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나가는 그들
커다랗고 분홍색이었던 여우 모양의 그 녀석과 처음 마주했던 때로부터 벌써 몇 년이 흘렀다.
보고 싶던 전시가 열린다기에 아내와 함께 잠실 제2 롯데월드에 들른 날이었다. 야외에는 무슨 행사라도 하는지 엄마와 아빠 손을 잡은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어지러울 만큼 많은 아이들이었다. 여름날, 잠자리에 누웠는데 사위가 가려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윙윙거리는 모기 소리라도 들은 양 질색을 했다. 그땐, 아이를 낳는다는 건 예정하고 있던 인생 경로에서 단 한 번도 도착지로 설정한 바 없던 때였다. 아예 아이라는 걸 싫어하던 때였다. 내게 있어 아이라는 건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제멋대로에다, 주는 것 없이 보살핌을 받기만 하는 이기적이고 별스러운 존재. 그런 조그마한 것들이 가득 몰려서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뤘으니 질색팔색할 수밖에.
이게 무슨 난리통인가 싶어 살펴봤더니 ‘핑크퐁’이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행사가 열렸단다.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저 커다랗고 분홍 빛깔인 여우의 이름이 바로 핑크퐁인가 보다. 별일도 다 있다는 듯 몰뚱하게 말했다.
“저게 대체 뭐야? 뭐길래 애기들이 저렇게나 몰려 있어?”
“그러게. 저 나이대 애들은 뽀로로 같은 거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저런 캐릭터도 있었네.”
나뿐만 아니라 아내 역시 그때가 핑크퐁이라는 녀석과 첫 만남이었다.
삼성출판사가 대주주로 있는 스마트스터디에서 제작한 어린이 교육용 앱의 마스코트 핑크퐁. 말 그대로 분홍색 여우처럼 생겼다. 요 핑크퐁 브랜드에서 애니메이션, 동요, 게임, 도서, 완구 등 여러 콘텐츠를 만드는데 그중에서도 두말할 것 없는 대표작이 바로 <상어 가족>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아이들도 흠뻑 빠져들었는지 상어 가족 영상은 작년 11월 기준 유튜브 누적 조회수 70억 회로 기어이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아이나 아이 부모뿐만도 아니다. 최근에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트위터에 “아기 상어가 모두를 이겼다. 사람보다 조회수가 더 높다.”는 생뚱맞은 문구를 올려서 다시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날 이후로 아이와 함께한 가족들을 스쳐 지날 때마다 핑크퐁을 만날 수 있었다. 아기가 손에 쥐고 있는 핑크퐁 장난감, 부모가 아이에게 휴대폰으로 보여주는 핑크퐁 영상, 거리를 걸을 때마다 가끔 들리던 상어 가족 노래까지.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 귀여운 뚜루루뚜루.”라는 구절이 반복되던 중독성 강한 후렴구의 그 노래.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깨닫게 됐다. 나만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여기는 핑크퐁 천지였구나.
물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핑크퐁이 점령한 세상은 아직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였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힘든 일을 하는 이들이나 어쩔 수 없이 속해있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쯧쯧, 1인 가구와 딩크족이 성행하는 현대 사회에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 저런 불쌍한 이들을 보았나. 아직도 육아라는 고단한 노동을 하는 농노 같은 이들이 있구나, 하며 마치 귀족적인 무관심의 태도로 일관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심지어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나가는 부모들의 흉을 보기도 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부모들이 핑크퐁 영상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였다. 부모들은 아이의 칭얼거림을 막기 위해서 전가의 보도라도 꺼내는 듯이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내서 켰다. 금방이라도 눈물 방울이 터질 듯했던 아이의 눈은 어느새 평화를 되찾고 호수의 잔잔한 수면처럼 변해갔다. 그 광경이 괜스레 못마땅해서 볼멘 소리를 했다.
“어휴, 저것 좀 봐봐. 자기네들 좀 편하자고 애들한테 유튜브 영상 보여주는 꼴 하고는.”
“그러니까. 아이를 저렇게 키우면 안 되지.”
