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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y 08. 2020

노인을 위한 마스크는 없다

코로나19 시대의 일상적인 필수품들. 손 소독제, 알코올 소독약, KF마스크까지
물도 꼭 끓여먹게 되고
커피보다는 왠지 면역력에 더 좋을 것 같은 차를 마신다

Nikon FG-20

Nikon Series E 50mm f1.8 lens

Kodak colorplus 200

2020년 2





 평범한 우리역시 '코로나 블루'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의 삶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모두에게도 코로나19 이전의 삶과는 확연히 다른 삶의 양태가 펼쳐질 것. 

 예전보다 손을 잘 씻게 되고 공공장소에서는 지나친 접촉을 조심하는 등 위생 관념이 철저해질 것이고, 저 인간이 마스크를 썼는지 기침을 하지는 않는지 연신 의심의 눈초리로 보다 보 타인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의 연대감이 느슨해질 것이며, 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앞으로 닥쳐 올 경기 침체와 실물 자산 가격 폭락이 얼마만큼의 충격일지는 상상조차 못 하겠고, 이에 따라 노인이나 장애인, 긱이코노미 종사자, 절대 빈곤층, 그리고 영세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팍팍해진 삶의 무게에 고통받게 될 터이다. 이런 와중에 나 역시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 혼자서라도 살아 남아야겠다'더욱 가열차게 각자도생을 삶을 도모는 중이다. 부정적인 내용떠올리는 것 같다. 이놈의 전염병이 뭐라고  할 것 없이 모두의 밑바닥을 이렇게나 드러내 주고 있다.

 재택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회사 동료들과도 현재의 코로나 시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 나는 지금이야말로 지긋지긋한 도시 생활에서 탈출할 '귀농의 기회'라는 역설적인 생각을 설파했더랬다. 


 "농! 이게 이른바 뉴노멀이 될 거라니까요."


 타인과의 접촉전히 두렵고, 그렇다고 언택트(이 표현 콩글리쉬라고 하더라. 논콘택트 혹은 콘택트리스라고 써야 한다고)온라인 쇼핑이나 배달이라고 오롯이 믿을 수 있겠느냐. 그 물건들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든 뭐든 무언가가 어떻게든 묻어올 수밖에 없다. 결국 언젠가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날이 도래할 수도 있 거다. 그렇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공동생활과의 연결고리를 끊은 채 홀로 원의 단독주택에서 텃밭을 일구며 완전 자급자족삶의 양식이 각광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것이야말로 공동체로부터 완벽히 유리어 오롯이 자유롭게 된 '진정한 개인'의 삶 아닐까.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윌 스미스나 <마션>의 맷 데이먼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니까요. 안 그래요? 혹시 감자 좋아해요? 그거 싫어도 매일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정감록> 들어봤죠.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다는, 정씨가 왕이 된다는 예언서. 환란이 일어났을 때 그걸 피할 수 있는 십승지라는 곳이 있대요. 나중에 지리산 깊은 골짜기 같은 데 들어가감자 농사 짓고 삽시다."


 이런 쓸  없는, 농담이라기엔 너무 서늘하고 담이라기엔 너무 가벼운 들을 주고받고 있다.




 지난달엔 난생처음 마스크를 사기 위한 줄이라는 걸 서 봤다. 맛집이나 놀이공원 줄을 섰던 적은 많았는데 이런 건 정말 처음이다. 소에 마스크 따위, 폐병 걸린 영감님들이나 쓰고 다니는 거지, 하며 우습게 봤었는데 물량 부족으로 정해진 요일에 줄을 서야만 살 수 있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죄다 품절이니 어쩔 수 없이 아내와 함께 공적 마스크를 사러 나왔다.

 마침내 리 회사도 재택근무를 시작한 첫째 날, 아침 9시채 되기 전에 집 앞 약국으로 달려 나갔다. 숫자 4로 끝나는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우리 부부가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있는 목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이미 줄이 한참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앞에 선 사람들의 머릿수를 세어 본다. 어림 짐작으로 봐도 너무 많다. 우리 오늘 마스크를 살 수는 있는 걸까. 이게 무슨 2020년 원더키디의 해에 맞이하는 세기말적 풍경인지. 예전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배급날 풍경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빈 깡통이라도 들고 있었면 무료 급식소에서 줄을 선 노숙자들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행히도 마스크 2개를 살 수 있었다. 귀하디 귀하신 마스크님이셨다.


 임신부인 아내의 걱정이 극에 달했던 . 래서 약국 원정을 마치고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손수 제조한 알코올 소독액을 넣은 분무기를 옷이며 신발이며 이곳저곳에 뿌려야 다. 손은 비누칠해서 30초 이상 꼭꼭 씻고, 휴대폰 겉면에도 손소독제를 발라서 쓱쓱 닦아줘야 했다. 아내는 심지어 약국에서 현찰을 내고 거슬러 받은 천 원짜리 지폐에마저 소독액을 뿌려 말다. 볕에 오징어 말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람. 어딘가의 마늘밭 구석에 숨겨 둔 돈다발 항아리가진 적 없었기에 소독액에 젖은 돈을 말리는 건 평생 처음으로 보게 되는 광경이다.




