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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Nov 05. 2021

어느 날 우리집 문 앞으로 항공모함이 들어왔다

한여름밤의 꿈도 아니라 한가을 낮의 개꿈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었다.

 홍제천이 불어나서 넘쳤다. 도로를 덮고도 모자라서 어느새 우리 아파트 1층까지 물에 잠겼다. TV에선 사상 최대의 강수량이니, 재난사태를 선포한다느니 하며 뉴스 속보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난생처음 겪는 재앙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집은 고층이었다. 거실 창을 열어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봤다. 물에 젖지 않게 왼손으로 손우산을 만들고 오른손에 담배를 쥐고 피웠다. 담배연기인지 한숨인지 모를 숨을 밭았다. 비가 계속 내려서 결국 여기까지 물이 들이치면 어떡하지. 걱정하던 참인데, 소용돌이치는 흙탕물 사이로 언뜻 반짝거리는 금속판들이 눈에 띄었다. 저건 대체 뭘까. 길가에 세워 뒀다 미처 화를 피하지 못한 자동차 상판 따위겠거니 했다. 다섯 개비 정도 피웠을까. 거짓말처럼 비가 뚝 그치고 볕이 돋았다. 방금 전까지 사상 유례없던 폭우가 내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아파트를 집어삼킬 듯했던 물은 삽시간에 빠졌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항공모함이었다. 진짜. 장난감 모형이 아닌 진짜 항공모함이 뻘밭이 된 아파트 단지 정원에 처박혀 있었다. 물이 없는지라 오도 갈 수 없는 꼴이었다. 갑판에는 'US NAVY'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주차,라고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전투기도 몇 대 세워진 채였다. 사납던 빗물 사이로 얼핏 보이던 금속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배에 탄 미군들은 창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나를 발견하고서 소리쳤다.
 "썸바디 헬프 어스! 헤이 코리안. 컴 히어 컴 히어!"
 창을 활짝 열고 항공모함과 거기에 타고 있는 미군들을 바라봤다. 저건 대체 뭘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대관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혹시 오늘 우리 동네에서 영화 촬영을 한다 그랬던가. 그런 안내 방송을 듣거나 안내문을 본 기억은 없는데.


 그때였다. 누군가 우리집 벨을 눌렀다. 문을 열어보니 낡아서 다 헤진 군복을 입고, 한 분은 군복이 아니라 개량한복이었지만, 다들 한 손에는 태극기와 다른 손에는 성조기를 든 영감님 세 분이 서 있었다.
 "어르신들은 누구세요?"

 "허 참. 우리가 누군지 모른다고? 자네, 대한민국 국민 맞나?"
 처음 보는 분들은 혀를 끌끌 찼다. 곧이어 각자 본인의 소개를 했다. 소개라기보다 악다구니,에 가까워서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은 왜 처음 보는 나에게 이렇게나 소리를 질러대는 걸까. 고막이 고통받는 와중에 겨우 알아들은 바를 대충 요약하자면 자기네들은 6.25 참전용사이자 월남전 파병도 다녀왔고, 한때는 국군 최고위직까지 지냈으며, 아마도 꽤나 예전이겠지만 별을 3개인가 4개까지 달아봤단다. 5개를 달았다는 영감님도 있었는데 다른 두 분이 서둘러 입을 틀어막았다. 두 분 중 한 분은 이해해 달라는 듯 멋적게 웃으면서 한쪽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 빙글빙글 돌리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그들은 집주인이 허락도 안 했는데 우리집 거실에 죽치고 앉았다. 그리고 자네 이리 와서 앉아보게, 하더니만 이러쿵저러쿵,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긴 연설을 늘어놨다. 이번에도 훈화라기보단 악다구니,에 가까워서 제대로 들을 수는 없었다. 맞은 데 또 맞은 뺨처럼 얼얼해진 고막으로 겨우 알아듣기로는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나라가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다.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졌다. 문재인이는 빨갱이다. 김정은이랑 악수할 때부터 알아봤다. 트럼프 이노마도 빨갱이라서 미국 대통령 재선에 실패한 거다.

 "그러니까 내년 대선 때는 윤석열을 찍어야 한다고."

 "아니지. 홍준표를 찍어야지."

 "어허이, 윤이라니까."

 "아니, 홍이라니까."

 "야 인마! 너 몇 살이야. 내가 윤이라잖아."

 "먹을 만큼 먹었다, 인마."

 "뭐, 인마. 얻다 대고 인마야 인마가."

 어느새 윤과 홍 두 지지자는 서로 멱살을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허허, 나는 그래도 새정치를 하겠다는 안철수를 아직 믿는다네, 라던 영감님은 소동극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어 우두커니 서 있던 내게 근엄한 말투로 명령했다.
 "자네, 빨리 저 미국 성님들을 도우지 않고 뭐하는가. 얼른 나가서 항공모함 근처의 차들을 치워 드려야지."

