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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Aug 14. 2021

어느 자살중독자의 최후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브로 해서

※ 다음 글에서 등장하는 인물, 단체,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후의 어느 날.


 마포대교 난간 위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용케도 동작 감지 센서와 AI CCTV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 간신히 발을 올릴 수 있는 그 한 줌의 공간 위에 위태게 서 있는 모습이다.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그대로 아래로 추락하고야 말 듯 위험해 보인다. 위기의 그 남자는 바로 나다. 나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풍경을 두 눈에 빠짐없이 담아 두고자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하늘에는 저녁놀 빨간 수채화 물감처럼 번져가고, 한강 수면 위엔 아스러져 가는 햇빛 몇 가닥반짝거리는 윤슬이 눈부시다. 도시의 마천루에는 하나 둘 불이 들어온다. 인간의 빛이 자연의 빛을 빠르게 는 중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쾌청하고 얼굴을 기분 좋게 간지럽히는 봄바람도 불어온다. 자살하기 딱 좋은 날, 딱 좋은 시간이다.


 이번이 첫 번째 시도는 아니다.


 처음에는 목을 맸다. 무도 모르게 혼자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가장 무난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위해 여러 선택지를 만들고 그중에 어떤 방법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인지 따위에 오래도록 고민하고 싶진 않았다. 결심하자마자 지체 없이 집 앞 사거리의 철물점에 들러 로프를 하나 샀다. 계산대에 서서 가게 주인에게 로프 함께 왼쪽 손목에 심어 둔 생체 페이를 실행시켜 내밀었다. 참 동안 삑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주인아저씨가 계산하지 않고 일순 머뭇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지. 설마 내가 이걸로 그것을 시도할 거라는 걸 눈치챈 걸까. 하긴 로프로 할 수 있는 게 달리 뭐가 있겠. 긴장 채 꿀꺽 하는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조심스레 마른침을 삼켰다. 행히도 는 잠깐의 침묵을 끝내고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극히 자본주의적 미소와 대사였다.


 "어디 보자... 이게 나온 지 조금 된 거라서 깎아줄게요. 정가의 50%, 절반 값에 가져가요."

 "아,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뭘, 이런 게 사람 사는 정이지."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생을 더 이상 이어가는 것은 무의미했다. 상을 떠나버릴 비참한 궁리는 노량진 10년 차가 됐던 재작년부터 내내 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흔하디 흔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 아버지 돌아가셨다. 엄마는 식당 일을 전전하며 나를 키우셨다. 이런 일은 모두 조선족 동포 아주머니들이 하는지라 당신은 어떻게든 그 사이에 껴서 일을 하기 위해 어색한 연변 사투리에 열심이셨다. 그래서 어렸을  우리 가족 중국 동포인 줄 알았더랬다. 천신만고 끝에 명문대 입학에 성공했다. 하지만 대학교 친구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동기들이 늘상 마시고 먹는 커피 한 잔과 조각 케이크 하나가 나의 사흘 치 식비라는 걸 알고서 까무러뻔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외톨이가 됐다. 이후 학자금 대출로 인해 빚,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생을 걸고 도전한 공무원 시험계속 낙방하면서 빚, 고시원 월세를 내느라 . 게다가 운명의 장난일까, 마가 쓰러지셨다. 병명은 암이었다.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병원비로 또다시 빚.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지는 않다. 쌓일 대로 쌓인 빚이 남아 있으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던  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버린 날이 왔다. 광화문 대로 조선일보 사옥에서 나오 홀로그램 뉴스던 날. 한국의 자살률과 출산율이 수십 년째 세계 일등, 세계 꼴찌를 찍었던 탓에 정부는 몇 해 전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고액의 '자살세', 이른바 자살에도 세금을 부여하는 정책이었다. 설마 이런 법안이 통과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들을 부양해 줄 청년들이 더 이상 사라지는 걸 원 않았던 거다. 격적이었던 법안 통과 이후 발 빠르게 민영화도 이뤄졌다. '생의 마무리 조력'라 이름 붙은 신생 회사들 자살 신고와 구비 서류 작성, 상속 및 증여 등 복잡한 세무 절차를 대행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살할 수 있게 도와주며, 이후 시신의 수습과 처리 등과 관련된 일 했다. 잘나가는 업체의 홍보 문구그럴싸했다. "세계의 명소에서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세요. 가시는 길은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날의 톱뉴스조력 업체 고객 1호인 재벌 4세의 자살 소식이었다. 상적인 차를 거친 '''공식' 자살자였다. 나는 우주의 별이 되고 싶다던  남자. 역시 어마어마하게 잘 사는 사람들은 꿈도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특별했다. 그의 마지막은 이다. 우선 전용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특수 제작된 투명 관에 들어가서 눕는다. 작고 푸른 점처럼 보이는 지구를 바라며 편히 누워 있으면 우주선에서 관을 사출한다. 관 내의 공기에는 특수 제작된 수면 가스가 섞여 있어서 조금씩 눈이 잠기면서 잠에 들듯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 이후 우주 반대편 저 너머로 영원 꿈을 꾸며 항해하는, 그야말로 '우주의 별'이 되는 아름답고도 호화 장례였다. 이 모든 과정은 TV와 유튜브에서 4D 영상으로 생중계됐다. 국가에 납부한 세금도 세금이거니와 우주선 비용을 포함하여 업체에 지불한 돈도 천문학적인 액수였다고 한다.


