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보구 Sep 02. 2020

버려진 옷의 시간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4

 "여기 , 이것 좀 싸주세요"

새 옷으로 갈아입은 손님이 입었던 옷을 카운터로 가져와 계산대 옆 선반으로 툭 던진다. 새 옷을 포장해서 가져가는 손님도 있지만 재빠른 변신을 원해서 갈아입고 가는 사람도 간혹 있다. 누군가 입었던 옷을 포장하다 보면 몸에 걸치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옷의 모습을 보게 된다.


 늘어난 단추 구멍, 오래돼서 닳아진 깃의 목둘레, 푹 튀어나온 무릎과 풀린 주름선, 닳고 해진 주머니...


형태도 변형된 옷 모양을 보다 보면 이것이 좀 전까지 입고 있던 옷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입을 땐 이러지 않았을 것 같은데 누추하고 헐렁해진 옷을 담다 보면 바람 빠진 풍선을 보듯 측은해진다. 그 사람의 겉모습을 꾸며주고 그 사람을 증명하던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땐 드러나지 않았을 부분을 보게 된다. 육체가 빠져나온 옷은 허깨비가 되고 만다. 어디에 내놔도 쓸모가 없을 것 같다. 누군가와 결부되었을 때, 잡고 있던 손을 놔버리고 홀로 떨어졌을 때처럼 처량하고 쓸쓸해 보인다. 떨어져 나간 것들이 다 그러진 않을 것인데. 마치 탈피한 곤충의 무용한 허물처럼 애잔하다.

 선반에 놓인 헌 옷을 보면 지나온 옷의 시간이 묻어난다.

 어쩌면 오랜 시간 추위도 막아주고 더운 땀내도 간직해온 희생의 노고가 끝나고 있음을

 

제 몸 망가뜨려가며 너절하지만 보여주고 있다.


누추하고 허름해진 모습으로


풀 죽은 겸손까지 빛바랜 색상에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


영혼이 빠져나가 털썩 주저앉은 육체처럼


비닐봉지에 둘둘 말려 담기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골프, 얼마나 연습해야 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