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Talent' 이라는 것은 뭘까?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 맥락에 따라 '타고난 소질' 을 뜻할 때가 많으며 유전적, 환경적으로 타고난 강점이나 장점들 즉, '천부적 재능' 으로 많이들 생각한다.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도 그랬다. 우리는 많은 책에서 개개인별 방향과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재능은 존재한다라는 글을 볼 수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 글들을 읽으며 '내가 지닌 재능을 뭘까?' 라는 의문을 항상 지닌 채 살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가진 재능이 없었다.
나는 공부를 못 했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을 가져오자면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진 부분을 보았을 때, 나는 문과에서 잘하는 부분도 이과에서 잘하는 부분도 없었다. 그나마 사회영역이 점수가 잘 나왔는데 그건 답을 외우고 시험 볼 수 있는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언어(국어,영어)도 수리도, 과학영역도, 사회영역도, 그렇다고 예체능에서도 특별하게 뛰어난 부분도 없었고 재밌어하지도 않았다. 학창 시절엔 해야만 하니까 했다. 운동은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몸치이고 사실 난 방향감각이 없어 아직도 오른쪽, 왼쪽을 잘 모른다. 어릴 적 피아노학원을 다녔지만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나는 체르니 30번 그 어느 중간까지 하다가 그만두었다. 음악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미술은 그냥 못 했고 흥미도 없었다.
그 시절 주변에는 공부를 정말 잘하는 친구도 있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도,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도, 체육을 잘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이 각자의 재능을 살려 미래를 그려나가는 모습들의 부러웠다. 그에 비해 내가 생각한 나는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직업적성검사' 같은 분야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 그것도 확신이 없으니 점수 차이가 나지 않는 중간의 어딘가에 있는 그래프가 나왔긴 하지만 말이다.
같은 걸 배워도 나는 터득하는데 느렸고 혼자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들이 있었다. 뭐든 척척 잘해나가는 친구들, 한번 보고 잘하는 친구들, 본인의 영역을 잘 소화해 가는 친구들 모두가 부러웠다.
정말 결정적이었던 부분은 나는 '배움'에 느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번 배운 것을 끌고 나가려 했다.
수능을 치른 후, 나는 피자가게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곳에서의 모든 것은 나에게 새로웠다.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적응이 되어 갈 때쯤, 파트타임으로 일하길 원했던 나는 다른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친구가 일하고 있던 다른 '피자가게'에 가게 되었다. 이전 피자가게에서 하던 일과 비슷해서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크게 어려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직장은 아르바이트와 다르지만 이전의 실습경험을 살려 적응을 시도했지만, 그곳에서는 그곳만의 시스템이 있었다. 첫 직장에서의 시스템이 적응하기 어려웠던 나는 약 7개월 정도 다닌 후 사직서를 냈다. 그곳에서 적응을 못 했고 패배자 같이 느껴졌던 그 시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부정적인 상태에 빠져있었다. 역시 난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였어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다. 이후 정말 좋은 기회에 직속선배와 연락이 닿아 전에 다니던 병원에 취직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엔 선배가 있다는 마음의 안정감이 들었다. 그리고 첫 병원에선 적응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그곳에서의 경험을 살려 다시 한번 적응을 도전해 보자 라는 마인드로 다니기 시작했던 병원. 감사하게도 잘 적응하여 약 5년간 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어느 순간부터 안정적인 길을 택해왔던 '나'이다.
전 직장을 다니던 시절.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나는 이직을 준비하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자기소개서'를 꺼내어 강점에 대해서 써내려 가곤 했는데 사실 별거 없었다. 모두가 쓸 수 있는 그런 강점을 쓰곤 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강점은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자기소개서에는 강점이라 표현하지만, 사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런 것만 내가 가지고 있었다. 이전, '지금 내 모습이 부모님 모습이라고?' 라는 글에 잠시 언급한 적 있지만,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당시 주변에서는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인데, 이런 정보를 잘 찾네? 어디서 이런 걸 다 찾아와? 잘한다'
'잔머리가 진짜 좋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 나는 생각도 못 했어'
'나는 시작을 못 하겠던데, 대단하다. 시작을 진짜 잘하네'
'생각보다 되게 꾸준히 잘하고 있네. 지금도 하고 있었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에이. 이게 뭘. 내가 다른걸 못 하니까 이렇게라도 해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 시절 주변에서 해주는 말들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나에게 부족한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던 '나'이다.
