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돌 Jun 01. 2024

나는 ABC가 싫어요

다섯 살 아이가 영어를 싫어한다

 “이모 시러!”


 작년 가을, 아이가 열흘 남짓 동안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시도 때도 없는 ‘싫어 공격’을 당한 건 아내의 사촌동생이자 아이에게는 이모뻘인 A였다. A는 아내의 큰고모님의 맏딸이다. 고모님은 푸른 눈의 미국인과 결혼해서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A를 비롯해 세 명의 자식들을 낳았다. 혼혈인 아내의 사촌들은 종종 한국으로 여행을 오곤 한다. 지난 추석 때도 한참을 머물다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여행 왔을 땐 본인들의 외할머니, 그러니까 아내에게는 할머니 댁에 와서 묵는다. 문제는 고모님이 무엇 때문인지 자식들에게 한국말을 전혀 가르치지 않았던 것. 그들을 만날 때마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는데, 이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땐 고모님이 중간에서 통역을 해 주시는데, 그것도 참 부끄러운 모습이고. 아이 역시 나와 같은 기분을 느꼈던 걸까.


 아이는 어린이집을 마치고 나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가, 아내의 할머니인 ‘왕할미’ 댁에 가서 저녁까지 놀다 오는 게 하루 일과였다. 이렇게 되자 A와 아이의 동선이 겹치게 된 셈. 아이에게 며칠 전부터 이렇게 일러줬다. “A 이모 만나면 인사 잘해야 돼. 이모는 한국말을 못 하니까 ABC로 말해야 돼. 하이, 라고. 아니면 롱 타임 노 씨, 이렇게 얘기해도 돼. 아빠 한번 따라 해 봐. 하이.” "그게 뭐야? 하이. 으히히힛." 아이는 자기 입에서 튀어나오는 낯선 말이 우스운지 꺄르륵거렸다. 그리고 A가 한국에 도착해서 할머니댁으로 왔다. 거의 1년 만에, 실로 오랜만에 재회한 A와 아이. 서로 반갑다며 포옹을 했다. 좋았던 순간은 그걸로 끝이었다. 아이는 A가 입을 열자마자 금방 울상을 지었다.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싫어서일까. 그때부터 “이모 시러”의 도돌이표가 시작됐다.


 이모가 왜 싫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똑같았다. "나는 ABC 시러!" 그러니까, A가 영어를 쓰는 게 싫단다. 아니, 아들아. A 이모는 미국 사람이라서 영어 쓰는 거야. 너 미국 알지? 비행기 타고 10시간 넘게 가야 하는 곳. 거기는 ABC로만 말하는 동네라고. 나의 대답에도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ABC가 싫고 그래서 A 이모도 싫다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아니, 진아. 너 타요 유튜브 볼 때 레드, 옐로, 블루, 이런 영어 단어들도 곧잘 따라 하고 ABCDEFG 알파벳도 읽을 줄 알고 자동차 장난감 출발할 때 원, 투, 쓰리도 외치고 '두 유 노우 더 머핀 맨?' 같이 영어로 된 노래도 종종 부르잖아. 영어가 왜 싫은 거야 대체. 아이는 입을 꾹 닫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무슨 개화기 위정척사파도 아니면서 왜 저럴까. 아이의 마음이란 이렇듯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며칠이 지났다. 아이는 결국 매일같이 드나들던 아내의 할머니댁에 발길을 끊어 버렸다. 할미집에는 A 이모가 있어서 가기 싫단다.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A와 같이 밥도 한번 못 먹은 채 하루 이틀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다가 어느새 헤어지는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에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이모하고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이모는 진이 너 좋아하니까 네가 자꾸 싫어하면 안 돼. 아이에게 신신당부하고 길을 나섰다. 프리랜서 포토그래퍼로 일하는 A는 한국에서도 일하느라 바빴기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연희동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식당에서 다시 조우한 A와 아이. 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로 안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식사 시간 동안 둘 다 딱히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았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마침내 A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밝았다. 마침 주말이라 인천공항까지 우리가 데려다 주기로 했다. 며칠 만에 대면한 A와 아이. 아이는 지난 수일간의 모습과는 달리 이모 앞에서 방글방글 웃는 표정을 지었다. A 역시 마음이 풀려 밝게 웃었다. 그동안 낯을 가려서 그랬구나, 하면서. 우리는 즐거웁게 공항까지 차를 달려갔다. 남은 시간 동안 어느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고 간식거리를 먹었다. 그리고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게이트 앞. 이제 한동안 보지 못할 터라 아쉬워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굿바이, 테이크 케얼. 순간 놀라운 장면이 연출됐다. 잠자코 있던 아이가 A에게 다가가더니 꼬옥 안아주는 것 아닌가. 녀석, 그동안 정말 낯을 가려서 그랬구나. A는 감격한 얼굴로 아이에게 한국말로 "안녕"이라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백미러로 뒷자리에 앉은 아이를 흘끗 쳐다보니 내내 신나 하는 표정이었다. 뭐가 그리 좋은 걸까.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 A 이모 좋아하지? ABC도 별것 아니야. 그치?" 내 말을 들은 아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ABC 아직 싫어. 이모 이제 안 봐서 좋아." 그랬구나. 아이는 A를 받아들인 게 아니라 이제 떠나보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던 것이었다. 그렇게나 싫은 영어 역시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돼서 희희낙락한 얼굴이었던 것. 나도 아내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녀석을 어쩌면 좋나. 남들 다 보낸다는 영어유치원에는 발을 들일 일이 없겠다 싶었다. 그래도 걱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제 한참 말을 하고,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데 재미를 붙이는 중이었는데 당최 알아듣지 못할 이국의 말을 하는 사람이 싫었던 게지. 또래에 비해서 우리말을 되게 잘하긴 하잖아.  


