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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Dec 21. 2021

먼지가 내리는 시간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두터운 옷들이 많아지면서 가게 안은 먼지가 극성을 부린다. 어떤 옷은 비듬을 털듯 먼지를 쏟아내기도 한다. 묻은 먼지를 닦아내다 보면 하루가 가는 경우도 있다. 바닥 청소를 하기 위해 거름 걸레로 문지르면 보이지 않던 먼지가 어느 순간 뭉텅이로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성과든 눈에 보이면 만족감을 준다. 특히 먼지처럼 결과물로 보상해주면 더욱 그렇다.


 일상은 먼지처럼 가볍게 흘러간다. 옷가게의 먼지는 아무도 없는 밤이면 내린다. 옷을 비추던 조명등이 꺼지고 손님을 맞이하던 문이 닫히면 수조의 물이 진정하듯 실내는 어둠과 함께 고요의 순간이 온다. 모든 것이 멈추고 공기마저 굳어버린 시간에 지상에서 가장 가벼운 침묵이 소리 없이 내린다. 먼지는 나무 탁자 위에는 서리처럼 스며들고, 자작나무 숲의 눈처럼 옷걸이 사이로 쌓인다. 낮 동안 바람에 쫓기기도 하고 음악 소리에 놀라 허공으로 올랐다 거미줄에 걸리기도 했을 것이다. 밝은 햇살이나 조명등 앞에서 꼼짝 못 하고 벌벌 떨었을 먼지도 있다. 아무도 눈치 못 채게 구석진 곳에서 웅크리고 있기도 했을 것이다. 별빛이 어둠에 스미는 밤이면 떠돌던 영혼 같은 먼지들이 바닥에 몸을 눕힌다. 어느 곳에도 가누지 못한 몸과 영혼이 어둠에 스며들어 밀폐된 시간과 공간으로 만든 영원의 찌꺼기가 된다. 조용히 최후를 맞이하면서 먼지는 켜켜이 쌓인 시간을 안을 것이다.


 가게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려고 준비하던 아내가 각 티슈의 화장지를 툭 뽑으면서 말한다.

" 이렇게 하루가 또 갔네. " 

" 그러네, 휴지를 한 장 뽑아 쓰듯 하루가 갔네. "

 하루는 그렇게 티슈를 뽑아 쓰듯 빠르게 흘러간다. 지나 보면 엊그제 소의 해를 기념하며 글을 쓴 것 같은데 달력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는 12월이다. 가벼운 먼지가 내려앉은 달력에도 지나온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을 것이다.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는 `비범함은 무수한 평범함이 쌓인 결과다. `라는 구절이 있었다. 어느 순간 나타나는 비범함은 결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차곡차곡 쌓인 내면의 정갈함 속에서 바른 심성이 드러나고 여유로움도 생길 것이다. 어떤 위기나 바쁜 상황이 왔을 때 슬기롭게 대처하려면 평소의 준비가 필요하다. 무수히 쌓인 평범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준비해 두었더라면 그 순간에 비범함을 발휘하지 않을까.


 티슈를 뽑는 짧은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피어날 것이다. 미립자처럼 미세한 먼지 조각은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리고 먼지가 만나는 신독의 시간을 거처 바닥으로 내릴 것이다. 그처럼 겸허하게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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