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환청이 들린다

양치기 소년에게 번번이 당하는 중

by 김돌

(※ 경고 : 여름도 다 지나갔는데 쓸데없게도 무서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음)


봄에 태어난 아이가 어느새 만 4개월을 지나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매일 새벽잠을 설쳐서인지 하루가 길게 느껴졌던지라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흐른다며 투덜거렸었는데, 벌써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 가을의 전조가 드리워진 계절이 됐다. 일부러 우릴 괴롭히기라도 하듯 늦은 밤마다 잠에서 깨어 울던 아이도 이제는 너댓 시간씩 잠자코 누워 오랫동안 잘 자는 '착한 아이'가 됐다. 우리 사정이야 아랑곳없이 무심한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달력에 맞춘 틀에 박힌 선곡으로 어스윈드앤파이어의 'September'를 틀어주는 9월.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계절이 됐다. 어느새 흘러가버린 지난여름을 돌이켜보니 환청에 시달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지며, 넷 중 한 번 정도는 실제 울음소리긴 했으나, 아내와 나를 괴롭히던 가짜 울음소리였다. 우리 귀를 송곳처럼 찔러대던 아기 울음소리. 그 소리 때문에 밥을 먹다가도 수저를 내팽개치고 허겁지겁 달려 나가거나, 잠자리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거나, 설거지나 청소를 하거나 건조기에서 꺼낸 마른빨래를 개다가도 손을 떼고 아기가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뛰어가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잠만 잘 자고 있는 것 아닌가.


이건 평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환청이었다. 그동안 환청이라고는 아주 오래전에 사촌 형인 C에게서 들은 군대 이야기에서밖에 들어보지 못했다. 여름도 다 지나간 마당에 때아닌 납량특집이지만 그 이야기부터 먼저 풀어놓고 싶다. 이건 어디에서 들은 '-카더라' 썰이 아닌 본인이 직접 겪은 생생한 경험담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올여름은 지나치게 길었던 장마 때문인지 그리 덥지가 않아서 계절 특수를 타는 납량특집 따위가 필요 없었다. 여름답지 않은 여름이었다.




(C 형의 시점에서)


혹한기 훈련날이 됐다. 제기랄, 이걸 또 해야 한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그냥 콱 동사해버릴 걸 그랬다.

강원도는 한여름에도 밤이 되면 추웠다. 그러니 겨울엔 오죽하랴. 몸속의 피마저도 얼어붙어서 몸에 피가 잘 돌지 않는 듯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이제는 춥다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멍한 눈빛으로, 내 몸이 아니라 기계인 양 두 다리만 터벅터벅 내딛는 꼴이었다. 내 의지로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계속해서. 사방은 온통 새하얀 눈뿐이었다. 눈이 어찌나 내리는지 바로 내 앞의 앞에서 걷는 김 이병마저도 실루엣만 흐릿하게 보였다. 고개를 들어 제대로 볼 힘도 없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군장 무게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앞에서 걸어가는 녀석의 군홧발만 쳐다보며 따라갔다.


사박 사박 사박.


꿈인지 생시인지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인지. 몽롱한 정신으로 까만 군홧발을 따라서 다리를 움직였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그런데 어느 순간,


"최 병장, 너 이 새끼! 미쳤어?!"


화들짝 놀라서 잠이 깼다. 어느새 다가온 소대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내 뺨을 때리고 있었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뺨이 얼얼했다. 추운 날씨에 감각이 다 죽은 줄 알았더니만 아직 아픈 감각은 살아 있구나.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나는 소대장에게서 소름 돋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대장의 말인즉슨,


나 혼자서 대오를 벗어나서 절벽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뒤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듣는 척도 안 했다고. 멍한 눈빛으로 실실 웃으면서 한 발 한 발 비탈진 절벽 쪽으로 다가가고 있어서, 깜짝 놀란 소대장과 부대원들이 달려와서 나를 붙잡았다고 한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나는 분명히 앞에서 걸어가는 군홧발만 따라갔을 뿐인데. 분명 강 상병의 까만색 군화였는데...


섬뜩했던 사건을 남긴 혹한기 훈련은 다행히도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마침내 제대를 일주일 남겨 둔 때가 됐다. 지긋지긋한 군대였지만 막상 나갈 때가 되니 아쉽기도 하고 괜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무척 조심스럽게 생활했다. 말년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더라.


"최 병장, 뭐라고?"


소대장이었다. 갑자기 이게 뭔 소리여.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부른 적 없다고 대답하니 소대장은 머쓱해하면서 괜스레 귀를 후벼댔다.


"나 안 불렀어? 이상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보다."


소대장이 몸이 허해졌나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혹한기 훈련 때 이후로 갈수록 살이 빠지는 것 같다. 젊은 양반이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지.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그에 대한 마음은 곧 짜증으로 바뀌었다. 이틀 남짓 동안 소대장은 계속해서 이상한 행동을 했다. 분명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는데, "뭐라고?", "나 불렀어?" 하며 혼자서 대답을 하고, 아무도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말에 매번 머쓱해했다.


내가 제대하기 사흘 전, 소대장은 일이 있어서 시내로 나갔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차를 끌고 나갔는데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트럭을 피하지 못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부대원들은 소대장의 죽음에 대해 한동안 수군거렸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귀신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니만. 그래서 소대장이 한동안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대답을 한 거라면서.


수군거리는 부대원들과 달리 나는 왠지 미안해졌다. 그리고 사실은 무서웠다. 지난겨울에 날 절벽으로 끌고 가려했던 알 수 없던 존재가, 여기까지 따라와서 나 대신에 소대장을 끌고 간 게 아닐까. 나 대신에...