 이후로 몇 달이 지났다. 그사이에도 영어와 친해지게 하려는 우리의 시도와 아이의 거부가 몇 차례 되풀이됐다. 다섯 살 정도면 으레 읽힌다는 영어 책을 몇 권 샀다. 세이펜을 갖다 대자 ABC 문장을 비롯해서 영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이는 일순 관심을 보이다 금방 시들했다. 아파트 헬스장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에 진행하는 영어 발레(나는 아직도 영어 발레가 뭔지 모르겠다. 영어로 대화하면서 발레를 가르치는 건지, 동작마다 원투쓰리 혹은 액션, 스탑 뭐 이런 영단어들을 말해주는 건지...)도 끊어봤다.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들도 함께하니 쉽사리 재미를 붙이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딱 두 번만에 아이는 이제 발레가 싫다고 칭얼거렸다. 정말 발레가 싫어서인지 영어가 싫어서인지는, 혹은 발레리노 복장이 싫어서인지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 어린이집 커리큘럼에 주 1회씩 영어 수업 프로그램이 생겼다. 선생님 말로는 아이가 그리 열심히 따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영어를 꼭 잘했으면 하고 소원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농반진반으로 "저는 영어가 싫어서 국어 전공했어요."라며 말하고 다니니까. 한국어든 영어든간에 본인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남들과 원활하게 대화하고 소통하고, 말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가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남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친구들에게 뒤질세라 어릴 적부터 ㄱㄴㄷ을 가르치고 ABC를 시키고, 심지어는 덧셈 뺄셈 곱하기 나누기까지 벌써 배우고들 한단다. 아이의 친구들 중 몇몇은 어린이집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올해부터 유치원으로 떠났거나 동네 영어유치원을 다니거나 학습지 선생님을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네 친구들은 다 하는데 왜 너만 못해, 따위 말을 하면서 아이를 닦달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런 걱정을 접어둔 채 오늘도 나는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빨간 놀이 질 때까지 뛰어논다. 걱정 따위, 아이 바지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듯 탁탁 털어내 버리자.


 종종 주변 사람들이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냐, 어린이집 끝나고 학원 같은 데 다니냐, 한글이나 영어는 어디까지 배웠냐, 사교육을 시작해야 하지 않냐, 같은 질문들을 한다. 그럴 때마다 농반진반으로 대답한다.


 "저희 애는 공부 안 시킬 거예요. 케이팝스타 할 거니까요. 요즘 같은 시대에 공부 잘해서 뭐해요."    




영어 책을 사 준들 별무소용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아저씨는 또 왜 헤어졌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