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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Feb 05. 2021

삶의 오르막에서 마주친 당신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정지선 앞에 멈춘 차 안에서 나는 신호등을 보며 힘겹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굽어진 허리로 지팡이에 의지한 채 나아가는 모습은 마치 오르막길을 한 발 한 발 힘겹게 딛고 있는 수도승 같았다. 


 어린 시절 하루가 길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지루하고 따분하던 그때는 시간도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자고 일어나면 어른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아마도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도 맘대로 할 것 같고 무언가 즐거운 일들이 생길 것 같은 막연한 기대와 바람이 가슴 가득 채우고 있었던 때였으리라. 그때의 시간은 그렇게 더디게 흘렀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자유와 해방감을 잠깐 맛보고 나자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생활을 찾아 떠나버렸고 나는 누군가 들고 왔으나 놓고 가버린 자루처럼 한 구석에 버려져있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 옮기지 않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나무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텃새처럼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궁금해하며 삶은 흘러가고, 어느 순간에는 그 궁금증마저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삶의 어느 언저리를 돌다 보면 오르막 길을 만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더디기만 하던 시간은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왠지 저 언덕을 넘어가면 막다른 낭떠러지가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의심은 늘어가고 기대의 폭은 줄어드는 것 같다. 그건 어쩌면 축적된 경험이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여 자기 검열의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전에 가졌던 원대한 포부와 끝없던 욕망은 사라지고 절제되고 정제된 꿈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할머니는 인도로 올라서서 잠시 쉬는 듯했다. 하지만 허리를 온전히 펴지는 못했고 굽은 상태로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굽어진 등과 허리에는 삶이 지나온 흔적이 묻어 있는 것 같다.


 삶은 어쩌면 끝없는 오르막 길일지도 모른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가 그 끝을 계산하지 않고 길을 나서듯 삶의 오르막을 그렇게 마주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를 오르던 그분처럼. 내가 짊어져야 할 내 몫의 무게를 나는 이기고 가야 한다. 내 앞에 펼쳐진 이 오르막 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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