몸도 맘도 지쳐있을 거라는 생각에 안쓰러움이 올라온다. 초기 증상부터 선망증상과 환청이 심했을 때 모습까지 봐온 터라 나는 무섭다. 내가 건강과 운동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이유가 아마도 여기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에 예민하기에 빨리 생각을 알아채고 흘려보내야 하는데 오늘을 오후 내내 힘이 들었고 우울했다. 우리 남매들에게는 별일 없이 지나가길 기도하지만 누구에게라도 올 수 있는 질환이기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 같다. 의학의 발전으로 약과 치료법이 좋아지겠지만 사는 날까지 건강하길 또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