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난여름에 먹은 것들 (3) : 수제 버거 외 이것저것
1. 수제 버거
그동안 가 보고 싶던 햄버거집이 있어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 셋이서 왔다.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수제 버거집 '레이지버거클럽'. 오픈 시각인 오전 11시에 딱 맞춰 도착했다. 서너 대 정도 댈 수 있는 좁은 주차장에 운 좋게 차를 대고 가게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주말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덕분에 전망 좋은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부암동에 아이 손을 잡고 온 건 처음이지 싶다. 아내와 둘만 있을 땐 이 동네에 자주 와서 걷고 구경하고 먹고 마시고 그랬는데. 부암동뿐이랴. 하루가 멀다 하고 이름난 동네들이며 가게들을 찾아다녔더랬다.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육아휴직 때 아이와 함께 석파정에 나들이하러 온 적 있으니 처음은 아니다. 아이에게 "진아, 너 이 동네 와 본 적 있어."라고 말하니 금시초문이라는 듯 말없이 눈을 끔뻑인다. 다섯 살 인생에게 두 살 때 일이 기억날 리 없다.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문한 버거가 나왔다. 따끈한 버거를 두 손에 쥐고 한 입 크게 베어 먹었다. 버거킹이니 맥도널드니 하는 프랜차이즈스러운 맛도 아니고, 너무 느끼하거나 기름지지도 않은 적당하게 조화로운 맛. 무엇보다 아이가 의외로 잘 먹어서 다소 놀랐다. 동네 버거킹에 가면 빵을 빼고 양상추와 양파도 걷어내고 고기 패티만 깨작깨작 먹는 녀석이 이곳에서는 반으로 자른 버거를 양손에 하나씩 움켜쥐고 먹으면서 "마이써."라고 외치는 것 아닌가. 양파라고는 질색하는 아이인데 여기 어니언링은 또 맛있다며 연신 손을 뻗었다.
그러니까 수제 버거 정도는 돼야 잘 먹겠다는 거지? 대충 아무거나 잘 먹을 것이지 아이가 벌써부터 '맛잘알'처럼 입맛이 까다롭다. 제철에 가장 맛있거나 한 계절 중에 가장 비싸고 귀한 걸 귀신같이 안다. 반면에 맛없는 음식에는 입을 몇 번 대지 않는다. 아이에게 쓰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게 부모 마음이다. 딸 둘을 키우는 H 형도 푸념하곤 했다. "애들은 한우 투뿔 먹는데 저하고 아내는 칠레산 삼겹살 먹는다니까요." 우리 집도 그렇다. 우리가 먹을 걸 줄일지언정 아이 입에 들어가는 건 가격표를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러니 우리 집의 엥겔 지수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달 카드 내역을 보니 죄다 식당이며 먹을거리를 산 것들이다.
2. 치킨과 맥주
초복에는 웬일로 날이 맑았다. 지루한 장마 사이에서 오랜만에 햇볕을 마주한 날. 퇴근하고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다가 밖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름 복날이니까 닭을 먹을까?" 아이 손을 잡고 동네에 생긴 '오늘통닭' 체인점에 들렀다. 서울 3대 치킨집이라는 문구를 써 붙여놓은 곳. 이런 홍보 문구를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그럼 나머지 둘은 어디지. 3대며 5대며 하는 곳들은 누가 선정하는 거지. 삼청동의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에서 단팥죽을 먹을 때에도 첫째로 잘하는 집은 어디길래, 같은 궁금증에 빠졌더랬다.
초복에도 저녁으로 치킨을 먹었는데 중복에도 또 치킨을 먹었다. 역시나 같은 집인 동네 오늘통닭에서. 의도한 바는 아니었는데 어째 그렇게 됐다. 당연히 의도한 바 아니지만 중복 역시 초복 때와 마찬가지로 햇볕이 쨍쨍한 날씨였다. 이쯤 되면 말복에는 과연 날씨가 어떠할 것이며, 과연 우리는 그날 저녁으로 뭘 먹을 것인가. 별생각 없었는데 이제 달력을 보면서 별생각을 하게 될 듯하다. 이렇게 의식하게 되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무심코 세우고 있던 기록이 깨질 텐데. 야구에서도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을 의식하는 순간 안타를 얻어맞는 투수들이 있잖나.
결국 말복에도 같은 집에서 치킨을 또또 먹었다. 초복에도 오늘통닭, 중복에도 오늘통닭, 말복에도 오늘통닭. 게다가 말복날에는 점심으로 닭볶음탕을, 저녁으로 치킨을 먹었다. 어쩌다 보니 대기록을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이건 인간의 입장에서나 멋진 기록이지 닭의 입장에서 보면 무시무시한 학살의 비극적 역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게다. 복날뿐이랴. 1년의 절반 남짓한 기간 동안 야구를 보면서 치맥을, 월드컵이나 올림픽 기간에도 치맥을, 날이 더우면 덥다고 날이 추우면 춥다고 보신용 삼계탕이며 닭곰탕이며 닭한마리를 먹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나 닭을 많이 먹나.