 아직 새파란 청년이었던 그가 자살한 이유는 간단했다.


 "삶이 무료하더라고요."


 익스트림 스포츠부터 시작해서 술도, 여자도, 마약도, 도박도, 그보다 더한 탈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온갖 변태적 취미에, 이후에는 마음을 고쳐먹고 오지를 찾아다봉사 활동을 하고 히말라야에서 고승의 가르침을 받으며 면벽 수도까지. 인간사의 모든 걸 다 누려 봤더니만 이제는 그 무엇을 하더라도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남은 건 이승의 삶 너머에 대한 작은 호기심뿐이다나. 래서 자살을 택한 거였다. 사건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선 격렬하게 찬반 의견이 오갔다. 생명 경시 풍조가 극에 달했다, 사회 지도층이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 망정 이게 뭐하는 짓이냐. 아니다. 존엄사도 허용된 마당에 개인의 자유 의지를 국가가 간섭할 수는 없다, 새로운 시장의 개척으로 인해 연관 산업의 발달 등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 등의 주장이 대립했다. 호사가들은 수군거렸다. 어차피 H 그룹 회장의 두 번째 부인의 셋째 자식이라 물려받을 수 있는 것도 없으니 차라리 이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면서.


 그와는 살아온 환경도, 외모도, 산도, 모든 것들이 다르지만 딱 하나, 나 역시 그와 같이 삶이 무료해졌으면 했다. 그저 부러운 삶이었다. 제발 이제는 시험 낙방도, 월세도, 병원비도, 빚 독촉 따위도, 아무 일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서 조금이나마 덜 힘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뉴스를 보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던 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미 흘릴 대로 흘려버려서일까, 이 쓸데없는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곧이어 병원비 납부 요청 알림이 왔다. 미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액수였다. 디차게 식어 있을 어머니를 보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가지는 않았다. 대신 집 앞의 철물점으로 향했다. 베로니카처럼 나도 죽기로 결심했다. 홀로그램 뉴스 영상에서 손에 잡힐 듯 생생했던 장엄한 우주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하루 온종일 혼몽했만, 결정을 굳혔던 그 순간만큼은 분명 이성적이었다.


 로프를 가방에 담고 누가 볼세라 팔로 꼭 감싸 안고서 방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보면서 연습한 대로 1. 매듭을 묶고, 2. 의자를 딛고 올라가서, 3. 목을 주욱 빼 고리에 건 후, 4. 의자를 걷어찼다. 글로 써 놓으니 너무 간단해 보이는데 2번과 3번 사이에서 거의 세 시간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그리고 4번 단계를 실행했다. 안녕, 이제 안녕. 지긋지긋한 세상아, 안녕이다. 내 몸의 무게로 팽팽해진 로프가 목을 감싸자 컥 하고 숨이 막혀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뻗어서 로프를 벗겨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목이 더 죄어졌다. 정말 죽을 만큼 괴로웠다. 죽으려고 한 건 맞으니까 죽도록 괴로운 게 틀린 건 아닌데, 여하튼 운이 좋아서, 혹은 나빠서 다음번이라는 게 있다면 그땐 절대 목을 매달지는 않을 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통증이 가시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난데없는 음이 밀려왔다. 절로 눈이 감겼. 눈을 떠 보니 목을 매단 로프는 사라져 있고 나는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 알림을 확인하고 있었다.


