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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Jul 09. 2021

언젠가 지독한 감상주의자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남태평양의 습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하염없이 비를 뿌렸다. 비는 며칠째 계속 내렸다. 비 긋기를 기다리며 웅크린 곤충처럼 숨고 싶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자신이 그은 선을 바라보는 거미처럼 침잠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차의 유리창에 떨어지며 자국을 만들었다. 완만한 경사의 앞 유리창 위로 얼룩처럼 빗물이 흘렀다. 흐르는 빗물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유리창은 볼록렌즈처럼 바깥 풍경을 굴절시켰다. 앞쪽에 세워진 신형 자동차가 일그러지면서 기괴하게 보였다. 와이퍼를 작동시키자 자동차의 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순간뿐이었다. 비는 더 세차게 퍼부었고 사물은 다시 굴절되어 보였다. 비는 자동차 천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양철지붕에서 나는 소리처럼 시끄러웠다. 빗소리는 여러 개의 북을 빠르게 두드리는 것 같았고 유리창에 일렁이는 빗물은 글썽이는 눈물 같았다. 나는 흘러내리는 빗물로 가득 찬 유리창을 무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내린 비 때문인지 상점가 쪽은 사람이 드물었다. 거리는 한가했고 들어오는 손님도 없어, 책을 읽던 나도 무료하던 참이었다. 어둠이 내리고 비는 느리게 내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흠뻑 비에 젖은 새 한 마리가 매장 입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새의 눈빛에는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히며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니?"

 비에 젖어 달라붙은 새털은 초췌하고 불쌍해 보였다. 삐져나온 정수리의 털 때문에 더 힘들어 보였을까. 어둠이 깃든 짙은 눈동자는 무언가 찾는 것처럼 보였다. 새는 천천히 걸어서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두리번거렸다. 쪼그리고 앉은 내 곁을 지나면서도 전혀 서두르거나 머리를 주억거리지 않았다. 날개를 적신 물기를 털기 위해 홰치기를 하지도, 종종거리지도, 급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고 가는 사람처럼 여유 있게 입구로 걸어갔다. 마치 망토를 걸치고 여행하는 북유럽의 어떤 신 같았다. 나는 쉽게 일어서지 못하고 그가 나간 입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둠은 어느새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비는 격노하듯 급하게 쏟아지기도 하고 대지를 설득하듯, 풀잎에 속삭이듯 부드럽고 찬찬히 내리기도 한다.

하늘에서 전하는 비의 말은 이렇게 매번 달랐다.


 장마가 계속되자 해와 달이 사라졌다. 잠깐 해가 나와도 이내 구름이 덮어버리고 어두워졌다. 바닷가의 바람처럼 눅눅한 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꽃이 시들고 새들이 날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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