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무위키에 의하면 자신감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의미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자존감 = 자신감 인가? 하는 부분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이 두 가지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같은 말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감'은 어떤 결과를 이루는 데 있어서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확신이라고 한다면, '자존감'은 개인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고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정도라고 한다.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꽃 피는 열매 라고 한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자신감은 본인의 능력, 과거의 경험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존감은 새로운 걸 시작할 때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마음가짐을 기반한다고 한다.
내가 '자신감'과 '자존감'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가는 이유는 나는 한 때 자존감 =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 없다고 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생각하길 자신감이 없는 나 = 자존감이 낮은 나였고, 자신감이 없어도 있게 만들어야 했다. 어느 순간 '자신감'이라는 부분도 강박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없어'라는 말 자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지 못했고, 하지만 스스로가 자신감이 없고 두려운 상황은 느끼고 있었던지라 같은 상황이 올 때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실제 자존감 자체도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두려운 상황은 두렵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솔직해야 했다. 한 가지 상황에 대한 자신감은 없을 수 있다. 나는 그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외적 상황을 빠르게 인정하고 외적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이러한 외적 상황을 스스로 인정하고 솔직해지고 난 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없는 나'를 인정하지 못할 때는 오히려 스스로만 탓할 뿐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실패'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실수' 했을 때, 잘못했을 때 그것을 통해서 다음을 배워가고 알아가는 타입이다. 항상 그래왔다. 처음부터 잘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잘한 적이 없었다. 어떤 일을 하면서 말이다. 캐나다매거진, 사업일기 매거진을 읽어봐도 알겠지만 일단 부딪히며 배우는 타입이다.완벽주의였던 적도 없다. 꼼꼼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 최선이었다.
2024년. 예민하고 꼼꼼하고 완벽주의인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하며 스스로 주눅 드는 상황들이 많았다. 물론 친구들에게 티 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미쳐 신경 쓰지 못한 부분들을 다 캐치하며 하나둘씩 해나가고 있었다. 나는 주어진 어떤 것을 할 때 전체적인 '틀'과 '중심이 되는 것' 위주로 한다. 그렇기에 세세한 부분들은 놓치기 일 수였다. 친구들은 오히려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 놓치지 않았다. 일명 '완벽주의'였다.
나는 완벽주의로 태어나지 않았기에 실수했고 정정해 나가며 '완성' 해 나갔지만, 이것은 오히려 친구에게 스트레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나도 '실수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느라 부담을 느꼈고 '실수'를 한번 할 때마다 더 자신감이 하락했고 주눅 들곤 했다.
조금씩 완성이 되었을 때는 '안정'의 그 자리에 올랐지만 이런 서로가 다른 성향일 때 어떻게 잘 이겨나가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서로의 조금씩 배려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
그게 내가 지금까지 찾은 답이다.
자신감과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나'의 과거 이야기를 했다.
다음 글에서는 자존감은 새로운 걸 시작할 때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마음가짐을 기반한다고 했는데, '실패'를 바라보는 나의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여러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나의 성향은 이렇지만 어떤 마인드가 있을 때 주눅 들고 자신감이 하락하는지, 그리고 '실패'를 통해 배우는 나의 성향이 완벽주의 친구들과 함께 했을 때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한번 다루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