어딘가에서 읽어 본 글처럼 우리는 소위 '인류세'에 살고 있단다. 지질시대의 명칭으로 구분하자면 '신생대-제4기-홀로세-메갈라야절'을 살고 있지만,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1950년대를 기점으로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선 것이라고. 그 지표 중의 하나가 치킨 화석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 해에 물경 650억 마리가 도살된다니 먼 훗날 땅을 파헤쳐보면 우리가 살던 때의 지층에는 닭뼈가 가득할 터. 어쩌면 미래 사람들(은 멸종했을지 모르니 인간이 아닐 수도 있는 지성체들)은 지금의 시대를 닭이 지구를 지배하던 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뼈보다는 닭뼈가 훨씬 많을 테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한여름밤에 먹는 치킨과 맥주는 어찌하려 이렇게나 맛있는 걸까? 무수하게 희생되는 닭한테 미안해지려다가도 미안해질 수가 없다. 미안함을 한 순간 잊게 하는 맛이다.
3. 탕수육
점심으로 짜장면과 짬뽕과 함께 탕수육을 곁들여 먹었다. 탕수육을 먹으면서 문득 오래전 '맹구탕수육'이 떠올랐다.
2000년대 초 관악구의 S대 기숙사에 살았던 대학생이라면 모를 리 없는 맹구탕수육. 사장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올 때마다 문 앞에서 경례를 하며 "맹.구!" 라고 외치는데 그게 이 집의 시그니처 구호였다. 마치 박진영이 자기 노래 앞에다 "제왑피."를 읊조리는 것처럼. 동기들과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맹구를 시켜 먹었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었다. 다들 어찌나 많이들 주문하는지 맹구 사장님은 S대 학생들 덕분에 건물주가 됐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리고 건물을 올리자마자 탕수육집을 접었다고 했다.
그때의 우리는 늦은 밤에 야식을 얼매나 먹어댔는지 모른다. 저마다 갹출한 돈으로 시킨 탕수육이며 치킨이며 피자며 떡볶이며, 기숙사 식당에서 팔던 치즈라면 등등. 야심한 밤, 잠자리에 들기 아쉬워서 싸이월드 파도타기를 하고 있을 때면 띠링, 하고 문자가 왔다. "야식 콜?" 기다렸다는 듯 다들 한 자리에 모여 먹을 걸 주문했다. 그렇게 먹어도 살이 찐다거나 소화가 안 된다는 걱정 따윌랑 없었다. 먹는 중에도 배가 고팠고, 먹고 나서도 배가 고팠고, 다음날 저녁에도 역시나 배가 고파서 먹을 것들을 찾았다. 청춘이었다.
엊그제 같이 밥을 먹던 후배 K가 말했다. 나이가 들었다는 거, 맛있는 걸 먹을 때마다 느낀다고. 예전에는 맛있는 게 눈앞에 있으면 배가 터져라 먹어댔는데, 이제는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될까?', '몸에 안 좋은 거 아닌가?', '이런 거 먹으면 밤에 운동해야 되겠지?', '올해 초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가 안 좋았는데' 같은 걱정이 앞선단다. 그래서 젓가락을 쉬이 놀리지 못하겠단다. 음식을 먹는 순간들에서도 때때로 나이 듦이라는 걸 느낄 수 있구나 싶다.
4. 돈가스
동네에 자주 가는 돈가스집이 있다. 실은 돈가스집은 아니고 '부산아지매국밥' 체인점 가게인데 왕돈가스를 판다. 이곳에서 아내와 나는 돼지 국밥이나 매운 다대기를 넣은 밀면을 먹고 아이는 돈가스를 먹는다.
어제도 늘 먹던 걸 먹으러 갔는데 공교롭게도 돈가스 재료가 다 떨어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밀면과 국밥을 시켰다. 아이는 국밥의 고기를 건져 먹으면서도 돈가스의 부재에 툴툴거렸다. "그럼 우리 내일 맛있는 돈가스 먹으러 갈까? 차 타고 30분만 가면 돼." 아이는 당연히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종로구 성북동의 오래된 가게인 '금왕돈까스'였다. 우리도 여기에 얼마 만에 오는 건지. 아이를 낳기 전에 종종 왔으니까 마지막으로 온 게 벌써 4년은 훌쩍 넘었다.
오랜만에 먹는 경양식 돈가스의 맛은 여전했다. 먼저 나온 양송이 수프도, 등심과 안심 돈가스와 함박도, 케첩과 마요네즈를 버무린 양배추 샐러드와 완두콩과 마카로니도, 그리고 먹다가 느끼할까 봐 하나씩 껴주는 매운 고추 하나도. 변한 것 하나 없이 예전 그대로였다. 우리는 변했는데 여기는 변하지 않아서 왠지 고맙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옛날 스타일 돈가스집을 아이도 좋아하려나. 잠시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아이는 여기 정말 맛있다면서 입에 갈색 소스를 묻혀가며 열심히 먹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먹히는 맛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저런 바람들이 생겨난다. 그중 하나, 아이가 우리 손을 잡고 자주 들렀던 가게가 오래도록 영업하는 것. 그리고 훗날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 자기 아이, 우리에게는 손주, 를 그곳에 데리고 가면서 "여기가 아빠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자주 오던 데야." 하고 알려주는 거다. 꼬마 손주는 기대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는다. 이내 나온 밥이 맛있다며, 할부지가 맛있는 데를 알려줬다며 좋아라 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코끝이 찡해지는 장면이다. 그런데 아이가 비혼주의자면 어떡하지. 억지로 손주 낳아달랄 수도 없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