몇 년 전에 이 이야기를 C형에게서 들었을 땐 소름이 돋았다. 여름엔 역시 공포담, 그리고 그중에서도 군대 괴담이 최고로 무섭다. 그렇게 뭣도 모를 때는 귀신이 참 무서웠는데,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임을 알게 됐고, 이제는 사람 중에서도 갓난아이가 가장 무서운 존재로 느껴진다. 공포심이라는 건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혹은 알고 있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서 비롯되는 법. 그러니 어렸을 땐 알 수 없는 존재인 귀신이라든지 드라마 <X-File>이나 <M>에서 나오던 초자연적 존재, 혹은 새벽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저 멀리서 모자를 둘러쓰고 시커먼 옷을 입은 채 내 쪽으로 다가오는 낯선 이가 무서웠다. 나이가 들어가니 열 길 물 속보다 알 수 없는 한 길 사람 속이 무서워졌고, 아무리 열심히 벌었음에도 당장 내야 할 월세나 카드값, 대출 원리금 따위 돈 문제가 무서워졌다. 귀신이 문제가 아니다, 내 얇은 지갑이 더 무섭지.


지금은 돌도, 아니, 반돌도 지나지 않은 우리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4개월이나 함께했음에도 종종 왜 우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고, 이유를 알더라도 웬만해선 달래지지 않으니 이 무서움의 원인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혹여나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닌지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며 항상 눈과 귀를 아이에게 집중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표정을 찡그리기라도 하면 마음이 덜컹하고 내려앉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대사 한 구절을 빌려 표현하자면, '내 관심은 온통 너'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하루 24시간 온종일 아이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내가 기계가 아닌 이상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이런저런 집안일도 처리하고, 재택근무 날엔 노트북을 끼고 일도 해야 하고, 밤에는 잠도 자야 한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잠시 눈을 뗀 그 순간 영락없이 '응애응애' 하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아이를 재워놓은 침대로 달려가 보니 이상하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서러운 울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었는데 아이 얼굴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세상 평화롭다. 아무리 봐도 울었던 얼굴이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들었나 보다. 허탈한 마음으로 아기 방을 나와서 다시 하던 일을 이어가려 하는데... 그 순간 또다시 '응애응애' 하는 울음소리가 났다. 역시나 울음소리가 맞았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기 침대로 부리나케 달려왔더니만 이번에도 아이는 울었던 흔적 하나 없이 쌔근쌔근 꿈나라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는 중이다. 양치기 소년에게 번번이 당하는 동네 사람들처럼 가짜 울음소리를 도무지 구분해 낼 수가 없다.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이 나를 놀리는 건가. 엄마나 아빠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괜히 '으앙' 하고 신경질 부리는 소리를 내는 걸까. 날 혼자 두지 말라는 의미의 외침으로. 이런 일을 하루에도 수 차례 되풀이하니 걱정도 들었다. 내가 요즘 많이 피곤하구나, 말도 안 되는 환청이 들릴 정도니. 그런데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내도 역시 같은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고, 인터넷에 찾아보니 많은 부모들이 겪는 일이었다. 다들 가만히 있어도 귓가에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걸 보면 부모 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구나 싶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결국 어느 날 아기 방 침대 위에 카메라를 하나 설치했다. 요즘엔 좋은 제품들이 어찌나 많고, 클릭 한 번이면 바로 다음날 집 앞으로 배달까지 해 주는지. 금방 도착한 박스를 받아 들고 신이 나서 포장을 뜯고 아기 침대 난간 위에 캠을 단단히 붙들어맸다. 이제는 낮에도 밤에도 언제 어디에서라도 아이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얌전히 잠들어 있는 모습, 뒤척거리며 팔과 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 깨어나서 눈을 깜빡깜빡거리고 용을 써서 뒤집기를 하는 모습까지 편히 앉아서 볼 수 있게 됐다. 그제야 환청이 들리지 않았다. 과학기술의 힘이 헛것 따위를 물리친 게다. 훠이, 물렀거라. 마침내 문명이 미신을 정복하리라.


캠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내가 마치 조지 오웰이 말하던 감시자 '빅브라더'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놀라운 기술에 감탄하는 꼴은 하늘에서 떨어진 코카콜라병을 신의 선물인 양 숭배하는 '부시맨'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맛있는 콜라의 이면에는 설탕이라는 달콤한 독이 들어있듯, 신문물 역시 마냥 완벽하기만 한 물건은 아니었다. 이제는 아이가 울면 방에서도 울음소리가, 캠 어플을 켜 둔 휴대폰에서도 울음소리가 울려 퍼져서 서라운드 입체 음향에 고통받게 됐다. 시끄러워 죽겠다 아주. 리고 밥을 먹든 집안일을 하든 심지어 회사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을 때도 끊임없이 휴대폰으로 켜둔 캠 화면만 쳐다보게 된다. 아이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튼튼한 줄을 묶어둔 양 하루종일 오로지 아이만 쳐다보며 버둥거리고 있는 꼴이다. 청이 들릴 때보다 더 힘든 것 같다. 어떤 기술이든 제도이든 문화든간에 새로 들여올 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다. 舊체제의 타파가 마냥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언제쯤이면 캠 없이 아이 혼자 내버려 둬도 안심할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은 다들 지금이 가장 귀여울 때니 현재를 즐기라지만, 우리는 아이가 얼른 자라서 캠 따위 쳐다보지 않고 별다른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날'이 하루속히 오길 기다릴 뿐이다.




분명히 쿨쿨 잘 자고 있는데... 방금 들렸던 응애응애 거리는 울음소리는 대체 뭐지?
아기 방에 캠을 설치하니 거짓말처럼 환청이 들리지 않는다.
역시 아기는 잘 때가 제일 귀엽고 사랑스럽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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