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스토리텔링>을 읽고나서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회사 면접을 보거나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고백하는 등의 개인적인 상황을 비롯해서, 영업을 하거나 상사 및 회사 외부 사람에게 발표를 하는 등의 업무적인 상황까지 그 경우는 매우 다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야기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잘 전달된 좋은 이야기는 기억에 오래 남고, 감동을 주며, 개개인에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야기 없이 그저 통계자료나 각종 데이터와 정보를 보았을 때, 10분 후 머릿속에는 정보의 5%밖에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숫자를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거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현재 빅데이터와 AI가 모든 것을 바꾸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에 닿는 위대한 스토리가 없다면 고객이나 동료 직원들은 그 내용을 금방 잊게 될 것입니다.
같은 정보라도 스토리나 사건을 결합해 전달하면 사람들은 그 정보를 오래 기억합니다. 오히려 접한 정보 이상을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자 '제롬 브루너'에 따르면, 사람은 스토리를 통해 정보를 접할 때 22배나 더 잘 기억한다고 합니다. 설령 아주 딱딱한 정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에 스토리를 덧붙이는 행위가 별것 아닌 듯 보여도 이는 모든 것을 바꾸는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픽사에서 <토이 스토리 2>, <토이 스토리 3>,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업>, <카>, <라따뚜이>, <몬스터 대학교>의 스토리 제작자로 일한 '매튜 룬'은 위대한 스토리는 위대한 소설이나 연극, 영화, TV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비즈니스나 브랜드에도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무대 앞 좌석에 앉아 있는 관객이든, 장난감 가게를 어슬렁거리는 고객이든,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든, 이들의 관심을 끌고 물건을 구매하게 만드는 힘은 마음을 감동시키는 스토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매튜 룬은 저서 <픽사 스토리텔링>에서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요소와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인상 깊은 요소와 몇 가지 팁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집중력이 지속되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8초라고 합니다. 누군가 떠나기 전에, 등을 돌리기 전에, 무언가 가치 있다고 확신시키는 데 단 8초가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투자자 앞에서 사업을 설명할 때, 희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대중에게 광고를 할 때 8초 안에 관심을 끌지 못하면 이미 끝난 게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8초 안에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8초 안에 후크로 승부수를 던지려면 '만약에'로 시작하는 시나리오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만약에 프랑스 요리 전문가가 꿈인 생쥐가 있다면 어떨까?" 이 후크는 <라따뚜이>에 사용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생쥐가 요리사를 꿈꾸는지 사람들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또한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에서는 "만약에 어떤 아이에게 가장 아끼던 장난감 대신 새 장난감이 생긴다면?"이라는 후크가 사용됩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후크는 마법처럼 작용하는데, 영화뿐만 아니라 회사 직원들의 사기를 복돈을 때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때도 다 통할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2001년 아이팟을 소개하면서 이런 후크를 던졌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주머니에 수천 곡의 노래를 담아서 다닐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당시는 기껏해야 약 10곡의 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워크맨 같은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로 듣던 시절이었습니다. 스티브는 8초 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발한 말을 던진 것입니다.
훌륭한 후크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면, 변화는 가슴을 설레게 하고 계속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후크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은 이제 그 스토리가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궁금해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변화의 가능성이 보일 때 마음이 끌리곤 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방식을 적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어떻게, 왜 그것을 알아냈는지 궁금해합니다.
변화는 흥미진진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변화는 우리를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게 하고, 용기와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변화를 강요하는 외부 자극이나 충격적인 사건을 겪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은 15%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 외 대다수는 자신에게 유익한 변화라 할지라도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부터 담배를 끓어야지"라든지 "오늘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지"라고 다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심장병에 걸린다거나 아이들이 다 자라 집을 떠나는 등의 어떤 큰 변화가 발생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변화를 미루고 또 미룹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변화의 순간 품는 저항감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트리텔링이 사람의 마음과 행동과 철학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이유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난 다음에 결심을 굳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인물이든 허구 인물이든 특정 캐릭터가 신뢰할 만한 변화를 보일 때 듣는 사람도 변화하는데, 이 과정을 '뉴럴 커플링(neural coupling, 신경 결합)'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자주 접하던 신화, 전설, 동화, 우화, 영화, TV 프로그램, 노래 가사도 모두 스토리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형식에는 스토리 안에 담겨 있는 교훈이 관객의 사고방식을 바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야기 속 캐릭터의 변화를 활용하는 것이 듣는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최상의 방법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유대감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그분은 기혼인가요, 미혼인가요? 연령대와 성별은 어떻게 되나요? 투자자인가요, 고객인가요, 동료인가요? 매튜는 스토리를 전달하려면 청중의 열정, 고민, 습관, 특이점 등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정보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도 대상과 상관없는 이야기만 늘어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묻는다면 상대에게 걸맞은 대답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연배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세대가 공통으로 느낄 만한 동질감을 활용해 교감해야 합니다. 듣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면 결국 '쇠귀에 경 읽기'가 됩니다. 또한, 여러분은 청중의 규모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섯 명이 모인 비즈니스 모임인지, 50명 앞에서 진행하는 홍보 연설인지, 수 천 명이 보는 웹사이트나 광고인지 파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픽사는 많은 청중과 교감하기 위해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에 관한 보편적 주제를 다루어 왔다고 하는데요, 보편적인 여섯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랑과 소속감
