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아빠, 그 아빠의 아빠, 그렇게 모든 아빠들

대답하기 곤란한 아이의 질문에 대해

by 김돌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아빠의 아빠는 누구야?"


아이에게 답했다.

"설, 추석 때 진주 내려가잖아. 진주 할아버지가 아빠의 아빠야."


아이는 적이 놀란 듯 되물었다.

"할아버지가 아빠의 아빠였다고? 그럼, 엄마의 아빠는?"

"종종 분당 가잖아. 거기 외할아버지가 엄마 아빠지."

"그럼 진주 할아버지의 아빠는?"

"너는 본 적 없지. 아빠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

"그럼 그 사람 아빠는?"

"아빠한테는 증조할아버지인데, 나도 본 적 없어."


아이는 계속해서 물었다.

"아빠 증조할아버지도 아빠가 있었겠네?"

"그럼. 모든 사람은 다들 아빠가 있지. 그래서 태어났지."


그렇게 대화가 종료되는 듯했는데 아이는 뜻밖의 질문을 했다.

"왜 그렇게 이어가는 거야? 왜 계속해서 태어나는 거야?"


일순 대답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다가 대충 얼버무렸다. 세상이 점점 더 재밌어지니까 살아보고 싶잖아. 내가 못 한 걸 다음 사람이 이어서 하면 되니까. 혼자서 나이 들고 죽으면 외로우니까. 너처럼 귀여운 아이를 키우고 싶으니까. 계속 안 낳았으면 우리도 자연사박물관에 해골만 남아서 전시되고 있지 않았을까. 생명체는 원래 그런 거야, 너도 낳고 싶어질걸. 뭐라 답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몇 해 전, 아이를 낳기 전, Y 과장의 말에 기함한 적 있다. 아이를 왜 낳아야 하냐는 말에 날 닮은 자식으로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 아닌가. 나는 아이가 무슨 당신의 '백업본' 같은 거냐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돌이켜 보니 Y는 양반이다. 꼰대로 악명 높았던 K 부장은 이런 말을 했다. 네가 애를 낳아야 내가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지. 다음 세대를 본인의 노후 생활의 작동을 위한 '건전지'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교회를 다니는 친구 몇몇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어쩌구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차라리 먹고 살기 힘드니까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라는 '이기적'인 이유를 대면 이해하겠는데.


작년에는 아이의 "나는 어떻게 만들어졌어?"라는 질문에 한참 고민했다면, 올해는 "아이를 왜 낳는 거야?"라는 질문에 고민하는 중이다. '어떻게'보다 '왜'에 답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아이를 낳았을까. 여섯 살 아이의 아빠이면서, 심지어 아이 키우는 이야기로 책까지 냈으면서, 이제서야 또다시 하는 생각이다. 물론 답은 못 찾았고, 오늘 하루도 '그냥' 살고 있다.




2.jpg 국립고궁박물관, 태조 이성계의 어진들
1.jpg 엄마, 아빠,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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