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아들의 출산이 머지 않았기에 건강 잘 챙기라고 보내셨다고 한다. 잘 먹고 잘 쉬고 종종 산책도 하고 있다며 안심시켜 드렸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늘 걱정스럽기만 한가보다. 자식이 대학도 졸업하고 취업도 하고 결혼까지 한, 이제는 다 큰 어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보이시는 걸까.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항상 걱정이시다. 우리도 곧 아이를 낳게 되면 자나깨나 자식 걱정하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그래도 아이에게 너무 집착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무관심하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길 바라 본다. 아내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인생을 사는 거고, 아이는 자기 자신만의 삶이 있는 거지. 우리가 낳았지만 우리 소유는 아니야."
아내의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자식에게 무언가 바라지도, 소위 효도라는 걸 기대하지도 않아야 하고 알아서 잘 크게 내버려 두기만 하면 부모로서의 우리 역할은 끝나는 걸까.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라는데 부모라는 이유로 투자 대비 효용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바라면 않고 마냥 주기만 해야 하나. 아직 아버지가 되기 전이라 그런지, 합리적 경제인이라도 된 양 다른 모든 조건은 동일하다고 가정한(ceteris paribus) 뒤 개인 대 개인, 타인으로서의 아들과 내가 주고받을 것들, 그것의 숫자들만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슬쩍 돌려본다. 순식간에 몇 억 원의 숫자가 머릿속을 스쳐간다.아직 아버지가 되려면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기만 하면 다들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변하고들 말던데, 나도 결국에는 그렇게 되겠지. 그렇더라도 아이에게 지나치게 애착을 가지지는 않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여하튼 며칠이 지나 완도에서 먼 길 지나 오셨다는 전복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거 조금 이상하다. 아이스박스에 담겨있던 봉지를 뜯었는데 전복이 아직 살아서 꿈틀거린다. 으아아아아아아. 아내가 기겁을 하고 물러선다. 아니, 이게 뭐야. 이 정도 장거리 여행을 했으면 고운 자태 유지한 채 가만히 저 세상으로 돌아가셔도 될 것을 왜 아직까지 질긴 목숨 부여잡고 있는 것이냐. 겁이 많은 아내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오늘은 내가 짜파게, 아니, 전복 요리사가 될 차례다. 자그마한 벌레 하나도 무서워서 못 잡는 사람한테 생 전복을 맡기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그나저나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출산은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전복 손질이라는 걸 평생 해 본 적이 없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솔이나 칫솔로 박박 문질러야 된단다. 뭘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궁시렁거리면서 칫솔질을 해 봤는데 꼬질꼬질한 때가 한가득 벗겨진다. 씻기 전의 전복은 엄청 더러운 아이였구나.
사람도 그렇고 전복도 그렇고 꾸미면 확실히 다른 법. 나도 출근날 아침에 전복처럼 누가 씻겨주고 입혀주고 꾸며주면 좋겠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사무실로 나가는데도 너무 힘들다. 재택근무 할 땐 세수도 하지 않고 잠옷도 그대로 입은 채 블루투스 스피커에 음악을 켜 두고 방귀 북북 뀌고 하품 쩍쩍 해 대며 편하게 일하는데, 출근이라는 행위가 이렇게나 힘든 거였다. 고기를 아예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 본 사람은 없다더니 전염병 때문에 뜻밖에도 금단의 열매 맛을 알게 되어버린 것이었다.이러다가 나중에 주5일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얼마나 힘들지. 상상하기도 싫다.
때 빼고 광 낸 후 껍데기와 속살을 분리해본다. 가장자리에 칼을 넣어서 혹은 숟가락을 집어넣어서 떼어 내라는데, 이 작업을 하려면 손에 엄청 힘이 들어간다. 전복 껍데기에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그렇다고 살살 하자니 제대로 떼어지지가 않고 세게 하자니 (나름 고운 내) 손을 다칠 것 같고. 전복 손질이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하나 없다. 게다가 내장까지 제대로 쑤욱 빼내기가 너무 어렵다. 아내도 나도 내장을 선호하지 않으니 일단 버려둔다. 저거 내장하고 살하고 다 넣어서 전복죽 해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힐텐데, 쩝.