2023년 캐나다에 오게 된 현재. 매일 노트와 펜을 가지고 다니며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기도, 앞으로의 삶을 그려나가기도 한다. 하루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 내가 살아가고 싶은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으며, 언제 행복하지?
-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강점은 뭘까?
-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재능은 뭘까?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재능'은 미디어에서 보여주었던 공부, 예체능처럼 눈에 보이는 그런 영역에서 뛰어난 부분만 재능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내가 그 부분을 가지고 있을 때 내 삶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내가 수학적으로 천재였다면? 내가 언어적으로 천재였다면? 미술이나 음악, 운동영역에서 뛰어난 한 영역이 있었다면? 그 재능을 가진다면 내가 그리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물론, 지금까지 와의 삶과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어떤 삶이 펼쳐졌을지 전혀 모른다. 다른 생각을 지니고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었으며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조차 달라졌을 것이다. 그냥 지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건 아니었다. 지금 내 삶에서 필요한 재능은 어느 학급에서 1등을 하는 그런 능력이 아니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언어를 잘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인생이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 부분도 고민해 보았다. 사실 이 부분은 아직도 찾아가고 명확화 해가는 과정이다. 확실한 한 가지는 나는 과거의 나처럼 고민하고 꿈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전하는 게 행복하다. 내가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이유. 나는 나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 시절 나는 1:1 로만 가치를 전달했다면, 앞으로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전달할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할 것이고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작가도 시작할 수 있었고 조금씩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그렇게 방법을 알아가고 탐구하고 도전하고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 이 삶이 행복이다. 이 삶을 이루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재능. 그리고 내가 가진 최고의 재능이 문득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할 방법을 찾아보고 조금씩 나아가는 재능을 가졌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나아간다. 그리고 쉬어가더라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나아간다. 이것이 내가 가진 최고의 재능이었다.
하지만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넘어지더라도 나아가는 것. 지금까지 분명 잘해왔지만 본질적인 무엇인가 해결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건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느리다고 생각했던 조급함에서 기인된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못 하고 아직 부족하다는 그런 마음에서부터 올라오는 조급함, 여기서 주저앉아 자책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그런 생각에서부터 나아갔다. 그 시절 나를 나아가게 했던 것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과거 나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인데, 왜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까? 다른 사람의 속도가 빠른 것과 혹은 느린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지?' 전혀 상관이 없는 부분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본인이 느리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나보다 느린 사람도 괜찮아 나는 나만의 속도로 충분히 잘 나아가고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던 시절 TKR(인공무릎관절전치환술)을 하고 재활하러 온 환자분들에게 항상 하던 말이 있었다.
"OOO님 옆에 분 보면 나는 왜 느리지? 하면서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 드는 건 이해해요. 많은 분들이 오실 때마다 물어보거든요. 그런데 사람마다 수술 전 무릎상태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그에 따른 신체적인 컨디션이 모두가 달라요. 그렇기에 회복속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옆에 계신 분이 빨리 회복한다고 해서 나도 저렇게 돼야지 하고 속도 내지 않으셔도 돼요. 무리하시다가 미끄러지거나 넘어진다면 그게 더 안 좋지 않을까요? 항상 본인의 속도에 맞춰서 가는 게 1순위예요. 우리 3주 안에 짠 하고 나아서 달리기 해야 하는 거 아니니까요."
5년 동안 내내 환자분들에겐 본인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가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매번 조급해하고 있었다. 퇴사 후,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재능은 나의 페이스에 맞춰 꾸준히 갈 수 있는 강단함이었다. 이 재능이 나의 것이 될 때 '조급함' '의무감'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즐기는 것.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일로 나아갈 것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 깨닫고 알아차리기 힘든 부분이 타인과의 비교이다.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갈 거야. 타인과 비교하지 않을 거야. 내가 행복한 길로 갈 거야.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아니야. 과거에도 이렇게 말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항상 알게 모르게 타인의 영향을 받아오며 살아왔다. 그랬기에 나의 재능도 깨닫지 못했고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타인이 해주는 칭찬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가진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였다.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살아가는 기준이 타인에서 '나'로 조금씩 옮겨오게 되면서 느끼게 된 가장 큰 변화는 그저 나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도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인생'을 살기에 충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타인의 믿음을 나의 세상 안에 가져오지 않을 것이며 나의 세상은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