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전

(6) 결국은 파국이었다

by 김돌


오랜만에 김치전에 막걸리가 땡겼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쌀쌀한 바람이 부는 계절도 아닌데. 먹은 지 꽤 돼서 생각이 나는건가. 근데 이런 거 먹으면 살찌는데. 어떤 연예인이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먹고싶죠? 먹어봤자 아는 맛이에요. 아내에게 이 말을 똑같이 해 줬다. 그거 어차피 아는 맛인데 굳이 먹어야 할까? 그러자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는 맛이니까 먹고싶지, 모르는 맛이면 먹고 싶은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듣고보니 그 말이 맞다. 그럼 우린 오늘 그냥 우리가 아는 맛의 맛있는 걸 먹고 그냥 살찌는걸로 하자.




재료는 (김치전이니까 당연히) 김치, 부침가루, 고춧가루, 설탕, 간 마늘. 인터넷에 찾아보니 부침가루에 밀가루를 섞어주면 더 바삭하고 맛있다는데 어째 집에 밀가루가 없다. 아니, 밀가루가 없을 리가, 이상하다 이상해. 내가 요리할 때마다 꼭 뭐가 한 두개씩 없는거지 왜.





김치 한 포기 통째로 썰었는데 양을 얼마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럴 땐 그냥 느낌가는 대로. 하지만 그 느낌이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나중에야 알게 된다. 수백 수천년간 이어 온 레시피라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하찮게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아아.





부침가루에 미지근한 물을 붓는다. 찬물보단 더 좋을 것 같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는데 찬물을 넣는 게 쫄깃한 식감을 살려주기 때문에 더 좋다고 하더라. 그리고 썰어 둔 김치를 부어넣는다. 김치가 좀 많은 것 같지만 괘념치 않기로 한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나중에 발생할 대참사 이전에 분명 이런 자그마한 시그널들이 있었던거다. 나는 왜 무심코 이런 느낌들을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던걸까.





간마늘도 넣었다. 감칠맛을 기대해본다. 그러고보니 모든 요리에 마늘을 넣고있다. 드라큐라 따위 우리집에 얼씬도 못할게다. 마늘이 초록색인 건 상해서가 아니라 다른 뭔가도 들어갔기 때문이다(라고 추정해본다). 뭔진 모르지만 여튼 그렇다고 한다. 아내의 할머님께 받아온 거다.





고춧가루와 설탕도 넣는다. 그러고보니 희한하다. 한국 사람들 고추에 환장한 거 아니냐. 고춧가루 들어간 김치찌개 먹으면서 반찬으로 생고추를 또 고추장에 찍어먹는 걸 보면 과연 고추의 나라임이 틀림없다. 계속 고추 고추 거리니까 좀 이상하다. 설탕을 왜 넣어야하는진 모르겠지만 아내가넣어야 한다고 훈수를 뒀다. 탑골공원서 장기두는 영감님들 옆에서 뒷짐지고 훈수두는 영감님처럼. 이건 아니다 이 백종원류야, 라고 외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넣으라면 넣어야지. 나중에야 알게 됐다. 김치전에 설탕은 꼭 넣어야 하는거구나. 돌이켜보면 아내 말을 들어서 틀린 게 하나 없다.





두근두근. 이제 기름 두른 팬에 반죽을 부어볼까. 긴장돼서 왠지 배가 아파온다. 새로 산 커다란 후라이팬은 반죽이 잘 들러붙는 재질이라 짜증난다. 그래서 자그마한 계란말이용 팬에다 굽기로 했다. 정체성의 혼란이 올 지 모른다. 이건 계란말이가 아냐, 김치전이라고. 단순히 외형 때문에 본질이 흔들려선 안 된다. 사람은 보이는 것에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 이 보잘것없는 감각의 동물이여.





반죽을 팬에 잘 펼쳐서 굽다가, 얍얍, 뒤집기 성공.





어휴, 이건 좀 탔네. 가끔 상상한다. 과거의 언젠가로 돌아가서 두번째 삶을 살게 된다면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히지만 두번째로 구운 전이 첫번째 것보다 시커멓게 타버린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최종 다섯 장의 김치전이 탄생했다. 김치전이 네모나니까 무척 낯설다.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네모난 침대, 네모난 티비, 네모난 테이블, 모든 게 네모난 세상에서 우린 네모난 김치전을 먹는다. 세상을 둥글게 살아야 한다더니만 네모만 가득한 하루였네.





아내가 사 온 막걸리와 함께 취식. 갑자기 마트로 달려가더니 아내가 사 온 건 장수막걸리 두 통이었다. 한 통만 사지 뭣하러 두 통이나 샀어, 하고 물어보니, 한 통은 섭섭하니 두 통을 샀어, 라고 한다. 과연. 사랑스럽다.





한 장 먹고나서 아내의 한줄평.

"조금 많이 짠데?"

굳이 '조금'과 '많이'를 붙여 말한 건, 아마 나에 대한 배려와 함께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솔직함, 이런 모순 상황에서 고민 끝에 나온 힘겨운 표현이라 보여진다.


나도 동감했다. 김치를 너무 많이 넣었나보다. 이건 뭐 밥 한 숟가락에 김치 한 포기씩을 찬으로 먹는 느낌이다. 어우 짜. 설탕 안 넣었으면 큰일났겠네. 오늘 밥상은 보건복지부에서 싫어할 것 같은 나트륨 대폭발 상이다. 파국이다 파국이야.


다음번엔 각 재료의 양 조절을 잘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 오늘은 요리왕으로의 대장정에서 한 걸음(아니, 수십 보는 될 듯) 후퇴한 날이었다.



여섯번째 요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