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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Feb 12. 2021

빨간 장화를 신은 오리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겨울이 끝나가나 봅니다. 매산등에 올랐더니 홍매화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선명한 하늘에 휘어진 가지가 굽이쳐 있고 이제 막 피어난 붉은 꽃 몇 송이가 매달려 있습니다. 곧게 자라는 큰 나무도 보기 좋지만 적당한 높이에서 허공을 향해 꿈틀대다 휘어진 나무도 멋스러운 것 같습니다. 마치 삶의 변곡점에서 돌아 나오듯 나름의 각도로 허공을 가르며 보여주는 나무의 언어는 많은 영감을 줍니다.


 추운 날이면 오리를 생각했습니다. 지난 1월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냉기를 품은 바람은 전국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추위는 일주일 정도 극성을 부렸고 비교적 겨울에도 따뜻한 남쪽의 도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도시의 중심을 흐르던 '동천'이 얼어붙자 나는 오리가 걱정스러웠습니다. 

 언젠가 뉴스에서 호수에 살던 오리가 갑자기 닥친 한파에 발이 얼어붙어서 꼼짝하지 못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빨간 장화 같은 발이 얼음에 붙어서 꼼짝 못 하고 날개만 파닥이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구조대원이 얼음을 깨고 배를 타고 들어가 발바닥을 얼음에서 분리시켜 줄 때까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차디찬 발바닥으로 전해졌을 냉정한 얼음과 비정하게 불었을 바람을 견디며 밤을 지새웠을 겁니다. 

 그 생각 때문에 동천에 살고 있는 오리가 걱정스러웠습니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동천을 얼린 냉기가 엄습해 왔습니다. 동천의 상류는 인공으로 만든 보를 제외하면 지천처럼 좁게 여러 갈레에서 물이 흐르지만 온통 얼어서 마치 정지된 시간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냉동실에서 굳어버린 그것처럼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풍경은 오리를 그대로 둘리 없어 보였습니다. 강변 전체가 얼어버려서 오리가 머물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류를 향해 얼어있는 강변을 쭉 내려갔습니다. 한참을 내려가자 오리들이 보였습니다. 얼음과 얼음 사이로 만든 호수 같은 정경이었습니다. 그곳은 하류에 가까워 강폭이 넓은 곳이었습니다. 넓은 강은 대부분 얼어 있었지만 중간 부분이 얼지 않고 있었는데 마치 상류와 하류에서 얼어온 얼음이 가운데서 만나서 마지막 연결을 위해 숨 고르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끊어진, 얼음과 얼음 사이로 흐르는 물만 얼음으로 덮이면 강은 전체가 얼음세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과 얼음이 타협하고 만든 완충지대 같은 곳에서 오리들은 줄지어 기차놀이를 하고 꽁지를 하늘로 올리며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몇몇 오리는 얼음 위에서 쉬면서 차자운 물속을 헤엄치는 오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걱정하고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지금은 날이 풀려서 얼어있는 곳은 없습니다.

 홍 매화가 피기 시작한 걸 보면 봄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봄날이 오면 오리 가족이 봄 나들이를 할지도 모릅니다. 마치 물 위에 떠있는 듯 하지만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 내며 움직이는 오리 가족을 보면 물어볼지 모릅니다.

 지난겨울 얼음 위는 춥지 않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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