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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Mar 06. 2024

팔레스트리나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버스는 로마 외곽에 있는 한식당 앞에서 정차했다. 한글 메뉴판이 보였고 한국의 전통놀이를 사진으로 찍은 액자가 군데군데 보였다. 메뉴는 비빔밥, 김치찌개, 제육볶음, 삼겹살까지 다양했다. 주로 한국인 단체관광객이 찾는 곳인 듯했다. 음식은 미리 주문해 놨는지 밑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며칠 만에 먹는 한국 음식이라 기대가 컸다. 이탈리아에 도착해서 먹었던 음식은 생각보다 많이 미흡했다. 지중해 식단을 떠올리며, 과일과 채소가 풍성한 식탁과 다양한 종류의 빵이나 해산물, 견과류, 요거트를 기대했었다. 맛과 건강을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음식을 상상했던 내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샐러드도 소금만 뿌려진 채 나온 것 같았다. 오리엔탈 드레싱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올리브 오일이나 발사믹 정도를 생각했는데 짜기만 했다. 소스로 맛을 내거나 풍미를 돋기 위한 감미는 없었다. 전반적으로 재료 본질의 맛에 치중하고 짠맛만 한 숟갈 더한 것 같았다. 아침식사는 크로와상과 에스프레소를, 점심은 닭고기나 돼지 뽈살 스테이크, 저녁은 파스타나 피자였다. 그중에 돼지 뽈살 스테이크는 어감 때문인지 좀 불편했다. 직관적으로 돼지얼굴이 상상되어 더 이상 이름을 묻지 않았다. 우리가 먹은 김치찌개는 조미료맛이 많이 났고 매웠다. 

 좌석은 네 명씩 앉아야 해서 경상도 말투의 세 명의 여자 일행과 동석했다. 이번 여행은 총 18명으로 구성되었는데 남자는 4명이었다. 신혼부부 한 쌍과 엄마와 함께 온 중학교 2학년 남학생 그리고 어머니와 담배를 피우던 뚱뚱한 남자까지. 홀로 온 나는 식사 때면 경상도 3인조와 주로 합석했다.


 저녁식사를 끝내자 버스는 고속도로를 지나 어두운 산길 같은 곳을 달렸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멈췄는데 건너편에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어른 두 사람이 팔을 벌려도 부족할 것 같은 굵은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었다. 도로 폭이 좁아 교행 하는 차를 먼저 보낸 버스가 성곽 같은 벽면을 비켜서 섰다. 바닥은 경사졌고 공처럼 둥근 물건을 떨어뜨리면 도저히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중세의 도시 팔레스트리나였다.  

 호텔이 있는 광장으로 버스가 올라갈 수없어 셔틀 승용차가 짐을 싣고 우리는 걸어서 이동했다. 바닥이 넓고 층간 간격이 완만한 오래된 계단이었다. 주변엔 굵고 키가 큰 나무가 많았다. 인솔자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이탈리아의 역사를 비롯해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얘기를 들려줬는데, 산의 중턱이나 꼭대기에 도시가 형성된 이유는 침략에 대비해서라고 했다. 도시 광장에 항상 있는 분수는 식수로 사용되었고 수압을 이용해 식수원에서 도시까지 공급한다고 덧붙였다. 계단을 한참 올라가자 광장이 보였고 분수 역시 물을 뿜고 있었다.  

 자물쇠나 열쇠가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사라졌다. 특히 호텔에서 열쇠를 주는 경우는 없는듯하지만 이곳에서는 매번 열쇠고리에 방번호가 새겨진 열쇠를 받았다. 이번에 내가 배정받은 방은 구석진 곳에 있었다. 열쇠가 두 개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복도 맞은편에 공용으로 쓰는 화장실 겸 욕실이 보이고 201호와 202호가 붙은 문이 나란히 있었다. 202호의 열쇠를 돌리자 문이 열렸다. 방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바질과 베르가못향이 뒤섞여 났다. 두 개의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방이었지만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갈 것 같았다.

 짐 정리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호텔 바에는 일행들이 몇 보였지만 나는 이 도시가 궁금했다. 우산을 쓰고 광장을 건너 골목길로 접어들자 간간히 귀가하는 승용차가 지나갔다. 자동차는 대부분 해치백이 많았고 우리나라의 모닝정도의 크기였다. 좁은 도로 사정과 주차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인솔자의 말에 의하면 이곳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이동수단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식이었다. 우리의 과시욕이 자동차로 표출되어 나이들수록 크고 좋은 차로 나타나는 것에 비하면 의외였다.

 빗물은 도로의 패인 곳에 고여있어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울퉁불퉁한 돌바닥은 약간 미끄럽기도 했지만 낭만적이었다. 가로등과 비에 젖은 까만 돌바닥과 회벽칠이 벗겨진 성당과 끝없이 이어진 계단들과 녹색의 우산이 내가 가진 전부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나에게 다가온 낯선 풍경이 주는 안락감을 금방 감지하고 자유를, 편안함을 느꼈다.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눕자 벽에 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 인쇄된 니콜라 푸생의 그림이었다. 아테네의 장수였던 포키온은 전쟁에 패했다는 죄목으로 화형 당한다. 당시에 화형은 시신을 재로 만들어 흩어지게 함으로써 무덤을 갖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었다. 무덤이 없는 시신은 영혼이 쉴 곳을 갖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이 그림에는 산을 배경으로 곧게 선 사원을 중심으로 커다란 나무가 양쪽에 있고 한 여인이 바닥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모으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포키온의 재가 있는 풍경>에 등장하는 포키온의 아내는 남편의 재를 물에 타서 마시고 자신의 몸으로 무덤을 만든다.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그림이 푸생에 의해 편안한 풍경화처럼 그려져 있다. 마치 멀리서 보면 다 아름답다는 듯이 , , ,

 침대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나는 게으르고 느려서 함께 지내는 사람에게 항상 폐를 끼친다. 심지어 예민하고 섬세한 면도 있어 까탈을 부린다.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주의가 산만하고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가져서 혼자 오기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가로등 불빛과 비에 젖은 승용차가 흐릿해졌다.

 ` 그날 밤 나는 저수지에 갔다. 보름달처럼 큰 달이었다.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있었다. 단발머리소녀가 개망초를 꺾어 들고 있었다. 눈매가 선명했다. 나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그녀가 뒤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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