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굴소스 볶음밥

(7) 고기 남기면 벌 받는다

by 김돌


구운 고기가 남아버렸다.
내 평생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늘 배고팠던 학생 시절, 고깃집에 가면 가끔 그런 상상을 했다. 불판 위의 고기를 남기는 순간이라는 게 존재할까? 에이, 설마. 세상에 누가 고기를 남겨. 벌 받는다 벌 받아. 지갑에 돈이 모자라서 더 이상 고기를 시키지 못하고 대신 공깃밥에 찌개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돈만 벌어봐라, 고기로만 잔뜩 배를 채워야지 어디 감히 쌀밥 따위 탄수화물로 배를 불리나. 딱 두고봐. 돈 벌면 오직 고기로만 끼니를 때우는 황제 다이어트 할 거야. (어디서 듣기로는 그 다이어트법 창시자께서는 성인병으로 죽었다더라)

그런데 어제 저녁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데 수북하게 남은 삼겹살을 도저히 더 이상 못 먹겠는거다. 그때 그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렸나보다. 진짜 열심히 먹었는데 너무나도 배가 부르다. 배불러 미치겠어 정말. 한 살 두 살 나이 먹을수록 소화 기능은 반비례하며 떨어지고 있으므로, 억지로 다 먹었다간 큰일이 날 듯하여 저녁 식사를 마무리했다. 그렇다고 남은 고기를 버릴 수가 있나. 벌 받는다 벌 받아. 일단 냉장고에 넣어두자.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지난 밤 치열했던 삼겹살의 잔해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뜨거웠던 불판도, 지글거렸던 소리도, 코를 자극하던 고기 내음도 모두 흘러간 추억처럼 남아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문득 떠오르는, 혹은 기어코 발견하고야 마는 옛 기억의 흔적 때문에, 다시금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가서 추억 속을 걷게 된다. 고작 남은 고기 몇 덩이일 뿐인데 어젯밤의 기억을 이렇게나 생생하게 환기시키는구나. 어젯밤 참 좋았지 우리.

그나저나 비닐 지퍼백에 소중하게 모셔놓은 모습을 보니, 옛 이집트인들이 왜 미이라를 그리도 정성스레 만들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되도록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려 애썼을거다. 저의 삼겹살도 새 생명을 얻어 다시금 멋진 요리로 부활하실 거라 믿사옵나이다.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밥만 먹지 않는다. 당연히 국물도 끓여야한다. 마침 고향집에서 보내주신 재첩국 봉지 하나가 냉동실에 잠들어 있었다. 얼음을 꽝꽝 깨서 냄비에 욱여넣고 약한 불에다 살살 녹여본다. 얼음을 깰 때마다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샤론 스톤이 위스키에 넣을 얼음을 송곳으로 깨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 송곳으로 얼음만 깬 게 아니라 정사를 나누던 남자의 가슴팍도 콱콱 찌르고. 사방에 유혈이 낭자하는데, 그만, 여기까지. 밥 먹어야 하는데 입맛 떨어지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국 끓이기에 집중하자. 물 속에서만 살던 재첩과, 땅을 딛고 살아가던 돼지가 내 입 속에서 곧 만나게 된다. 그들은 각자의 운명을 상상이나 해 봤을까. 이런 데서 만나게 될 줄. 내 덕분인 줄 알아, 이것들아. 마담뚜가 된 기분이다.





자아. 본격적인 고기 조리 시간이다. 고민이 시작됐다.

1. 고기를 그대로 다시 굽는다.
2. 고깃집에서처럼 김치와 고기와 밥을 볶는다.
3. '제3의 길'을 모색한다.