 그날 오후에는 약을 하나 사려고 약국에 또 들렀다. 웬 할머니 한 분께서 약사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다. 구구절절 무언가를 설명하시는데 이 할머니 때문에 또다시 약국 창구에는 줄이 길게 생겨나는 중이다. 마스크를 사러 오셨다는 할머니. 슬쩍 주민등록증을 보니 이 분은 오늘 구매불가능하다. 게다가 이미 한참 전에 동이 나서 품절이라는 안내문을 걸어 놨음에도 막무가내로 마스크를 내놓으라면서 실랑이를 벌인다. 약국 직원들은 아무리 설명해드려도 도무지 알아듣질 못(않) 하시니 꽤나 난감한 표정었다.

 "마스크 하나만 주면 안 돼? 나는 나이가 많아서  못 서. 줄 서 있다가 감기 걸리면 큰일 나. 감기 걸려서 병원에 가고 싶어도 마스크 안 썼다고 못 오게 해. 그러지 말고 마스크 남는 거 하나 있으면 좀 줘. 좀 달라고."

 우리가 다른 창구로 가서 물건을 사는 동안에도 직원분께 한참이나 하소연을 하던 그 할머니. 결국 참다못한 어느 약사 한 분께서 자기 가방에서 마스크를 하나 꺼내 진상 손님손에 쥐어준다.

 "이거 제가 마트에서 산 건데 그냥 하나 가져가세요. KF 어쩌고 하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부직포 마스크인데 이거라도 쓰세요 일단. 그리고 어르신은 주민등록상 모레 날짜에 구매 가능하시니까 아침 일찍, 8시 반쯤 오셔서 줄 서시면 돼요. 아니면 대리자가 와서 대신 살 수도 있어요. 가족분 있으시죠?"

 "아니, 없는데. 가족 없어. 나 혼자 살아. 그냥 내 것만 미리 하나 빼놓으면 안 돼? 줄 서다가 감기 걸리면 나는 그날로 바로 죽을지도 모른다니까."


 기어코 마스크를 하나 얻었음에도 할머니의 요구는 점점 더 과해졌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저 영감님 너무한 거 아니야. 남들은 무 한가한 나머지 도무지 할 게 없어서 아침 일찍부터 줄 서 있. 나이 들었다고 마냥 우기면 다 되는 줄 아나. 화문 태극기 부대 영감들하고 다를 게 뭐야. 그런 생각이 들어서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또다른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훗날 나이를 먹고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노인이 되 저러지 않을 수 있을까. 고장 난 몸은 마음먹은 대로 따라주지 않고, 스마트폰이니 인터넷이니 하는 새로운 것들은 아무래도 익혀지질 않고, 그렇다고 따뜻하게 보살펴 줄 누군가도 곁에 없고, 젊은 애들은 혹여나 자기 몫을 뺏길까 봐 곱지 않은 눈초리로 흘겨본다면. 늙음이라는 게 잘못에 대한 벌도 아닐진대 마치 벌을 받는 듯한 나날들을 살아야 한다면. 나 역시 저렇게 되지 않을까. 소설가 김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월은 무자비한 불도저처럼 인간의 얼굴을 밟고 지나가며, 아무도 그 불도저의 궤도 자국을 피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그러니까,

 노인을 위한 마스크는, 그리고 나라는 없다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씁쓸했다. 가는 길엔 약국의 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내는 공무원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께 직접 마스크를 가져다주면 되지 않냐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공무원들이 그렇게나 수가 많을 리가, 폭증하는 업무로 과로사하는 분들도 생겼던데. 도 의견을 덧붙였다. 그러고보면 그동안 홀대받았던 돌봄 노동자들이 좀 더 대우받아야 돼. 어느 정도 물량이 확보되면 이런 기다림이 사라지려나. 대체 어느 세월에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게다가 다들 사재기하려 몰려들지도 모르고. 독거 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마스크를 여러 장 살 수 있게 하면 안 될까. 그러면 혹여나 남들에게 되팔이 하는 부작용 같은 게 생기려나. 것저것 재지 말고 아예 전 국민 일괄 무상 공급 같은 건 어떨까. 그러면 '무상'이라는 단어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누군가들이 난리치겠지. 둘이서 이런저런 대책을 고민해 봤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은 둘이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시간은 어느덧 흘러 마스크를 파는 곳도 여기저기 늘어났고, 저렴한 공적 마스크도 1인당 3개씩이나 살 수 있게 됐다. 약국에서도 기나긴 줄 따위 서지 않아도 된다. 그때 그 할머니는 이제마스크 사는 방법을 잘 알게 되셨을까. 잘 사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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