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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y 30. 2023

Love,라고 아시나요

휴남동 서점은 아니지만 서점에서 일하던 때의 이야기

 대학생 때 신림동(지금은 대학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시촌의 ㄱ서점에서 알바를 했다. 보통의 서점은 아니고 전국에 몇 남지 않은 사회과학 전문 서점이었다. 대관절 사회과학 전문 서점이란 무엇이냐. 자기 계발서나 참고서, 토익 교재, 말랑한 소설과 에세이 따위는 일절 들이지 않았던 곳. 맑스를 비롯해서 제목에 주로 ‘노동’, ‘사회’, ‘사상’ 같은 단어들이 들어가 있는 두껍고 어렵고 진지하고 소위 빨간 색채를 띈 책들만 가득했던 곳이었다. 이런 서점에 와서 “혹시 해커스 토익 보카는 어디 있나요?” 하고 묻는 건, 비유하자면 이탈리아 여행 때 들른 피잣집에서 ”시뇨르, 여기 하와이안 피자도 팝니까?“ 라는 질문과 마찬가지였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대학교 앞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지만 새천년에 들어서며 명맥이 끊긴 서점. 내가 새내기 대학생이던 무렵 즈음에는 성균관대 앞 ‘풀무질’과 고려대 앞 ‘장백서원’, 중앙대 앞 ‘청맥’과 서울대 앞 이곳, 내가 일했던 ㄱ 서점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더 이상 독재 정권에 저항하거나 민주화를 부르짖거나 노동 운동에 투신하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학점과 토익 점수와 어학연수와 스펙 쌓기가 되어버린 시대. 누가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불온서적을 몰래 돌려보겠는가. 나 역시 학생운동 세대는 아니었다. 다만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알 수 없는 향수를 지니고서, 생활비를 벌기 위한 마음 반, ‘진짜’ 대학생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 반,으로 일했다.


 그런데 알바라는 게 으레 그러하듯 지각하는 날도, 피치 못한 사정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일은 일이지만 대성리로 가는 MT는 참석해야 했고, 남중 남고를 나왔기에 이성과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던 탓에 미팅과 소개팅엔 빠질 수 없었고, 스무 살 청춘의 까닭 없는 기쁨과 우울 탓에 대낮부터 밤늦도록 술잔을 들이켜야 하는 날이 들이닥치곤 했다. 그럴 땐 대타 알바를 구해야 했다. 첫째로, 다른 요일 알바분께 부탁했다. 하지만 서로 비슷한 처지였던 탓에 흔쾌히 부탁이 받아들여지는 적은 거의 없었다. 둘째로, 낡은 인명부를 펼쳐 예전에 일하던 알바분께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ㄱ 서점 알바인데요. 혹시, 아직 일하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으셨다면 하루 대타 가능하실까요?” 라면서.


 ​그중 이름이 예쁜 분이 있었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예뻤다는 기억만이 흐릿한 연필자욱처럼 머릿속 노트 한 페이지에 남아있다. 그분께 전화를 드리면 열에 여덟, 아홉은 성공이었다. 이름만큼 마음씨도 곱던 그분은 시간 맞춰 출근해서 대타를 뛰고 하루치 수당을 받아갔다. 아직도 근처에 거주하신 걸 보면 아마 고시생이거나 대학원생이 아니었을까. 궁금했지만 왠지 부끄러워서 물어보진 못했다.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었다. 그분의 휴대폰으로 전화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통화연결음 노래.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잔잔한 피아노 반주 위에 나지막이 얹히는 목소리. 단순하지만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가사. 러브 이즈 리얼, 리얼 이즈 러브. 러브 이즈 필링, 필링 이즈 러브. 러브 이즈 터치, 터치 이즈 러브…


 ​꿈결에 들리는 듯한 느낌의 그 노래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이건 대체 무슨 노래일까.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서 한참을 궁금해했다. 어느 날엔 그분께 전화를 걸면서도 제발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그래서 통화연결음을 오래도록 계속 들을 수 있었으면 했다. 대타가 필요하지 않은 날임에도 실수로 전화한 것처럼 괜히 그분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상대방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나는 노래가 궁금했던 걸까, 실은 그분이 궁금했던 걸까. 그러다가 하루는 도저히 못 참고 오래 묵힌 물음을 조심스레 입 밖으로 꺼냈다.


 ​“저기… 그동안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혹시 컬러링으로 나오는 노래가 무슨 곡인가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한 듯 잠깐의 정적 후 대답이 돌아왔다.


 ​“아… 존 레논의 ‘Love’요.”​


 “감사합니다. 매번 궁금했거든요. 이제야 알게 됐네요.”​


 “네에… 그러셨구나.”


 “네, 네. 어… 음… 감사합니다. 러브네요 러브, 진짜. 좋은 노래네요.”


 궁금증은 풀렸지만 이상하게 혀는 풀리기는커녕 꼬이기만 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해답도 풀 수 없어 전화를 바삐 끊었다. 잠깐만. 대타 부탁하려고 전화를 걸었던 건데 내가 그 말을 했던가, 안 했던가.


 그때만 하더라도 팝을 잘 모를 때라 비틀스 존 레논의 노래는 ‘Imagine’ 정도만 알던 나. ‘Love’ 역시 그만큼이나 한국에서 인기 있던 곡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 이름이 예쁜 선배 알바님 덕분에 알게 된 ‘Love’는 이후로 한참 동안 내 플레이리스트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역시 사랑이라는 건 리얼이고 필링이고 터치고 리칭이고 애스킹이고, 그리고 너와 나다. 사랑, 러브, 당신과 나. 자못 인생의 대단한 진리라도 깨달은 양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되새김질하듯 계속해서 반복해서 들었다. 그 노래가 시들해졌을 때 즈음엔 서점 알바를 그만두고 취업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분께 전화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 혹여나 ‘통화연결음으로 우연히 이어진 우리 사랑’ 이야기 같은 걸 기대했던 거라면 읽는 분께 죄송하다. 그분은 나와 같은 남자였으니까. 그리고 매출이 점점 줄어들던 ㄱ 서점은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다시 문을 열었고, 지금은 고시촌 구석진 곳에 조그맣게 다시 운영 중이라고 들었다.



아들아, 너 혹시 존 레논이 있던 비틀스라는 밴드를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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