“어디서 봤는데 그런 연구 결과도 있대매? 만으로 두 살인가 세 살 미만인 아기한테는 영상물 보여주면 안 된다고. 뇌 발달을 저해한다던데.”
혹시나 나도 부모가 된다면 휴대폰으로 영상 따위를 틀어주지는 않겠다는 이상 어린 다짐을 하며 흉 보기를 끝냈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다. 저들도 좋아서 틀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핑크퐁을 틀어주는 아빠가 될 줄은. 삶을 살아가면서 이상과 현실은 생각보다 자주 엇갈리곤 한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평생 발 디딜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육아의 세계에 나도 도착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는 건 예상했던 것보다, 정말, 삼천 배는 사랑해, 아니, 더 힘들었다. 가장 힘들다는 때를 지나고 어느 정도 키웠으니 이제 조금은 편해지겠거니, 하는 생각 역시 오산이었다. 고3 때도, 고시생 때도, 취준생 때도, 신입사원일 때도, 아내와 연애할 때 싸우고서 부재중 전화 50통 알람을 확인했을 때도 지금보다는 덜 힘들었다. 아이는 깨어있는 시간 동안 매 순간마다 쉬지 않고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고, 가만히 앉은 채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는 순간은 극히 드물며, 같은 행동을 지겹지도 않은지 수도 없이 반복하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쓸데없어 보이는 짓에 자꾸만 내게도 동참하자고 조르고, 어느 것 하나라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벼락 같이 울음보를 터뜨린다.
이런 무저갱에 빠진 것 같은 상황에서 분홍 여우는 한 줄기 햇살이자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핑크퐁 영상이 없었더라면, 특히나 아이의 손발톱을 깎기란 불가능했을 거다. 손톱깎이를 들이미는 순간부터 아이는 칭얼거린다. 손을 슬몃 잡자마자, 마치 코로나 19 백신 반대주의자들이 내 신체의 자유와 맞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내 손의 자유를 침해하지 마’라는 듯 손을 홱 뺀 후 으아앙- 외침과 함께 다다다다 도망간다. 손톱 깎는 게 뭐가 그리 싫은 걸까. 하긴, 어떤 집에서는 아이가 잘 때 몰래 플래시를 켜고 도둑처럼 살금살금 손톱을 깎기도 한다더라. 우리는 몇 번이나 고난과 실패를 거듭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TV로 상어 가족을 틀었다.
박진영이 만든 곡에서는 늘상 노래의 시작 부분에 “jyp!”라고 속삭이는 시그니쳐 멘트가 나온다. 유튜브의 상어 가족 영상 역시 도입부마다 “핑크퐁!”이라는 귀여운 목소리의 외침이 흘러나온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는 일순 동작을 멈추고 화면을 향해 자세 고정이다. 영상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돌부처라도 된 양 툭툭 건드려도 가만히 앉아 있다. 모든 감각을 알록달록한 영상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제야 손을 스윽 집어 들어 손톱을 하나씩 깎는다.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다 깎을 때까지 정신없이 화면만 쳐다보는 아이.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손발톱을 다 깎았다. 바닷속 친구들의 덕이 아니었다면 손톱을 고작 두 개도 못 깎았을 테다.
