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너랑 다르게 하나에만 치우쳐서 앞만 보고 가는 것 같아. 이전에는 이것도 있네? 저것도 있네? 하면서 선택해 갔는데, 이번엔 좀 급하게 가는 것 같달까? 그리고 너무 하나에 치우쳐있어."
맞는 말이었다. 나도 느끼고 있었고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조급해지면 나는 바로 앞만 보기 시작한다. 주변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하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하나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하나에 매달리느라 다른 것을 놓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정말 좋아하던 것들도 하기 싫어지는 그런 순간들이 찾아온다. 또한 그렇게 나만의 세상에 속에서 파고 파고드는 그런 순간들이 찾아온다. 안 좋은 습관이다. 결국 마지막엔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한다. 주변과 비교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캐나다에서 모든 것이 바뀐 줄 알았다. '나'라는 존재가 다 다 바뀌고, 어떤 어려움을 직면해도 괜찮을 줄 알았다. 이전과 같은 패턴을 극복하는 방법도 다 배워오고 이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캐나다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의 있었던 나의 '부정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경험을 다시는 하지 않을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왔다 가는 것이고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었다. 항상 긍정의 상태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항상 새로움을 느낄 순 없었다.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365일 분비될 순 없었다.
물리치료사로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시작하던 2022년, 캐나다에서 새로운 생활을 마주하던 2023년.
지난 2년은 모든 것이 다 새로웠던 해였다. '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그 어떤 궤도에 오르지 않아도 '시도'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2024년은 조금은 달랐다.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그림을 그려가야 하는 해였다.
경험이라는 '도안'을 참고하여 그리기 시작하는 나의 '삶'이었다. 작품이 하나일 필요는 없었다.
펜을 잡고 흰 도화지에 선을 그어보는 연습을 했다면, 이젠 진짜 스케치를 해 가야 하는 해였다. 스케치를 해가면서 한 번의 수정도 없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스케치 작업을 빨리 끝내고 채색과 '완성'을 끝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스케치도 하기 전에 색칠을 하고 싶어서 주변과 비교했다. 그것도 완성된 그림들을 보고 말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전체를 구상해야 하는데, 나는 작은 부분에 집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부분이라도 빨리 색칠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배우 이하늬님이 하는 말을 보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아직 가진 게 아닌데 그렇게 성취를 하고 나서의 그 허무함을 또 말을 못 해.
빨리 간다고 좋은 게 아니야. 그리고 갖는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야.
열심히 가고 있는 지금의 네가 가장 소중한 거야. 막상 올라가면 산소가 너무 희박해서 한걸음 떼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때가 오는 거야. 근데 그러기 전에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는 거야."
예술을 잘 모르지만 스케치를 할 때 그리는 한 줄 한 줄도 헛되이 그리는 줄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그 순간의 경험의 가치들은 정말 소중할 것이다.
이전 친구가 나에게 말했던 부분들, 그리고 조급했던 나의 상황, 유튜브 쇼츠에서 보았던 말들을 보며 그리고 이 글을 적으며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멀리서 보았다.
내 그리고 싶었던 그림, 미래, 원하는 삶을
경험이라는 것을 녹아내어 나만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알리는 것.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 한 명이라도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
그렇게 그 순간의 고민을 조금씩 덜어내어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사이즈는 현재 '내'가 색칠하여 완성하기엔 컸다. 하지만 이 순간에 내가 스케치 하나하나를 그려갈 수 있는 부분들을 보았다. 전체적인 틀을 맞추고 어떤 그림을 그려가고 싶은지 어떤 부분을 어떻게 스케치를 마무리 지을지 말이다.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 수정을 할지.
이 그림의 완성은 내 생각보다 빨리 그려질 수도 있고, 더 늦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영역, 조금 잘 그려지는 영역, 그리면서 행복하고 재밌는 영역들에 집중하며 '완성'이라는 곳에 나아간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재밌어하는 '글쓰기' 로 시작하여, 사람들이 원했던 하지만 스스로가 어려웠지만 성취감을 느꼈던 '강의' 영역으로 나아갔다. 더 많은 전달을 위해 '판매'로 뛰어들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살려 연구개발 중이다.
내가 잘하는 영역을 키우고 사람들이 찾아오고 더 많은 영향력을 준다면 '행복'이라는 삶의 영역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