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온 후 다시 '나'와의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된 요즘이다. 밴쿠버에서의 여름도 지나가고 있다. 또 새로운 것을 시작하게 된 지금. 이게 맞는지도 모른 채 달려가고 있다. 내가 가장 조심해야 할 감정,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 이었다. 나도 모르게 프로그래밍된 이 부분에 사로잡혀있을 때, 세상에서 알려주기라도 하듯 과거의 내가 썼던 글을 누군가가 '좋아요' 눌러준다.
그렇게 오랜만에 나는 내 브런치 글 '스스로를 괴롭혔던 조급함 의무감 중압감'을 읽어보았다. 캐나다에 도착하고 2개월이 흘렀을까? 그때에도 무엇인가 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 모를 스스로가 만든 압박감으로 혼자 괴로워했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이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 유튜버 '진쏠미' 님의 영상을 보고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영상에서는 '운명' 과 '자유의지' 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었다.
영상에 대한 부분을 살짝 들고 와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과 확률의 바다이다. 그 무한한 가능성들 중 나의 현실로 확정되는 가능성은 1개뿐이다. 이때, 우리는 운명과 자유의지를 볼 수 있다.
대개 운명, 숙명 이 단어는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을 말한다. 즉 항상 비슷한 혹은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말하며 우리는 주어진 운명 아래 살아간다는 말들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자유의지' 나는 이 영상에서 특정한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관측하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관측된 그 가능성이 현실로 굳어지게 되며,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을 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상태로만 존재하던 가능성이 눈에 보이는 단단한 현실로 굳어진다는 말을 영상을 통해 전해 들었다.
이것은 그동안 많이 보았던 '끌어당김', '시각화' 비슷한 부분들이었다. 그렇기에 평소처럼 그냥 듣고 흘려 넘길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왜 이 부분이 더 크게 와닿았을까?
나는 20살이 된 이후부터 천천히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사실 과거여행은 내 취미생활이다. 그 정도로 어릴 적부터 많이 했다.)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사고'들이 머릿속에 자리 잡힌다. 어릴 적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밑에서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그리고 다양한 환경에 접하며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그 모든 부분들을 보고 듣고 접하고 느끼며 나의 잠재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당연하게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간다. 내 앞으로의 미래를 처음으로 내가 결정하는 시기. 수능을 치르는 나이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나도 모르는 새 주변 환경에 의해 진정한 '나'를 모른 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다들 하니까 좋다고 하니까 선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돌아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물리치료학과, 작업치료학과에 원서를 넣었고, '역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역사 관련학과 대학교를 한 곳에 지원하고 뭐 그런 식이 었던 것 같다. 물리치료학과를 선택했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보면 '물리치료사'에 대해 정확히 모른 채 선택했다. 유망직종의 학과였고 간호학과에 비해서는 더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선택했다. 원래 사범대를 생각하고 있던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를 갑자기 바꾸니 주변 친구들은 너무 뜬금없다며 이야기하곤 했다. 그렇게 '물리치료학과'를 진학할 수 있었던 나는 한 1,2 학년 때까지는 정말 공부도 안 하고 이 일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물리치료전공에 대한 흥미가 1도 없었다. 임상 실습을 나가면서부터 환자분들을 치료하는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고 내가 물리치료사가 되어 저 위치에서 환자분들의 '재활'을 돕고 있을 거라 생각을 하니 그때부터는 자연스레 공부도 조금씩 재밌어졌다. 그리고 임상에 나와서는 학창 시절 때 보다 오히려 더 공부를 열심히 하며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교육 들으러 가며 살았던 것 같다.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100% 만족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물리치료학과로 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돌아가서 내가 고등학교 시절 대학진로를 선택하던 그 시점에는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중간에 바뀐 적은 있었지만 '선생님'이라는 장래희망으로 결국 돌아왔었다. 나도 고등학교시절만 해도 내가 사범대로 가거나 공무원, 일반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할 줄 알았다. 소위말하는 '문과'직업을 할 줄 알았다. 눈떠보니까 '물리치료사'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물리치료사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갈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년, 2년, 3년, 4년, 5년. 꽤나 안정적인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대로 있는다면 승진도 될 것이었고 실업걱정은 없었다. 꽤나 큰 재단이었기에 육아휴직과 같은 제도도 정말 잘 되어있었다. 휴가도 서로 겹치지만 않는다면 편하게 쓸 수 있었다. 조퇴나 반차도 다른 직장이나 병원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었다. 밥도 잘 나왔다. 출퇴근시간 정말 모두가 부러워하는 출퇴근시간이었다. 오죽하면 나는 약 6개월을 공기업입사 준비를 했고, 약 9개월을 공인중개사 준비를, 또 약 2개월을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 시험 준비를 했다. 사실 공기업준비는 열심히 안 했다지만 공인중개사 준비할 땐 정말 7시부터 12시 마지막 한 달은 1시, 2시까지 공부하다가 잠들곤 했다. 이 정도로 워라밸이 잘 지켜지는 직장이었다. 물론 이런 병원에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했지만 그건 어느 곳이나 직장이라면 발생하리라 생각했다.