 "20XX년 9급 세무직 공채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관련 공고문 확인 후 기한 내 채용후보자 등록 요망."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칠전팔기 끝에 마침내 합격이었다. 정확하게 12년 만이었다. 처음 3번은 5급 행정고시를, 다음 4번은 급을 낮춰서 7급을, 이후에는 명문대 출신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제발 합격만 하게 해 달라며 9급 시험에 매달렸지만 매년 한 두 문제 차이로 불합격이었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매번 안타까워하며 진짜 마지막 도전이다, 이번에도 안 되면 콱 죽어버릴 거다, 라는 각오로 쳤던 시험에 드디어 붙다. 혹시나 꿈인가 싶어 뺨을 꼬집어봤다. 아야. 이상하다 왜 아프지. 꿈에서는 아플 리가 없는데. 실은 이게 진짜일 리 없는 걸 알고 있다. 합격자 발표는 지난겨울에 이미 끝났다. 그래도 한 번 더 꼬집어봤다. 아야. 무래도 이 고통은 진짜다.


 "아이쿠, 아파 죽겠네. 왜 이렇게 아프지...?"


 뺨이 아니라 온 얼굴이 다 아다. 로프가 끊어지면서 바닥에 거꾸로 얼굴부터 처박혔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볼썽사나운 자세로 엎드려서 방바닥을 데굴거리고 있었다. 오래된 로프는 삭아 었는지 고통에 겨워 격렬하게 버둥거리던 와중에 끊어지고 만 것이었다. 어쩐지 철물점 주인이 계산할 때 망설이더니만 이깟 악성 재고 따위를 파는 게 일말의 양심에 걸려 그랬던 거구나. 어진 로프를 들고 가서 따질까 하다가, 신고하지 않고 몰래 자살하려다 들키면 원래의 자살세에다가 신고 불성실 가산세가 어마어마하게 붙는다는 얘길 들었던 기억이 나서 관두기로 했다.


 두 번째 시도는 수면제였다. 목을 매는 건 고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님을 알게 돼서였다.


 약국을 조금만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죽음에 를 수 있을 만큼의 수면제를 모으는 게 가능했다. 자살 시도에 빈번하게 사용되는 바람에 세금이 엄청나게 붙어 비싸진 수면제. 마지막 남은 전 재산을 털어서 충분한 양을 사 모을 수 있었다. 으려면 몇 알이나 삼켜야 하는 거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세다 말았다. 하튼 두 손 가득한 양이면 저 세상으로 가는 데엔 충분할 터. 입에 모두 털어 넣고 물을 들이부어 삼켰다. 너무 많이 먹었는지 헛구역질이 자꾸 나왔다. 그나저나 무언가를 이렇게나 배불리 먹어 본 게 참으로 오랜만이다. 안녕, 이제 진짜 안녕. 지긋지긋한 세상아, 진짜 안녕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이 밀려왔다. 또다시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어려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주 어릴 적 살던 집 앞 골목길이다. 웬 아저씨 한 분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에게선 왠지 익숙한 냄새가 다.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실루엣. 혹시 저 사람은.


 "아빠? 아빠 맞지?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아빠! 진짜 아빠구나. 나 아빠가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을 들어서.


 "아!"


 아버지는 성난 표정으로 내 뺨을 철썩 때리셨.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다섯 대, 세다 말았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따스히 안아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나 때리실 줄이야. 신을 차려보니 아버지가 아니라 웬 아주머니가 내 뺨을 정신없이 때리고 있었다. 집주인 아주머니였다. 손이 어지간히 맵다. 역시나 아픈 걸 보니 죽는 건 또 실패다. 월세가 3달이나 밀려서 돈을 받으러 직접 방으로 찾아왔단다. 하필이면 수면제를 먹고 잠든 직후에 을 따고 들어던 것. 머리맡에 나뒹구는 약통들을 보고 놀라서 나를 깨우려고 애썼다고. 그 와중에 값비싼 원격 진료기를 가져와서 나의 위까지 직접 세척했다 무용담을 늘어놨다. 그놈의 돈 때문에 죽는 건데 돈 때문에 살아났다. 몇 번의 토악 끝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니 아주머니께서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다. 


 "아이구 총각,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어쩌려고 이런 거야. 내 사정을 봐서 밀린 월세는 그냥 안 받을게."

 "흑흑,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긴 뭘, 이런 게 사람 사는 정이지. 아 참, 그리고 이번 주 내로 짐 싸서 방 비워주면 돼. 바로 나가줘야 돼. 그럼 신고는 안 할게."

 아주머니는 대단한 선심이라도 쓰듯 찡긋 윙크를 했다.


