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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Jan 20. 2021

종이배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소년은 종이를 접어 배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었다. 종이로 만든 배는 냇물을 따라 흐르다 뒤집힌 것도 있었고 물결을 타고 아득하게 멀어지기도 했다. 비행기는 멀리 날아오르지 못해 장독대가 있는 이층 옥상에서 날려야 했다. 다행히 바람이 부는 순간에 바람을 타면 좀 날아올랐고 잠깐 선회하다 이내 땅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소년은 하늘을 나는 것이 물결을 타고 먼바다로 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뒤로 종이접기도 시들해졌고 더 이상 종이배도 종이비행기도 만들지 않았다. 멀리 떠난 종이배도 곧장 땅바닥에 추락하는 비행기도 외롭기는 마찬 가지였고 그것이 꿈이 되기에 소년은 너무 자라 버렸다. 

그 후로 소년은 친구 누나가 종이학을 접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머리 모양보다 작게 꽁지를 접고는 빛나는 눈으로 누나가 바라봤다. 그 누나는 학을 한 마리 한 마리 접을 때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 것 같았다. 소년은 종이배처럼 종이학도 부질없다는 걸 알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친구 집에는 누나가 접었던 색색깔로 접힌 천 마리 학이 테트라 퍼드처럼 얽힌 채로 투명한 상자에 들어있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중년이 되었고 다시 종이배를 만들고 싶어 종이를 접었지만 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제 그는 종이배를 만들 수 없을 만큼 많이 자라 버렸다. 그래서 그는 종이배를 접던 손으로 글을 쓴다. 


어린 시절 종이배를 접듯이, 냇물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던 배처럼 꿈을 꾼다.

손은 무뎌지고 감각은 시들어졌어도 꿈은 종이배보다 멀리 가고 비행기보다 높다.

그래서

종이 위로 돋아난 활자를 접어 종이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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