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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Jul 09. 2021

길은 길로 이어지고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토요일이라 아내와 OOO 베이커리로 갔다. 아내는 이 집의 커피를 좋아한다. 빵보다 커피가 자기 취향에 맞다고 늘 얘기한다. 변함없이 뜨거운 카페라테를 시키고 나는 크로와상을 하나 곁들인다. 주차장 입구에는 어느 틈에 꽃을 피운 자귀나무가 있다. 아내는 그 꽃을 좋아한다. 자귀 꽃이 브로치처럼 가지에 매달린 것을 보고 몽환적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특별히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무언가를 각별히 아끼지도 깊이 빠지지도 않으면서 살아가는 아내다. 유난히 취향에 맞다던 커피가 오늘은 바디감이 없어 실망스럽다고 했는데 자귀 꽃 덕분에 기분전환이 됐으면 좋겠다. 아침 햇살을 받은 자귀 꽃이 민들레 꽃씨처럼 가벼워 보인다.

차량이 꼬리를 물고 골목길을 메우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는 아침이다.


 골프 연습장 주차장은 사람들이 타고 온 차로 꽉 차 있다. 연습장 타석도 비어있는 곳이 별로 없다. 커다란 거울이 벽면에 붙은 구석진 좌석으로 자리를 잡고 연습장의 마스코트인 거북을 만나러 간다. 그동안 통 못 보다가 며칠째 연속으로 만나고 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큰 것 같다. 어제는 물 위로 올라와서 눈을 마주쳤는데 짙은 푸른 눈이 초롱초롱해 보였다. 마치 알아보는 것처럼 새끼손가락만 한 작은 머리를 내밀고 갸웃거리면서 쳐다보는데 신기했다. 수족관이 비어있어 토니가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베란다에서 일광욕 중이란다. 토니는 빨간 플라스틱 통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뭔가 알아챈 듯이 부산히 움직인다. 밖으로 나오려고 플라스틱 통을 긁지만 역부족이다. 몇 차례 시도하다가 지쳤는지 움직임이 둔해졌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의 등 껍데기를 슬쩍 만져본다. 햇볕을 받고 있는 등 껍데기는 황금빛깔이다. 내 손이 등 위로 가도 미동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내가 등 껍데기를 만진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등 껍데기는 갑옷처럼 단단해서 내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단단한 껍데기 안에 부드럽고 무른 살이 있을 것이다. 위급할 때마다, 두려움을 느끼거나 위험을 감지하면 두꺼운 껍데기 속으로 몸을 숨겼을 것이다. 때로는 좌절해서, 때로는 슬픔을 감추기 위해 몸을 숨겼을지 모른다.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고 클럽을 정리해서 락카로 가는 길에 수족관을 바라봤다. 물속을 유영하다 수평으로 헤엄치는 거북이 한 마리가 보였다.


 오후에 아내는 가족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딸이 호주로 떠난 뒤 그날그날의 일상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거나 공유하면서 지내곤 하는 곳이었다. 남반구와 북반구 차이만큼 떨어진 먼 곳이지만 시차상으론 한 시간 정도 호주가 빨라서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계절은 반대였다. 이곳은 더위가 시작되어 에어컨을 켜지만 그곳에선 히터를 틀었다고 했다. 낙엽이 지고 있을 때 반대쪽에선 꽃이 피었다. 한쪽이 융기할 때 한쪽은 침강하듯이 계절은 반대였다.


 사진 속의 아내와 딸은 낯선 사람 같았다. 어느 백사장이었을까. 몇 개의 텐트가 뒤로 보이는 파라솔 아래서 밀짚모자를 쓴 아내는 활짝 웃고 있었다. 절반이 잘려나간 수박을 간이 탁자 위에 올려놓고 반대편 의자에 앉은 딸은 조막만 한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며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세 살 정도 되었을까. 나와 딸이 찍힌 사진에는 오래전 상점이 배경이었고, 노랑 바탕에 검은색 물방울무늬 비키니와 수영모를 쓴 딸은 젖살이 빠지지 않아 통통하고 귀여웠다. 모래가 발바닥에 묻으면 진저리를 치면서 유난을 떨던 그때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사진은 오래돼서 색이 바랬지만 기억 속의 그 시절을 선명하게 떠올려주었다. 기억은 시간 속에서 켜켜이 쌓이고, 묻히고, 잊히기도 하겠지만 어떤 매개체를 통해 상기될 때, 한 장면은 엊그제 일처럼 생생해지기도 한다. 너무 오래돼서 약간 낯설기도 하지만 나와 아내의 젊은 시절이, 딸의 어린 시절과 함께 있었다. 우리가 한 가족으로 한 공간에 있었던 시간이 거기 있었다.


사무실에서 최근에 배우고 있는 인물 드로잉을 연습했다. 윤곽선과 명암 표현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뚜렷하지 않던 선이 반복할수록 점점 짙어지면서 확연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무른 연필심으로 연습장 종이 위에 선명하게 획을 그었다. 그늘진 부분을 조금씩 더 칠할수록 입체감이 살아났다. 밝음과 어둠은 늘 같이 자리하는 것일까. 어두울수록 밝음이 드러나고 밝을수록 어둠이 짙어 보이는 것, 그런 명암대비를 조화라고 부르는 것일까. 

연필심은 단단할수록 색은 옅어지고 부드러울수록 짙어진다. 경도가 높을수록 꾹꾹 눌러서 써야 하고 무를수록 닿기만 해도 묻어난다. 연필심의 경도 등급을 보다 보면 사람의 심성도 저렇게 표시해놓으면 좋을 것 같다고 잠시 생각한다. 그러면 누군가를 만나도 연필 고르듯 빨리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무른 연필심을 좋아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글을 쓸 때도 약간 뭉툭하고 슬쩍 번지는 펜을 좋아한다. 겉은 단단하고 속은 무른 것. 겉은 빠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크로와상같은 것들. 가지를 꺾어 물에 두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는 물푸레나무 같은 것들.

무른 연필심이 닳아서 깎으려다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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