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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Dec 31. 2024

간짜장엔 계란 후라이지

우리가 지난여름에 먹은 것들 (5) : 간짜장 외 이것저것

1. 간짜장


 오랜만에 연희동 중국집 '이품'에 들렀다. 성시경이 본인의 유튜브 채널 <먹을 텐데>에서 소개한 탓에 줄이 너무 길어져서 한동안 못 갔던 곳이다. 아이도 오랜만에 들른 곳이 좋았는지 입구에서부터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 지난번에 왔을 때 두꺼운 옷 의자에 걸었잖아." 시간이 금방 흘러 지금은 반팔옷을 입는 때가 된 지 오래다. 


 늘 먹던 대로 간짜장과 탕수육을 시키고 오므라이스도 하나 주문했다. 중국집에서 웬 오므라이스,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게 참 별미다. 시쳇말로 '근본'에 가까운 중식 볶음밥을 맛볼 수 있어서다. 오늘날의 중국집들에서 나오는 볶음밥은 하향 평준화된 느낌이 든다. 뜨거운 불에 고슬고슬하게 볶았다기보단 대충 레인지에 데웠음직한 눅눅한 쌀밥, 성의 없이 던져 넣은 냉동 칵테일 새우 몇 개, 이도저도 아닌 밋밋한 맛이라서 곁들여져 나오는 짜장 소스를 부어야만 겨우 입에 넣을 수 있는 이런 음식이 대체 왜 볶음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나.


 이품의 오므라이스는 그 따위 흔하디 흔한 볶음밥과는 다르다. 불맛을 진하게 풍기는 진짜 '볶은' 밥 같은 맛이 나서 입에 군침이 돌게 한다. 나보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도 숟가락을 쉬지 않는 걸 보면 맛있기는 맛있나 보다. 게다가 밥 위를 덮은 계란 이불까지 덤으로 딸려와서 운 좋게 1+1 상품을 획득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기름에 튀긴 듯한 계란 후라이(표준어는 '프라이'지만 아무래도 말맛이 살지 않는다)를 올려줬음 더 좋겠는데, 그러면 모양새가 오므라이스라고 부르기엔 조금 이상할 게다.


 계란 후라이를 보니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간짜장을 먹었을 때가 생각난다. 앞에 놓인 그릇을 보니 어째 허전했다. 이유인즉슨 후라이와 오이채가 올려져 있지 않았던 것. 아무래도 뭔가 잘못됐다. 주방장께서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이 중요한 걸 빼먹나. 하지만 동석했던 이들은 별말 없이 후루룩 면발을 삼켰다. 왜 아무도 "이의 있습니다!" 하며 잘못된 일에 항거하지 않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간짜장이 왜 이래?" 사람들도 나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가?" 답답해하며 반문했다. "아니, 짜장면 위에 프라이가 없잖아." 일순 정적이 흘렀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그날 중국집에 있던 사람들 중 나를 빼곤 아무도 후라이가 올려진 간짜장을 먹어 본 이가 없었다.


 훗날에야 알게 됐다. 간짜장에 후라이를 얹어주는 곳은 부산과 경남, 그리고 인천 정도밖에 없다는 것을. 해당 지역 출신 외 사람들 중에서 몇몇은 후라이까지는 몰라도 삶은 메추리알이라든지 채 썬 오이가 올려진 걸 목격한 바 있다고는 했다. 비단 간짜장뿐이랴. 서울 친구들과 순대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다니. 아무리 기다려도 함흥차사인 쌈장을 기다리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전라도에서 온 친구들이 콩국수에 소금이 아니라 설탕을 치길래 기함했던 적도 있다. 아내가 아직 여자친구이던 무렵, 돼지국밥을 소개하면서 경상도에서만 부추를 정구지라고 부르는 걸 깨닫기도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맛과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종종 사람들의 푸념을 듣는다. 예전의 맛을 내는 음식을 찾기 어려운 시절이 됐다고. 볶음밥과 간짜장뿐만 아니라 양념 치킨이나 떡볶이나 김밥 같은 음식들에 대해서도. 온갖 종류의 양념들과 재료들과 비법들과 개성이 더해졌음에도, 옛날의 투박하던 그 맛을 잊지 못하겠다고, 아무래도 그때 그 맛을 못 잊겠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다들 근본이 어쩌고 추억이 어떠니 하면서 아직 예전의 모습이 남아있는 집들을 찾아다니나 보다. 나 역시 면발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주는 내 마음속의 '진짜' 간짜장을 찾아 오늘도 서울의 중국집들을 헤매고 다닌다.






2. 군만두


 회사 근처 만두 맛집이라는 '칭찐'을 다녀왔다. 직접 빚는다는 군만두는 과연 맛집 타이틀을 따낼 만한 맛이었다. 그릇에 놓인 만두가 하나 둘 사라질 때마다 아쉬울 정도였다. 해물 짬뽕은 큼지막한 전복을 비롯한 해물들 덕분에 시원한 맛이 났다.