 세 번째인 이번에는 강 다리를 골랐다. 이제 부모님도, 집도, 직업도, 돈도 한 푼 없다. 남은 건 세상을 뜨는 뿐이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시도하는 걸 보면 자살 시도라는 것도 중독이 가능한 건가 싶다. 니, 쩌면 냥팔이 소녀도 아니면서 시 정신을 잃을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에 중독됐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남들 보란 듯 번듯하게 좋은 데서 죽을 거야, 라는 마음에 마포대교를 골랐다. 이곳은 해가 질 무렵이면 다리 너머로 여의도의 근사한 야경이 펼쳐지니 제법 근사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곳이 유명한 자살 명소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리 난간에는 자살 방지 문구라는 것도 새겨져 있었는 내용 검색됐다. "별일 없었어?", "수영 잘해요?", "하하하하하하" 따위 문구들이었다고. 이미 결심하고 온 사람들에게 그런 말 따위 씨알도 안 먹혔을 텐데. 여하튼 각종 정보와 후기들을 검색한 끝에 적당한 포인트를 찾아냈다. 여기에서라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 세상과의 질긴 연을 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 세상의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았다. 이제 시간이 됐다.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셋을 세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풍덩. 내 키의 몇 배 만한 물보라가 튀고 하얀 포말이 흩어졌다. 아마 그랬을 거다. 나는 물 속으로 가라앉는 중이라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수면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부딪칠 때 몸 어딘가가 부러진 듯 아프다. 아직 여름인데도 물이 차갑다. 숨을 들이켜니 공기 대신 서늘한 물이 밀려와서 가슴이 막힌다. 일순 정신이 번쩍 든다. 갑작스레 생겨난 생의 욕망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게 만들었지만 몸은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 평생 수영을 배우지 않았나 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앞이 캄캄해지는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환한 빛이 반짝거린다. 눈이 부다. 찬란한 빛과 함께 누군가가 내게 걸어온다. 분명 돌아가셨다고 연락받았던 엄마다. 병원에서의 모습과는 아주 달랐다. 산소호흡기도 링거도 환자복도 얼굴 버짐도 하나 없이, 건강하던 적의 모습이다. 엄마는 여태 본 적 없는 환한 웃음을 짓고 손을 흔들며 하늘로 천천히 올라갔다. 떠나가게 해선 안 된다. 붙잡아야 한다.


 "엄마, 가지 마. 제발 날 두고 혼자 가지 마. 같이 가."

 "그래... 우리 아들. 그동안 고생 많았지? 우리 같이 가자."

 "엄마, 우리 이제 행복하자 정말."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진짜 같이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이게 승천하는 분이라는 걸까. 여태껏 경험한 바 없는 평온함을 감각하는 중이다. 가벼워진  놀이공원에서 아이가 손에서 놓쳐버린 어느 풍선처럼 둥 떠랐다. 디찬 강바닥에서 하늘을 향해 조금씩 천천히.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고 끌어올리고 있다. 울컥. 불쾌하게 미지근한 온도의 물을 두어 모금 뱉어냈다. 누군가가 내 몸을 마구 흔들고 깍지 낀 손으로 가슴을 눌러대고 있다. 또다시 물 한 모금을 뱉어냈다. 깊은 잠에서 깬 양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자 검은 옷을 입은, 확실히 천사는 아닌 게 분명한 남자들이 보다. 그들의 뒤로 어느새 불이 환하게 밝혀진 63 빌딩 눈에 들어온다. 엄마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정신 좀 차려보십시오. 신원미상자 . 이곳은 A급 자살 구역으로서 사전 허가받지 않은 자는 자살이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자살 신고는 정부 24 포털에서 가능하며, 신고 후 12시간 내에 세액 납부를 해야만 신고가 완료되며, 이후 시신의 양수 및 인도 등에 관한 제반 사항은 사전에 작성한 문진표에 따라......"


 한참을 뭐라고 고지하는데 귀가 먹먹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가 않다. 번에도 또 실패인가 보다. 그런데 성냥팔이 소녀는 마지막에 어떻게 됐더라. 성공했던가 실패했던가.




Minolta X-700

Minolta-Samsung 50mm f1.4 Lens

Fuji C200 film

2019년 4월



Rollei XF35

Fujicolor C200 film

2019년 6월




辨) 재미 삼아 소설이라는 걸 써 봤는데, 나는 아무래도 '있음 직한' 이야기보다는 '있었던' 이야기를 쓰는 게 적성에 더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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