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디든지 한 두 명은 있다

'나'는 시인입니다

by 모루

제주도의 곶자왈이란 숲과 들판의 중간쯤 되는 지역이다. 해발 300~400미터에 위치한 이곳은 농사를 짓지 못하는 가시덩굴로 뒤덮인 지역으로 제주도 동부와 서부, 북부에 펼쳐져 있다. 나는 곶자왈을 불모지정도로 여기고 있었는데, 조천에 사는 지인이 두릅을 따러 가자는 권유로 한라생태공원 밑의 곶자왈을 처음 가게 되었다. 무작정 따라나선 나를 배려해 지인은 앞서 나가며 막아서고 있는 가시덩굴을 낫으로 끊어대며 길을 터주었고 나는 그의 뒤만 졸졸졸 따라다녔는데도 나중에 보니 날 선 가시에 옷이 군데군데 찢어지고 손등과 얼굴에는 가시에 긁혀 상처가 났다. 하지만 그때 봄두릅의 맛과 곶자왈의 신비함에 대해 한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지금은 봄이면 아내와 함께 달래나 고사리를 채취하러 자연스럽게 가까운 곶자왈에 출입한다. 우리가 찾은 곶자왈은 우리만 알게 되는 아지트처럼 비밀스러우면서도 친근한 공간이 되었다. 얼굴과 양팔은 햇빛에 그을려 도시적인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신기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정신적인 안정과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습득한 풍부한 시어들이 내 시의 탄탄한 바탕이 되었다.


S 강사가 급하게 대구로 내려갔다. S 강사의 부친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오랜 지병으로 누워계셨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고 순간 너무 미안했다. 직장 동료로서 그런 것도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과 그런 사실을 나에게 말하지 못했던 송 강사의 처지를 알아채지 못한 나에 대한 질책 때문이었다. 급하게 본사에서는 C 부장과 L 과장이, 지역국장으로는 나와 분당지역국장이 서울역에서 만나 대구로 문상을 내려갔다. KTX를 타고 가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고 스치는 농촌의 풍경들만이 적막함을 더했다. 일요일이어서 대구의 거리는 더욱 한산했고 더욱이 외진 동네에 작게 차려진 빈소는 더 쓸쓸해 보였다. S 강사의 모친께서 우리를 정중이 맞이해 주셨다. 상주였던 S 강사는 더욱 외로워 보였다. 직장에서 S 강사가 외동이라서 외로워 보였나 싶었는데, 지병으로 누워계셨던 선친을 S 강사의 모친께서 돌보시며 일도 하고 계셨으니, 아들 입장에서는 내심 말도 못 하고 무척 힘들어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런 일련의 모습이 스치면서 빈소에 참석한 우리는 말없이 분주하게 젓가락 질을 해대며 아침부터 시장했던 빈 속을 채우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던 애월에서의 절경은 낙조였다. 애월은 서쪽 지역이라서 낙조는 더 운치가 있었다. 제주도에 내려와 13년이 지난 지금도 노을 진 바다를 볼 때면 언제나 황홀하다. 구름도 내 몸도 핏빛으로 발갛게 물들게 만드는 노을을 만나면 더욱더. 한 번은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다 하늘을 보곤 멋진 노을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막 하교한 딸을 데리고 애월 해안에서 노을을 만끽한 적도 있었다.

애월 해안에는 우리처럼 노을 구경객들이 장관을 보겠다며 해안도로 여기저기에 차를 세우고 긴 줄을 늘여 트리면 어느덧 낙조에 감탄한 사람들의 입가에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서서히 자연에 동화되어 갔고 제주도를 선택한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꼭 잊지 못할 낙조 다음 날이면 영락없이 비가 내렸다. 마치 비 내리기 전 맑음과의 헤어짐 같은 신호처럼.


지역국이 위치한 강남은 생활하기에 편했다. 이곳에 지가가 높은 이유이다. 서울 시내에 진입하기도 편하고 고속도로를 이동하기에도 좋았다. 대중교통 시스템도 잘 갖추어져서 지하철과 버스가 제시간에 맞춰 오고, 버스는 사람들로 붐비지도 않았으며 아파트나 주택가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공기의 질도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특히 청담동이 그랬다.

강사들은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일을 하였고 그들 역시 강남의 편리한 교통과 깨끗함에 살기 좋은 도시임을 인정했다. 가르치는 아이들도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고 예절도 잘 배워서 모나지도 않고 정도 많아서 그만두는 강사들과 헤어질 때면 눈물도 흘렸다. 자칫 강남에 대해 오해하는 이들을 만나면 나는 꼭 그렇지는 않다며 알려준다. 한두 명의 아이들이나 부모의 극성에 오해를 사는 것일 뿐. 강사들 역시 대부분 수더분하고 무난했지만, 늘 다가설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높은 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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