 실은 이곳에는 지난주에도 왔었다. 가게 문 앞까지 왔다가 되돌아갔는데, 주인장께서 연평도에 봉사 활동 가느라고 문을 닫아놔서였다. 군 장병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러 가니 며칠간 양해 바란다던 안내 문구가 걸려 있었다. 다행히 이날은 영업 중이었다. 테이블에 앉아 군만두를 찍어 먹기 위한 간장을 앞접시에 붓다가 접시에 써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양시 봉사단체 '다운회'. 아마 사장님께서 속한 이 동네 봉사 모임인 듯하다. 지난주에는 다운회에서 가는 봉사 활동에 함께하신 거겠지. 


 만두를 한 입 베어 물며 생각했다. 이렇게나 장사가 잘 되는 집을 며칠간 닫는 손해를 감수하고 누군가를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그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말 그대로 돈 한 푼도 안 되는 일을. 요즈음 만나는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과 하는 대화의 주제는 거진 돈이다. 이를테면 누가 어디에 투자해서 많이 벌었다더라, 무언가 하려 하는데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런 거 뭣하러 하나 돈도 안 되는 것을, 그럴 돈이 있으면 미국 주식이나 사, 같은 말들. 엊그제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B 과장의 말에 누군가 답했다. "그거 학비 낼 돈으로 엔비디아 투자를 했었어야지." 다들 와하하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지만 속으로 씁쓸했다. 왜 모두가 돈 이야기만 하는 걸까.


 그렇다고 돈이 싫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 그러더라. 돈에 관심 없다는 사람 믿지 말라고, 그런 사람이 바로 사기꾼이니 조심하라고 했다.






3. 삼계탕


 어느 날부턴가 삼계탕을 못 먹게 됐다. 벌써 10여 년 정도 됐다. 


 2015년 여름, 뜻하지 않게 결핵에 걸려 며칠 입원했다. 결핵균이 말썽을 부린 탓에 폐에 물이 차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등에 구멍을 내고 호스를 집어넣은 후 물을 빼냈다. 퇴원하고 6개월가량 결핵약을 먹었다. 약은 독했다. 주황색 오줌이 나오고 간 수치가 나빠졌다. 다행히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폐에는 결절 같은 흔적이 남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입맛도 변했다. 몸을 보하려고 닭죽을 먹었는데 임산부도 아니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역해서 도무지 삼킬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닭죽도 백숙도 삼계탕도 입에 대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치킨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았다.  

 

 이제는 조금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세월이 흘렀으니 입맛도 변했을 터. 어릴 적에는 도저히 삼킬 수 없던 생선회나 추어탕, 가지나물 같은 것들을 이제는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나.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최근에 닭한마리도 먹어보고 삼계탕집에도 가 봤다. 닭한마리는 먹을 만했다. 칼칼한 국물을 곁들이니 맛이 괜찮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었다. 삼계탕 역시 잘 먹었다. 큼직한 살덩이를 소금에 찍어 먹고 국물도 남김없이 들이켰다. 하지만 후에 탈이 났다. 배가 아파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고 소화가 안 돼서 머리도 지끈거렸다. 괜히 먹었다 싶었다. 아무래도 닭은 치킨으로만 먹어야겠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 둘 줄어들 때마다 슬퍼진다. 나이 듦을 방증하는 것 같아서.






4. 스키야키


 아이에게 음식 중에 뭐가 제일 좋으냐, 물어보면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아이스크림, 젤리, 초콜릿, 과자." 

 "아니, 진아. 그런 거 말고 밥 먹을 때 먹는 반찬." 

 내 말에 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자신 있게 외친다. "꼬기!" 그렇다. 성장기 아이라면 모름지기 고기를 먹어야 한다. 육식을 금하는 절에서조차 동자승들에게는 고기를 먹인다더라. 


 여하튼 고기는 구워 먹어도 삶아 먹어도 졸여 먹어도 튀겨 먹어도 데쳐 먹어도 다 맛있다. 지난 주말에는 연희동 '유우'에서 스키야키를 먹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고기를 달짝지근하고 뜨거운 국물에 데쳐 먹는 곳. 날계란에 찍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배가 된다. 매번 느끼지만 참 맛있는 곳이다. 늘 먹던 스키야키와 함께 직원분이 앞에서 토치로 바로 구워주는 타다키도 먹었다. 아이에게 뜨거운 물에 데친 고기가 좋아, 불에 구운 고기가 좋아, 하고 물어보니 당연 후자란다. 아이에겐 고기는 구워야 제맛인가 보다. 그리고 탄수화물이 빠지면 섭섭하니 칼국수로 마무리도 했다. 


 이날은 허리를 다쳐 한동안 바깥나들이를 못 하시던 아내의 할머님도 함께였다. 한 달 넘게 병상에 누워만 계셨는데 이제는 거동이 가능하시다. 허리에 보호대를 두르고 지팡이를 짚고 조심스럽게 한 발 두 발. 식사를 마치고 할머님이 조심스레 움직이셨다. 양 옆에서 부축을 받아 일어난 후 벽을 짚고 한 걸음 두 걸음.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짚은 뒤 역시나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걸으시자 아이가 옆에 붙어서 "옳지 옳지, 잘한다." 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고작 다섯 살짜리가 90살이나 더 먹은 분께 걸음마 코칭이라니. 그 모습에 다들 한바탕 웃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저 혼자 걸음마도 못 하던 것이, 이제는 증조할머니더러 잘 걷는다며 칭찬을 한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음에도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라고, 어른은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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