비단 손톱뿐만이랴. 기나긴 운전 시간 동안 아이가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 있어 줬던 것도 상어 가족 노래를 스트리밍해서 틀었기 때문이다. 돌 사진 찍으러 스튜디오에 갔을 때도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건 핑크퐁네 인형들 덕분이며. 목욕을 할 때에도 스티로폼으로 된 상어 가족 장난감들과 탱탱볼을 갖고 놀면서 물이 싫어 울고불고 난리 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걸 멈추고 잠시나마 매트 위에 얌전히 앉아서 숨을 고르는 시간은 핑크퐁 사운드펜을 가지고 놀 때이다. 까닭모를 울음을 터뜨릴 때 달래고 달래다가 도저히 안 되면 핑크퐁 영상을 튼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울음을 멈춘다. 제아무리 까다롭고 천방지축인 아이라도 점잖은 꼬마 선비로 만들어주는, 과연 마법 같은 존재가 핑크퐁이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어느덧 나도 핑크퐁의 세계에서 살게 됐다.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무엇일까. 이제 아이도 만 16개월이 다 되어 가고, 나도 어디 나가면 어엿한 아버지 소리를 듣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모르겠다. 어렵고도 어렵다. 하나 원이 있다면 모쪼록 핑크퐁만큼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다. 아니, 내가 아예 핑크퐁이 되었으면 좋겠다. 육아와의 건곤일척의 싸움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절벽 아래로 떨어진 후. 우연히도 그곳에 은거 중이던 전설의 고수를 만나는 기연을 얻는다. 통 큰 고수께서 건네 준 환약을 삼키자 극심한 고통이 찾아든다. 비몽사몽한 가운데 키가 커지고 귀가 솟아나고 온 몸에 분홍색 털이 돋아 나더니 마침내 나는 핑크퐁이 된다. 환골탈태한 것이다. 변한 몸으로 복수의 칼을 갈고서 무림에 다시 나간다. 슈퍼맨이, 아니, 핑크퐁이 돌아왔다. 재격돌한 육아 따위 이제 더이상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마침내 무림 지존으로 우뚝 선다. 아이는 내 가슴에 난 분홍 털에 얼굴을 비비며 한껏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사랑해요, 핑 아빠. 한낱 공상에 불과하지만 이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실은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무척 미워하는 양가적인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육아를 하면서 고작 저런 캐릭터 따위에 너무 의존하는 건 아닌지. 아비 된 자로서 내 아이에게 직접 세상의 이치와 윤리와 철학과 예술 등을 가르쳐야 하는데, 분홍 여우 따위가 나의 모든 역할을 빼앗아 간 건 아닌지 걱정이다. 실제로 핑크퐁의 영상과 책에는 없는 게 없다. 아빠,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등의 가족과 사과, 배, 바나나, 복숭아, 포도 등의 과일, 숫자와 가나다라와 ABCD, 노래와 동화까지 세상 만물과 가르침이 다 들어있다. 깨끗하게 목욕해요, 치카치카 이 닦기, 골고루 맛있게, 나눠 먹어요, 반갑게 인사해요 등의 지켜야 할 규칙도 있다.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라며 감정을 표현하는 법까지 나와 있다. 어른인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여기 나오는 것들만 잘 배워도 한 명의 바람직한 사회 구성원으로 능히 성장할 수 있을 법하다. 이러다가 아이가 나중에 훌륭한 어른이 되어서 방송 인터뷰라도 하게 된다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을까.
“제 인생 최고의 스승이자 존경하는 인물은 바로 핑크퐁 님이십니다.”
커다란 핑크퐁이 된 나는 아들 뒤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는다. 후훗. 녀석, 잘 자라 주었구나.
너무 가까이하기도, 그렇다고 너무 멀리하기도 힘든 당신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육아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핑크퐁 따위 금방 지나간단다. 다음에는 뽀로로, 또 다음에는 미니 특공대, 다시 다음에는 번개맨 등등. 육아 선배들의 말씀에 따르면 아이가 커 갈수록 좋아하는 게 계속해서 바뀐다고들 했다. 그렇다면 핑크퐁으로 환골탈태하는 건 물려야겠다. 괜히 하나로 정했다가 큰일 날 뻔했네. 기연이라는 건 평생 한 번 얻을까 말까 한 건데 캐릭터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먼 훗날, 아이는 이런 분홍 여우 따위에 빠져서 죽고 못 살았던 때를 기억이나 하려나. 하긴,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나도 어렸을 때 가수 심신을 무지 좋아했다더라. 제가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놀라서 되묻는다.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항변하다가도 어린 시절의 앨범을 들춰보면 TV의 심신을 바라보며, 그의 흉내를 낸답시고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서 팬티만 입은 다리를 숭하게 쫙 벌려 춤을 추는 사진이 증거로 남아있다. 할 말이 없어진다. 서너 살 무렵이었던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이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금방 잊힐 거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해야지. 그동안 무척 고마웠고 이제 곧 떠날지도 모를 핑크퐁 님을 너무 질시 어린 시선으로 흘겨보진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