 기세에 눌려 밖으로 나왔다. 역시 4성 장군은 나이가 들어도 한가닥 하는구먼. 호랑이는 늙어도 호랑이로세. 다행히 지하주차장 차단막이 제대로 작동해서인지 침수되지 않은 내 차를 끌고 왔다. 항공모함 바로 옆으로까지 왔다. 실제로 마주하니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런 게 물에 뜬다니 현대 과학기술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잠시 동안 감상에 빠져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저 앞에 서 있는 하얀 스파크부터. 그다음엔 배 우현의 검은색 소나타, 다음으로는 회색 BMW. 어릴 적에 많이 했던 '소코반' 게임처럼 이 차 저 차에다 내 차를 부딪쳐서 도로 바깥으로 밀어냈다. 항공모함의 진로에 방해가 되지 않게 장해물들을 치우는 것이었다. 뻘밭에서 운전을 하면서 투덜거렸다. 이 아파트에는 예비역이 나밖에 없나. 나 혼자 이게 뭐하는 짓이야. 게다가 나는 4급 공익 출신인데. 현역 나온 애들은 다 어디 간 거야. 아, 그리고 미군들을 도우려면 서로 말이 통하는 카츄사 애들이 와야지. 오 쉣, 뻐킹 코리안 아미.

 그러던 중 다시 비가 내렸다. 이번에도 폭우였다. 물은 맹렬한 기세로 뻘밭을 집어삼켰다. 눈 깜빡할 사이에 앞바퀴가 물에 잠겼다. 급히 차에서 내려 우리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계단을 한참 오르고 숨을 헐떡거렸다. 삽시간에 불어난 물은 또다시 아파트 1층을 물에 잠기게 하고, 항공모함 바닥도 물에 잠기게 했다. 이내 배는 물 위로 둥실 떠올랐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좌초됐던 미군들은 이제 다시 홍제천으로, 그리고 한강으로, 마침내 서해 바다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미군들은 출항, 아니, 뻘밭에서 나가는 거니까 출뻘인가, 여하튼 하기 직전에 갑판 위로 모두 올라왔다. 그들은 일렬로 서서 나를 향해 경례를 했다.
 "땡큐, 써!"
 "유어 웰컴, 유어 웰커어어엄."

 나는 할 줄 아는 영어가 없는지라 유어 웰컴만 반복해서 외쳐댔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곧게 세운 오른손을 오른 눈썹 위에 붙이고서 경례를 한 채였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새 전우애라도 생긴 듯 우리들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였다.

 감동의 작별 인사가 끝났다. 항공모함은 바다를 향해 떠났다. 그들은 한강을 타고 서해로 나가서 곧장 대만으로 향한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이상 기후와 레이다 고장으로 인해 이곳 홍제천까지 표류했었는데 이제는 고장 난 기계를 다 수리했다고. 미스터 킴 덕분에 다시 출항할 수 있어 고맙다고 했다. 영어가 딸려서 말이 안 통했지만 리스닝은 그럭저럭 됐다. 보라, 이것이 한국 영어 교육의 힘이다. 괜히 마음이 뿌듯했다. 그나저나 아까 남의 차들을 미느라 내 차 범퍼가 다 찌그러졌는데 이건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나. 국방부 콜센터라는 데서 받아주나 모르겠다. 119나 112에 전화를 해 볼까. 아니다. 동 주민센터에 먼저 들러봐야겠다. 원로 예비역 영감님들에게 도움을 받아볼까 했더니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거실에는 씹다 남은 오징어 다리 몇 개와 빈 소주병 여남은 개만 나뒹굴고 있었다. 그새 많이도 쳐드셨네 진짜. 대체 내 차 수리비는 어디에다 청구하나, 푸념하던 중에 잠에서 깼다. 당연히 꿈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이 현실일 리 없지.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아내에게 말했다.

 "나 진짜 이상한 꿈 꿨어. 항공모함이 우리 집 앞으로 왔어."
 "뭐야 그게. 그래서, 계속 붙들고 있었어? 꿈에서 물건이나 돈이 들어오면 좋은 거라던데."
 "아니. 열과 성을 다해서 나갈 수 있게 도와줬는데..."
 "뭐라구. 왜 그랬어 도대체. 복이 굴러들어와도 뻥 차 버릴 사람이네 이거."

 아내는 큰돈이라도 땄다가 손에 들어오기 직전에 잃어버리기라도 한 사람인 양 안타까워했다. 연애할 때 둘이서 데이트 삼아 종종 갔던 경마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얼굴이었다. 기억난다 저 표정. 경마장 구석에서 신문지를 둘러쓰고 누워있던 이들이 레이스 막바지가 되면 어느새 신문지 이불을 집어던지고 관중석으로 나와 달려, 달려, 달려, 됐다, 이번에는 진짜 됐어,를 외치다가 결승선에 차례로 도착하는 말들을 보며 안돼, 안돼, 안돼, 왜 그래, 아 씨바아아아아알,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욕지거릴 하던 그때 그 얼굴과 비슷하다. 그나저나 아내 말대로 정말 그런 걸까. 인생에 몇 없는 대운의 기회가 굴러 들어왔는데 내 발로 걷어찬 버린 걸까. 설마.




어느덧 가을도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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