2. 안전과 안정
3. 자유와 자발성
4. 권력과 책임
5. 즐거움과 재미
6. 인식과 이해
가령, <니모를 찾아서>에서 주인공 말린은 아들 니모를 과잉보호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한편으로는 니모의 '안전과 안정'을 간절히 바랍니다. <인크레더블>의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가지만 은퇴 후 지루한 삶을 보내며, 다시 한번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합니다. 이런 그가 바라던 것은 '자유와 자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는 늘 인생이 '즐거움과 재미'로 가득하기를 바라지만 온전한 삶은 슬픔, 분노, 두려움, 짜증 등 여러 감정을 포용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매튜는 앞선 스토리텔링의 기본 법칙들을 아무리 잘 지켜도 스토리에 진심이 없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의 힘은 발휘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스토리텔러의 진심이 담기지 않은 스토리는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조종당한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진심 없는 스토리를 들은 사람은 감동보다는 구매를 유도하는 이야기에 속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훌륭한 스토리텔러는 속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진정한 감정에 다가가는 스토리와 경험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청중과 단단한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너무 똑똑한 척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약한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사실 이는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상처나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면 실패와 조롱으로 이어진다고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매튜는 나약함이야말로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나약함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여, 그 스토리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즉, 완벽함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스토리에서 캐릭터의 약한 면모를 솔직하게 드러낼 때 관객은 공감하고 진정성을 느낍니다. 기업 스토리를 전할 때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제품이나 솔루션을 제안할 때도 성공에 수반된 고통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은 여러분의 인간적 면모에 공감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될 것입니다.
매튜는 제대로 된 도구와 지침, 훈련만 있으면 누구든 지금보다 더 뛰어난 스토리텔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제안한 팁과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훌륭한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약점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에 더해 실패를 느긋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실패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며, 위대한 예술가나 기업은 실패를 환영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수없이 실패해 왔습니다. 또한 좋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좋은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합니다.
매튜는 글을 쓸 때 짧게 쓰든 푹 빠져 정신없이 쓰든 서툴게 쓰든 상관없으며, 그저 글을 쓰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매일 글쓰기 시간을 따로 확보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글쓰기 비중을 높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스토리가 완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매튜는 머리가 상쾌하고 활력이 넘칠 때 글을 쓰라고 합니다. 이른 아침이든, 늦은 밤이든, 운동한 다음이든 상관없으며,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은 마음의 대기실에 잠시 넣어두라고 말합니다.
그는 글쓰기에서 가장 힘든 건 처음 10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곤 꾸물거리지 말고 곧장 모니터나 노트 앞으로 가서, 10~30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글을 쓰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나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생각나는 대로 쓰고, 다음으로 그 순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아무 소재도 없이 시작하는 것보다 뭔가 쓸 거리가 있는 편이 훨씬 시작하기 쉬우며, 글을 다 쓰면 다시 검토하고 수정하고 새로운 영감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면 됩니다.
광고나 연설, 회의 시간 발표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완벽히 담은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특히 마감에 쫓길 때는 더더욱 그럴 텐데요, 매튜는 필요할 때 바로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여러 스토리를 마련하라고 제안합니다. 우선 여유가 있을 때 스토리의 뼈대가 될 만한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각 스토리를 주제별로 분류합니다. 자기희생이나 고난 극복과 같은 주제의 스토리를 카테고리별로 나누고, 연설이나 발표 자리에서 주제와 잘 맞는 이야기를 골라 요긴하게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강연 주제가 업무상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면 처음 춤을 배웠을 때나 외국어를 터득했을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때의 경험담을 선택하면 됩니다. 팀워크가 중요한 상황에서 동료들을 격려해야 하는 자리라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만들었던 모임이나 팀으로 협동심을 발휘해 성취했던 경험을 고를 수도 있습니다. 그는 개인이 경험한 스토리는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동시에 중요한 메시지도 전달하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그동안 '스토리텔링'에 대해 소설가나 브랜드 마케터 정도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저는 소설가나 마케터가 아님에도 항상 저의 이야기를 해왔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겨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스토리텔링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튜 룬이 안내한 원칙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는데요, 앞으로는 이런 원칙과 팁을 기억하고 학습하며 보다 훌륭한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해 노력해보고자 합니다!
"기왕 하려면 아주 잘해야 한다.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친구들도 데리고 오고 싶을 만큼"
- 월트 디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