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에 떠나 간 동생을 생각하며
동생이 제멋대로 떠난 지 세 달 만에 꿈에 나왔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고 매일같이 빌었는데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더니만. 마침내.
깨어나서 생각해 보니 실로 이상한 꿈이 아닐 수 없었다. 꿈에서 여느 때처럼 아내와 아이와 함께 집에 있었다. 딩동, 하는 벨소리가 울렸다. 뜻밖의 손님 둘이 들이닥친 것. 바로 문소리 배우와 박완서 작가였다. 둘이 무슨 공통분모가 있어서 같이 왔는지는 당최 모르겠다. 물론 나도 아내도 둘과 전혀 인연이 없다. 여하튼 둘은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아내와는 스스럼없는 사이인 양 너스레를 떨며 말을 주고받았다. 둘 중에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명이 거실에 토하는 바람에 내가 게두덜거리며 바닥을 닦았다. 초저녁부터 이게 웬 난리냐며. 꿈이 여기까지였으면 그저 개꿈이라며 웃어넘겼을 게다.
걸레질을 하는 도중에 동생도 집에 찾아왔다. 생전과 별다를 바 없이 우리는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아내는 설거지를 하는 중이라 나와 아이와 동생, 이렇게 셋이서 한참을 놀았다. 아이는 삼촌이 여전히 재미없는지 썩 좋아하진 않았다. 동생은 아이의 관심을 끌어 보려 부산스럽게 장난감 자동차도 굴리고 그림도 그려댔다. "너네 좀 친해져 봐라. 삼촌, 조카가 왜 이렇게 데면데면해." 농을 쳤다. 그렇게 놀던 중에 고향집에 영상 통화를 걸었다. 부모님은 우리를 보자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놀라면서도 슬픈 얼굴. 이내 젖은 목소리로 외쳤다. "민성아, 니가 우찌 거기에 있노?" "이게 무슨 일이고 대체." 그제야 깨달았다. 아, 맞다. 동생은 세 달 전에 죽었지. 그럼 이건 꿈인가.
동생은 결국 들켜 버렸다는 듯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동생이 왠지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가슴이 활랑거렸다. 가지 말라면서 껴안고 붙잡았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데. 못 가게 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내 입에서 바삐 튀어나온 말은 엉뚱하게도 "민성아, 니 핸드폰 비밀번호 뭐꼬?"였다. 동생은 형은 역시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에프 사."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고는 스르륵 사라졌다. 미처 붙잡을 새도 없었다. 꿈에서 깨서 한참을 울었다. 사랑했다고,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거긴 어떠냐고, 잘 지내냐고.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고작 비밀번호나 물어보고.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한 건가.
어제 법원에서 상속포기 인용 판결이 났다. 청구한 지 두 달이 지나서였다. 동생이 갑작스레 떠나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병원을 개원한 지 몇 달 되지 않았던 때라 대출이며, 엑스레이 등의 의료기기 리스며, 부원장과 간호사들 월급에, 각종 업체들에서 발행한 세금계산서, 병원과 원룸 보증금과 월세를 비롯한 각종 계약들 정리. 병원이 있던 세종과 동생의 집이 있던 대전과 내가 사는 서울을 수 차례 오갔다. 연락이 뜸했던 가족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동시에 필요한 서류도 주고받았다. 한 달 동안 정리한 내용을 보고서 변호사가 놀라워했다.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이걸 다 하셨냐고. "누군가는 해야 되잖아요. 자식 잃은 부모님더러 하라고 할 순 없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동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바빴을 형한테 "정말 고생했다."고, 그 한마디를 하려고 동생이 꿈에 나왔나 보다. 동생 얼굴이 또 보고 싶다. 한 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