(두 번째 전복 손질 땐 기어코 손가락을 베어서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고무장갑을 꼈어야 했다)
전복 껍데기만 분리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요기 베라가 말했고 레니 크라비츠가 부른 것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이빨과 식도를 분리해야 손질이 완전히 끝난다. 그런데 난 그 사실을 몰랐지. 왠지 뭔가 흉칙해 보이는 게 있길래 마구잡이로 잘라냈다. 나중에야 이빨이 있다는 걸 알고 전복을 살펴보는데 이미 다 잘라낸 후였다. 어떤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서 직진하는 게 성공으로 이르는 길일 수도 있다, 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거 아입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지지난 대선 때 많은 사람들이 MB에게 표를 던졌고 모두가 알다시피 결국 결과도 좋지 못했다.
그러니까 과정도 공정하고 결과도 정의로워야 한다 이거다. 기회도 평등하면 더욱 좋은 거고.
꼬질꼬질하던 까만 전복이 환골탈태했다. 메이크업 좀 받았다고 이렇게나 달라질 수가. 신수가 훤해진 전복을 보면서 반성하게 된다. 나도 좀 꾸미고 살아야지 이거 뭐, 아재도 아니고 너무 자기관리 안 하면서 살고있네. 아차 하는 순간에 아저씨 되는거야.
이제 겨우 재료 손질만 끝났을 뿐. 다음으로는 요리를 할 차례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칼집을 예쁘게 냈다. 가로 세로 날줄과 씨줄 무늬처럼 스윽 스윽 스윽. 분명 전복 손질 중인데 갑자기 벌집 삼겹살이 땡긴다.
모든 재료가 준비되었다. 오늘은 사실 요리랄 것도 없다. 팬에다 버터를 두르고 전복을 굽기만 하면 된다. 통마늘이 없으니까(어째 내가 요리할 때마다 집에 한두 개씩 재료들이 꼭 없더라) 간마늘을 좀 보태고 대파도 숭숭 썰어 넣으면 끝. 아주 간단한 전복 버터구이다.
볶는 과정은 생략. 사진 따위 찍을 정신이 없었다. 휴대폰 사진첩에 남아있는 건 버터 녹이는 사진뿐.
그리고 처참한 실패.
버터와 간마늘과 대파, 그리고 전복을 함께 구웠건만 어찌하여 이런 맛이 날 수가 있나. 이건 전복 맛도 대파 맛도 아니라 그냥 다진 마늘 향과 맛만 물씬 풍겨내는 희한한 요리다. 어째 마늘을 너무 많이 퍼 넣었다 싶더라. 반 숟갈만 넣는다는 게 그만 나도 모르게 쑥과 마늘만 먹으며 백일을 버틴 곰의 후예가 아니랄까봐 엄청 퍼 넣었나보다. 뒤늦게나마 계량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지난번 김치전 때도 그러더니 아직도 이러고 있다.
한 입 맛보더니 아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게 전복구이야 마늘구이야?"
이럴거면 그냥 버터에다 전복만 구우라고 한다. 뭣하러 쓸데없는 양념들을 추가했냐며 질책이다.
그래도...
아직 신에게는 여섯 마리의 전복이 남아 있사옵니다.
다음번 전복 요리는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비장한 각오를 해 본다. 재택근무 하면서 요리도 자주 하는데 어째 실력이 점점 더 퇴보하는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V자 곡선을 그리면서 금세 반등할 줄 알았더니만 '닥터 둠' 루비니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급전직하의 I자 곡선을 그리면서 끝모를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면 안되는데. 쓰읍, 이러면 나가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