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보구 Aug 06. 2021

여름에,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태양이 정수리를 비취는 시간에 밖으로 나간 것이 잘못이다. 그림자는 점처럼 작았고 아스팔트는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같았다.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어서 휑하게 트여있는 길은 오히려 햇볕을 노골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담벼락 옆에 세워진 자동차 밑으로 더위를 피하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고 살아있는 것은 미동도 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화방 앞 감나무는 초록빛 잎들 사이로 올리브처럼 작은 알맹이를 매달고 태양을 견디고 있었다. 

 나온 것을 후회했지만 나는 사막을 지나는 낙타를 생각하며 천천히 걸었다. 가진 것 없지만 거칠 것 없었던 하이쿠 시인을 생각하며 걸었다. 하지만 햇살은 과녁을 명중시킨 화살처럼 전율하며 구석구석으로 열기를 옮기고 있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은 목덜미를 타고 등으로 흘렀다. 주차장까지는 먼길이 아니지만 쏟아지는 햇볕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복사열로 몸은 금방 젖어버렸다. 걷는 것이 형벌 같았다. 만약 이 순간, 누군가 만나자고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주차장 주변의 나무는 스스로 그늘을 만들어 위로하고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를 파고든 매미가 남은 짧은 생이 억울하다는 듯 그악스럽게 울면서 여름은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밀폐된 차 안은 훈증된 공기로 숨을 턱 막았다. 시동을 켜고 차문을 내리면서 에어컨을 틀자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의 흰구름이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이렇듯 뜨거운 빛을 내리쬐는 태양 주변에 저토록 천진한 구름이 떠있다니. 

 나는 느린 피아노곡을 틀고 음계 사이의 여백에서 잠시 생각한다. 땀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지만, 파란 하늘 위로 붉게 타오르는 배롱나무를 그리고 색상의 변화를 보이며 단단해지는 열매와 다디단 과일을 보면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훼절할 수밖에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모든 것을 익히고 태워버리는 태양의 열정 앞에서 그리고 그것을 견디는 나무의 숙명을 보면서 나는 이마로 흐르는 땀을 닦지 않았다.


 훗날 나는 한낮의 여름에 던졌던 그 물음에 무어라 답해야 할까. 아무도 찾지 않고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계절이 오면 나는 답할 수 있을까. 여전히 계면의 얼굴로 깨어난 소녀처럼 공란을 바라보고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 THE OPE ` 누구나, 아무나 허락하지 않는 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