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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Jul 07. 2023

과거부터 반복되어 왔던 삶의 패턴을 발견했다.

평생의 숙제,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불교용어로 위빠사나(Vipassana) 라고도 부른다. 거리를 두고 대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의미다. 나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의 중요성에 대해 과거부터 글로 많이 접해왔다. 지금 돌아보니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을 할 줄 몰랐다.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항상 나의 생각과 감정이 반영되곤 했다.


나는 어느 날 과거부터 반복되어 왔던 삶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삶의 패턴은 '나' 에게 있어 정말 안 좋게 작용했다는 걸 이제야 알 수 있다. 그 삶의 패턴은 이렇다.

어떤 일을 행하기 시작한다. 아르바이트든, 취직을 하든, 친구를 사귀든, 연인을 사귀든,  새로운 자격증에 도전을 하든 시작되면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접할 수 있다. 처음엔 좋은 면만 보인다. 새로운 곳에 가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도 그저 처음이기에 우리는 '설렘'을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좋아 보이며 진실은 보기 힘들었다. 나는 더 그랬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그저 처음 보는 사람들에다가 나에게 다가와주고 웃어주면 다 좋은 사람들, 그리고 그 덕에 좋은 환경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조금씩 올라올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부정하며 꾹- 눌러버렸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내가 잠깐 예민했나 보다'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부분들에 있어서 주변에는 일철 언급하지 않았다. 살아가다 보면 정말 예리한 사람들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뱉은 내 말속에서 어떤 부분을 캐치하고는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왜 그걸 참고 있어?"라는 말을 해준다.

그때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역시 잘못된 건가? 가 아니었다. 내가 말을 잘 못 했구나였다. 그리고 나는 "아니야. 그렇게까진 아니고, 그래도 이 부분은 좋아. 그래도 이런 건 좋아. 나는 괜찮아. 나는 좋아."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처음 좋다고 생각한 부분에 있어서는 계속 좋다고 생각하며 끌고 가는 나였다. 그리고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들을 꾹 누르며 그래도 이건 좋잖아? 이런 곳이 어딨어? 이 정도면 괜찮아. 하고 스스로 합리화하기 바빴다. 이렇게 눌렀던 감정들은 저절로 풀리지가 않는다. 항상 고여있고, 매 순간순간 쌓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이게 맞는 거야' 하고 나에게 주입시키고, 주변에 역시 '그래도 나는 좋아'라고 말하며 살아왔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감정이 평생 참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이라는 부분은 흐르는 에너지. 고여있으면 저절로 풀리지 않는다. 그 감정들이 터지는 건 한순간이다. 별거 아닌 순간에도 올 수 있다. 길을 가다가, 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휴대폰을 하다가, 책을 읽다가 등. 그렇게 참고 끌고 가고 있던 그 감정들을 조금씩 돌아보기 시작한다.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나는 꾹 누르고 있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끌고 갈 수 있을 때까지 끌고 가고, 애쓰고 참고 버티며 살아왔다. 그리고 한계가 오는 그 순간엔 놓기로 결정한다. 그래 이제 놓자. 그 순간 참아왔던 그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터지기 시작한다. 이게 정말 안 좋은 점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놓자고 결정하는 그 순간, 나는 좋아 보였던 것들까지 안 좋게 보기 시작한다. 별거 아닌 것들에도 나에겐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내가 없어지면 분명 후회할 거야. 이 사람들 내가 없어져서 정말 후회 많이 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한 나의 노력들을 나중에라도 알고 내가 다시 필요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거절하고 싶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한동안 그 생각들로 가득 찬 하루들을 보내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부분에 나의 에너지의 전부를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과거부터 반복되어 왔던 삶의 패턴이다. 아르바이트를 갈 때도 그랬고, 직장에 갔을 때도 그랬고,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끝이 났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까지 혼자 애쓰고 붙잡고 살다가 혼자 그 감정이 터져버려 극에 달하는 부정적인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리곤 다른 사람들이 의아해할 정도까지  그 부분들에 사소한 부분까지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패턴을 얼마 전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패턴이 반복되었던 원인. 왜 이렇게 까지 참아왔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결국 나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를 하지 못했기에 생기는 부분들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감정만 있기에 단점조차 덮어버린다. 그리고 나중엔 평소와 같던, 그리고 장점마저도 그저 안 좋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 부분이 변화된 건 없었다. 변한 건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나의 감정일 뿐이었다. 같은 부분이어도 너무 좋게 보이고, 너무 안 좋게 보이는 것. 나는 이 부분들, 이 삶의 패턴들이 지금까지 반복되어 왔고 나의 삶에 있어 내 '감정적'인 부분에 있어 매우 안 좋게 작용했다는 부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면, 이렇게까지 내 감정이 고이거나 쌓여서 부정적인 상태가 안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좋은 감정, '설렘'에 사로잡혀 나에게 안 좋게 작용하는 부분을 굳이 덮을 필요가 없다. 그냥 그런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다면 초반에 왜 단점을 보지 않기 위해 꾹 누르고 참은 것일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괜찮다며, 나는 좋다고 말을 하고 다닌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다. 며칠간 고민했다. 내가 초반에 단점을 인정하지 못했던 이유. 그 단점을 인정해 버리면 내가 좋아하는 이 것이,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싫어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그 단점을 인정하더라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내가 선택한 부분들은 모든 것들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특히 더 단점을 인정하기 어려웠고 스스로는 좋다고 생각하며 본인에게 합리화하며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말한 부분도 같은 이유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했던 나에겐 특히 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되는 부분이었나 보다.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했고, 인정하기 어려웠던 부분들. 상대방이 짚어줄 땐 스스로가 선택한 그 길에 있어 전체적으로 부정당하는 느낌이다라고 잘 못 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다른 부분이었는데 말이다.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없애는 것이기도 하다. 즉각적인 반응으로 자신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문제를 모르는 척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상황을 바라볼 줄 아는 것. 이것 또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이다. 그리고 '감정'을 배제한 채 바라보는 것.  앞으로 과거 패턴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갈고닦아나가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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