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로운 얼굴

'나'는 시인입니다

by 모루

집에서 애월해안도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는 가끔 자전거 도로에 불법 주차한 차들 때문에 곡예를 벌여야 했다. 하지만 해안도로 표지판 보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오 분 뒤면 한눈에 보이는 바다가 펼쳐지니까. 집에서 해안도로까지 약 30분 정도가 소요되지만 이제부터는 내 세상이다.

제주도 서쪽에 위치한 애월은 동쪽에 비해 높은 절벽이 형성되어 있어 바다 전망이 뛰어나다. 오죽했으면 달빛이 머무는 절벽이란 뜻의 애월이란 이름을 가졌을까. 평탄한 도로에서 오르막길로 접어드는 꼬불꼬불한 길을 통과하다가 보면 허벅지에 피가 가득 들어차고 호흡도 가빠져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깐 쉬는 곳이 남도리 쉼터다. 절벽 밑으로는 거대한 파도의 포말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긴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정리하다가 돌멩이처럼 딱딱해진 가슴에 피가 돌던 곳.

남도리 쉼터

또 한 명의 전일강사인 P 강사는 일처리가 빠르고 센스가 좋았다. 대전 출신의 P 강사는 전일강사 지원에 합격하자 부모의 지원으로 광진구 쪽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고 그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야무지고 빠릿빠릿한 성격 탓에 주변 강사들과도 잘 섞일 수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탐구심과 호기심이 높아 잘 웃으며 지역국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일반 강사들은 대부분 기혼자로 배우는 것에는 누가 뭐라 할 정도로 호기심과 의욕이 충만했다. 체험학습 강사와 기존 교육업계에서 종사하시다가 오신 분, 새롭게 일을 배우는 새댁 강사 등 본사에서 연수과정을 수료했지만 교육의 디테일한 부분은 각 지역국의 몫이었고, 만족할 만할 때까지 시범 수업을 통해 교육 과정의 스킬을 배웠고,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은 지역국장의 교육과 기존의 강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교육에 적응했다. 송파지역에서 분리된 강남지역은 전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고객이 까다롭다는 명성이 있었지만 강사들 역시 명문대 출신들이 많아서 대부분의 회원모들이 만족하고 있었다.

대부분 출발은 가볍다. 자전거 페달처럼



사방에서 번개가 친다. 이어서 빗살처럼 우르르 비가 쏟아진다. 다시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장마라고 부르기도 어색하다. 열대성 저기압인 스콜이 더 알맞다고나 할까. 한반도의 기후 역시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받아 동남아시아와 같은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하는 것이다. 건기와 우기로 뚜렷이 구분되는, 생존이냐 절망이냐로 이분화되는 사회처럼. 기존의 장마가 7월 두 주간에 걸쳐 내리고 8월에서 특히 9월에 태평양에서 형성된 몇몇 태풍의 막대한 영향을 받는 온대성 기후였던 것과는 아주 다른, 기후 변화가 한반도에서 펼쳐지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철저하게 소외당한다. 자본주의의 현실처럼.

제주 장마 시작



S 강사가 광진구 어디쯤에서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언젠가 빨랫감을 잔뜩 짊어지고 빨래방에 들어가다가 P강사를 만났다는 얘기를 듣곤 그 지역 어디쯤에 살겠거니 짐작만 했을 뿐이다. 덥수룩한 머리에 경상도 사투리가 조금 섞인 말투의 S 강사는 아쉽게도 강남지역에 먹혀들지 않았다. 고객의 니즈를 만족을 하지 못하는 사투리 발음이 문제였겠지만, 사실 여러 가지 개인적인 문제로 S 강사 스스로 많이 힘들어했던 거 같다. 하지만 전집에 대한 이해도와 배경지식도 넓어서 국장인 나로서는 별로 문제가 될 게 없다고 그때는 판단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S 강사의 피로도가 쌓이고 잘 웃지 않게 되는 날이 많아지면서 이상을 감지했다. 그때 아마도 S 강사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던 것 같다. 개인 상담을 통해 자신감과 발음의 스킬을 보완하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본래 발음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 출발은 가볍지만 지속적으로 자전거를 타다가 보면 몸의 어느 한 부분에 무리가 가서 아파오게 된다. 그럴 땐 그냥 그 자전거에서 내려야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