으레 하던 것처럼 삼겹살 김치 볶음밥을 할 수도 있었다. 안전한 길을 가는거다. 하지만 그러고싶지 않다. 이상하게도 요리를 시작하면 뭔가 색다른 것,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것, 나만이 시도하는 것, 같은 그런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어진다.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같은 대책없는 낙관주의자가 되는 거다. 엊그제 센터장과의 식사 자리에서였다. 그는 덕담 비슷하게 직원들의 장점에 대해 평하기 시작했다. S는 일이 정확하고 빠르다, H는 일에 능숙하고 의사소통 능력이 좋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대해 거침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일이든 요리든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지레 겁 먹을 필요 따윈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냉장고에서 눈에 띈 굴소스를 활용한 요리였다. 삼겹살 굴소스 볶음밥. 그런데 따져보면 김치가 굴소스로 바뀐 것 빼곤 2번과 썩 다를 바 없는 요리다. 언제는 뭐, 새로운 걸 좋아하니 즐기니 그러더니만 결국 거기서 거기잖아. 여하튼 일단 고기를 잘게 썰어놓는다.




이제 양념거리를 준비한다. 오늘 제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이금기 굴소스, 그리고 나머지 부추, 대파, 다진 마늘까지. 오늘의 재료들은 단출하다. 그런데 굴소스병에 떡하니 이름이 써져있는 '이금기' 아저씨는 누굴까. 굴소스 살 때마다 이 아저씨 이름을 보는데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겠다 싶었다.





파를 송송 썰어서 재첩국에도 넣고 잘게 자른 삼겹살 위에도 흩뿌린다. 준비했던 부추도 양껏 넣어준다. '부추', 라는 말이 아직도 어색하다.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고 부른다. 우리 동네에서는 정구지라고도 부르질 않고 '소풀'이라는 말을 썼다. 소가 먹는 풀인건가. 소가 먹기엔 아깝지. 부추가 맛도 좋고 몸에도 좋고, 거시기, 그 남자한테도 얼매나 좋은데, 허허.





다진 마늘도 넣고. 마지막으로 굴소스!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계량은 모르겠고 적당히 붓고 적당히 볶아본다. 나도 이제 감이라는 게 조금은 생겼다.





고기 볶는 냄비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나올 때 즈음 쿠쿠가 밥을 완성했다. 밥 짓는 일을 할 때 "취사를 시작한다", "뜸을 들인다", "증기를 배출하니 조심하라", "맛있는 밥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중간 중간마다 진행 경과를 큰 목소리로 보고한다. 쿠쿠 이 녀석, 웬만한 직장인들 못지 않은 바람직한 업무 수행 태도를 지녔구나. 이런 기초적인 것도 제대로 못 해서 동료들을 힘들게 하는 직장인들을 종종 본다. 쿠쿠보다 못한 놈들.


어떤 사람은 알아서 해야 할 일을 척척 해 내고, 다른 어떤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줘도 못 알아듣고 엉뚱한 소릴 해댄다. 교육과 훈련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기본적인 '일머리'라는 게 다들 다르더라 정말. 이건 학벌이나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왠지 빠지면 섭섭한 참기름으로 볶음밥을 마무리한다. 화룡점정이다.





깨소금까지 뿌리니 제법 그럴듯한 요리처럼 보인다. 깨소금은 맛을 내는 데 있어 특별히 주연 역할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없을 땐 잘 모르겠는데 있을 땐 왠지 맛을 북돋아주는 그런 역할?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있을 때도 없을 때도 눈에 띄는 존재일까, 있을 땐 잘 몰랐지만 없으면 허전해지는 존재일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일까. 고작 깨소금 하나에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한 상 차림 뚝딱 완성. 잘 먹겠습니다아. 맛은 제법 그럴듯하다. 삼겹살에 굴소스에 참기름까지 넣고 볶았는데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내 요리에 대해, 영화평론가 박평식처럼 박한 평가를 하는 아내도 이번에는 인정했다. 충분히 먹을 만하다. 10개 만점에 별 7개 정도는 되는건가 그럼. 실은 별 거 없었던 볶음밥이었지만 나름 괜찮았다 자평한 일곱번째 요리였다. 인류와, 역사와, 그리고 내 요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곱번째 요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