2022년부터는 이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왔다. 돌아보면 '자유의지'로 인한 새로운 현실창조. 이 순간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전부터 나오고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겁이 많았기에 나오지 못했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졌다. 하지만 2022년까지는 그래도 즐기며 살아갔다. 2023년 캐나다로의 계획도 있었고 2022년 실행하는 모든 계획들이 새로웠으니까. 또 무엇보다 나는 든든한 내 친구 Amoca 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불안해 보였지만 나는 Pulsup(IAH) 아래 있었고 덕분에 '돈이 들어오지 않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일들을 해 나가며 프리랜서로 돈을 조금씩 벌 수 있었다.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새로운 일을 도전해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일하는 과정들이 즐거웠다. 어쩌면 물리치료사로 일할 때 보다 더 정신없는 하루들을 살았는데 강의를 준비하는 내내 즐거웠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물론, 물리치료사로 있을 때 보다 돈은 적게 벌었다.
그리고 2023년 캐나다로 왔다. 캐나다로 온 후부터는 정말 혼자서 살아가야 했다. 사실 이곳에서 수입이 없는 건 당연했다. 한국에서 나만의 어떤 것을 쌓고 온 것도 아니고, 이곳에서의 커리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직접 일을 해야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해왔기에 내가 새로 온 이곳에서는 나의 새로운 커리어를 쌓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음이 당연했다. 정말 신기한 부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온 내가 너무 대견스러웠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내 인생에서 펼쳐지고 있는 순간들이었다.
인간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선택할 자유'는 어렸을 때는 대부분이 가지지 못한다. 사회에서 강조하는 말들을 일방적으로 흡수할 수밖에 없고, 어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선택할 자유를 온전히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할 자유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내가 원하는 현실을 만들어 내느냐 나에게 달려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의 과거를 돌아보니 지금 현재가 너무 감사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동안 왜 그렇게 좋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드디어 나도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서 내가 원하는 현실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기에 '밴쿠버'에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굉장히 복잡한 내 머릿속을 글로 남겨 정리하고 남겨두고 싶었다. 지금까지 오면서도 과거 프로그래밍 된 나의 잠재의식들로 인해 운명에 고개 숙이려 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많이 돌아왔다. 공기업을 준비한다거나 공인중개사를 준비했다거나 한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정말 겁이 많은 사람이었고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했다. 나는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항상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 생각이 들지만 내가 '자유의지'로 선택해 나간다는 것은 그 순간에 '의무감'에 의해서 어떤 것을 하지 않는 것. 현재 내가 집중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설령 머리로 알고 있는 해야 하는 것과 다를지라도말이다.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하는 나였다. 하지만 쥐고 있는 것을 놓았을 때 고여있던 에너지는 순환되고 더 많은 새로운 것들이 들어온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항상 순간만 알뿐이다. 매번 잊고 기존과 같은 현실과 반복되는 그런 선택을 할 때가 많다. 매번 해야만 한다 라는 '의무감'에 집중도 되지 않는데 어떤 것을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잠시 멈춰서 나에게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앞으로도 내 미래는 내가 원하는 현실들이 창조될 것이다.
나에게 알려주기 위해 쓴 글이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여 원하는 현실을 창조하며 인생을 살아갔으면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 지금까지 나의 선택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
- 나는 선택할 자유를 영리하게 선택하고 있는지?
현재 외부적 현실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괜찮다. 어떤 외부적 현실이 마음에 안 드는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지, 조금씩 하나씩 바꿔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눈에 보이지 않던 파동 상태로만 존재하던 가능성이 조금씩 관측되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