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장마가 시작됐다. 유리창에는 빗방울들이 알알이 맺힌다. 소나기처럼 내리는 사나운 빗줄기. 내 자전거는 이미 미니벨로에서 mtb로 바뀌어 있었다. 귀엽게 반이 접히는 하늘색 미니벨로는 차 안에 보관하기도 용이했지만, 언덕길에서는 오로지 내 허벅지만을 의지해야 하는 커다란 단점이 있었다. 그 무렵 하귀 읍을 지나면서 눈여겨보던 자전거 샵에 출입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산악자전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오히려 산악자전거로는 미니벨로 두 배의 거리를 달릴 수 있었으나, 내 머릿속에는 시상이 떠오르기 시작하여 자전거의 속도는 되려 줄어들었고, 가다가 멈추어 기록하는 일련이 과정이 반복되었다. 아내는 새 자전거로 신나게 탈 줄 알았는데 세워두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먼지가 조금씩 쌓이자 빨랫감을 너는 수건걸이 용도로 취급하였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자전거를 거의 타지 않는다. 이유는 달리다가 세우고 기록하고 다시 타는 일련이 과정이 매우 번거로워서다. 이상하게도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나 고개를 넘느라 옷이 땀에 흠뻑 젖을수록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로 넘쳐났다.
안개 낀 서우봉
C 부장의 호출이다. 각 지역국장들이 모여 부장에게 '한 딱갈이' 하는 당하는 날이다. 최근 각 지역국 입회실적이 부진한 면도 있었지만 휴회율이 높아져 부장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국장들은 차량이동 시 본사에 있는 연줄을 통해 사업본부 상황을 미리 파악해 둔다. 어떻게 닦칠지 모르는 부장의 질타에 대비하기 위한 생존의 전술이다. 소싯적 C 부장은 출판사 회사에서 전집 판매로 성과를 이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영업팀장까지 오른 업적으로 7년 정도 교육사업국장을 하다가 이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교육사업 총괄부장으로 영입된 인물이다. 따라서 새롭게 출발한 교육사업본부의 입지를 다져야 하는 부장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부담감과 한쪽으로는 명예로운 영광을 꿈꾸며 사업본부 내에서 독재자처럼 군림하였다. C 부장은 교육적인 바탕이 부족하여서 교육팀장인 Y 과장에게 교재와 교육의 전반을 맡겼다. 교육에 관한 이론은 부족하였지만 영업의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부장의 역할에서는 국장회의 시에 입회, 휴회, 매출이란 단어를 써 가며 각 지역국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고, 지역 국장에게는 성과가 바로 인격이 되었다.
아리리오 뮤지엄 2019년에 와서야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나는 시인협회에 일주일에 두 세 작품씩 시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응원의 글들을 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고, 시를 잘 쓰기 위해 서점에도 기웃거리며 시작법과 시집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일대일 코칭의 문제였다. 책으로 접하는 시론은 매우 어렵거나 가까이하기에는 이상적이었고, 최근의 시집은 난해하여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서정시,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을 주는 시는 분석되고 분해되어 개념이 나열된 산문시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시와 일본의 하이쿠처럼 짧은 시가 뒤섞여 있었다. 시집은 20대가 제일 많은 독자층을 형성하였고 그 외에는 시인들이 시집을 구입하는 순이었다. 이곳에서 내 시의 방향을 잡는다는 것이 사막에서 길을 찾아 나섬과 같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안개 낀 거리 문자가 날아왔다. '저녁 10시 강남 치킨점에서 치맥 한 잔' 강사들의 번개팅 문자였다. '참석' 문자를 보내고 지역국에서 이런저런 업무를 끝내고 모인 자리에는 대여섯 강사들이 참여했다. 낮에 일적으로 상대할 때와는 다른, 피곤에 쌓인 몸이지만 밝은 미소에 강사들이 정겨워 보였다. 대부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매너 있는 강사들로 대화도 소곤소곤 나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최근 일주일에 있었던 각종 사건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나는 이런 모임이 참 좋았다. 업무 이외에 만나는 진솔한 풍경들이. 본인들 사는 이야기,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한 이야기, 시부모 모시고 살았던 서러움과 그때를 회상하는 그리움은 이런 자리를 통하지 않고는 듣기 어려운 일이다. 나도 지역국 회의에서 최부장에게 깨진 이야기를 하면서 강사들에게 위로도 받고 강사들 등도 토닥토닥 두드려 주며 함께 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