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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05. 2021

집밥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마지막으로 외식했던 때가 언제였더라?

Samsung af slim zoom 70s

Samsung zoom 35-70mm auto macro lens

Kodak colorplus 200 film

2020년 4월





 그날의 '토론 아닌 토론'은 아내와 저녁을 먹던 중 시작됐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보는지라 시간이 늘 부족하다. 아이가 깨어있을 땐 같이 놀아준다. 혹은 이유식을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을 시킨다. 아이가 잠들었을 땐 우리도 따라서 자거나 쉬어줘야 한다. 그때가 아니면 도저히 쉴 수가 없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건 언감생심. 당연히도 식사를 위해 밑반찬을 만든다거나 근사한 요리에 공을 들일 여유 따위는 없다. 그래서 요즘엔 집 근처 반찬가게에서 찬거리를 사 와서 미리 해 둔 밥과 함께 먹는다. 밀키트 제품도 다양해서 간단히 끓이거나 볶기만 하면 제법 그럴싸한 요리를 먹을 수도 있다. 너무 피곤한 날엔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는 것조차 힘들어서 배달을 시킨다. 요즘엔 배달이 안 되는 게 없더라. 원래 배달이 됐던 치킨이나 짜장면 등은 물론이거니와 닭갈비, 돼지국밥, 쌀국수, 심지어 도넛 몇 개와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도 거실 소파에 누워 손가락만 몇 번 놀리면 주문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루 세 끼를 다 챙겨 먹는 건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재택근무가 잦은지라 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집에서 먹는데 이것 참 쉽지가 않다. 게다가 식사 도중에 아이가 잠에서 깨거나 혼자 있기 싫어 칭얼거리기라도 하면 식탁을 박차고 나가야 하니 신속하게 식사를 끝내야 한다. 아이를 낳기 전엔 식탁보를 펼친 뒤 반찬마다 예쁜 그릇에 담아 먹곤 했다. 이제는 플레이팅이라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다. 모든 반찬은 커다란 접시 하나에 죄다 몰아 담는다. 조금이나마 설거지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남은 반찬은 내 밥그릇에 쏟아부은 뒤 한데 비벼 먹는다. 국 요리는 사치스러운 음식이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날 저녁에 찌개를 만들어 놓거나 밀키트 육개장, 소고기뭇국 등을 끓여 먹었다. 지금은 밥그릇 옆에 냉수 한 잔 떠 놓는 게 바로 국물이다. 하긴 밥조차도 한 끼는 전기밥솥에서 갓 지은 걸 먹지만 다음 끼는 냉동실에 얼려뒀던 공깃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고 있으니 어딜 감히 국물'님'을 바라겠나.


 그날 역시 반찬가게에서 사 온 찬들을 접시 하나에다 펼쳐놓고 다급하고도 전투적인 식사를 하던 참이었다. 밥을 열심히 씹다가 별생각 없이 아내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이걸 '집밥'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당연히 집밥이지."


 아내가 당연하다는  대답했다.


 자신 있게 집밥이라 확신하는 아내를 보니 왠지 시험에 들게 하고 싶어졌다. 집밥이라는 게 대체 뭐지. 집에서 먹는다고 다 집밥은 아니잖나. 지금의 식사는 밥만 집에서 안쳤다 뿐이지 반찬들은 모두 밖에서 사 온 건데. 다시 한번 아내에게 물었다. 


 "그럼, 어제저녁에 지코바 치킨을 시켜먹었어.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남은 양념에다 밥을 비벼 먹었어. 이때 아침으로 먹은 건 집밥이야? 아니야?"


 "그건 집밥이 아니지."


 역시나 자신감에 찬 대답이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치킨 양념을 반찬 삼는 게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먹고 있는 찬은 반찬가게에서 사 왔고 치킨 양념은 배달을 시켜서 받았다. 둘 다 밖에서 들어온 건 매한가지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또다시 아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식사도 반찬은 지코바 양념치킨처럼 밖에서 들어온 거고 밥만 집에서 한 건데 이게 집밥이라고?"


 "음... 그렇긴 한데. 반찬은 한식이라 치킨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건가? 그리고 반찬가게에서는 직접 반찬을 만드는 거잖아. 집밥이라 부를 만한 손맛이 들어간 거지."


 "만약에 반찬가게가 체인점이라서 아침마다 공장에서 완제품 반찬들을 받아오는 거라면?"


 "그렇다면 그건 집밥으로서의 반찬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아까의 지코바 양념밥에다가 집에서 끓인 김치찌개를 곁들였어. 그건 집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면 집밥이라고 할 수 있지. 직접 만든 찌개가 곁들여졌으니까."


 이제는 아내의 목소리에서 점점 더 확신이 옅어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문답을 통해서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게 하고 진리에 이르게 했다던데. 우리는 어째 대화가 이어질수록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삼시세끼 먹어왔던 집밥이라는 건 대체 뭘까.


 "그럼 조건을 바꿔서, 체인점이 아닌 손으로 직접 만드는 개인사업자 가게에서 사 온 반찬이야. 그런데 여기에다 햇반을 같이 먹으면 이건 집밥일까 아닐까?"


 "그건 집에서 지은 밥이 없으니까 집밥으로 부르기가 좀 그런데. 사람 손으로 만든 반찬이 있더라도 햇반 따위가 껴있으면 집밥으로 쳐주기 어렵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대답하는 아내. 혼란스러워한다. 나 역시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여태껏 나온 내용으로 정리를 해 보자. 소위 '집밥'이라 부를 수 있는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집에서 직접 쌀을 씻고 안쳐서 지은 밥이 필요하다. 거기에다 치킨이나 피자 같은 배달 음식이 아닌 한식 느낌의 찬이나 국이 곁들여져야 한다. 그런 반찬들 역시 반찬가게에서 사 왔다면 공산품이 아닌 누군가의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어야 하고. 만드는 사람의 손맛 혹은 정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들어가야 그제야 집밥이라고 할 수 있는 게다.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서 서둘러 식사를 재개했다. 아이가 자고 있을 때 빨리 밥을 먹어야 하는데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대화는 금세 끊어지고 쉴 새 없이 수저를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식탁에 남았다.


 나름 치열했던 토론이 끝났음에도 '집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다시금 빠졌다.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창궐한 탓에 지금처럼 오랜 시간 집 안에 있는 것도, 집밥을 이렇게나 많이 먹어본 때가 또 없었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 하루 세 끼를 다 챙겨먹는 게 얼마만인가 싶다. TV 예능 프로그램 <삼시 세끼>에서 타인이 식사 준비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건 재밌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곧바로 점심거리를 준비해야 하고, 점심 설거지가 끝나기가 무섭게 저녁 걱정에 빠지며 좌충우돌하는 꼴이 웃겼다. 하지만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되니 전혀 우습지가 않다. 매일같이 무얼 먹어야 하나, 어떡하면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을까, 우리 몸에 좋기나 한 걸까, 먹고 나서 정리를 얼른 끝낼 수 있을까, 이렇게 밥 한 끼 먹는 행위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그리고 먹으면 먹을수록 어째 집밥이라는 존재가 어색하다. 막연하게 '어머니의 따스한 된장국' 같은 게 집밥이라고 여기면 편할 것을, 괜한 생각으로 인해 나와 집밥은 서로 데면데면해지고 말았다.


 비단 집밥뿐일까. 그동안 익숙했다 생각했던 것들은 낯설어지고, 낯설었다 생각했던 것들은 오히려 친숙해지는 역전의 시대를 살고 있다.


 회사에서는 그동안 일일, 주간, 월간 회의를 모여서 해야만 일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지 않더라도 메일, 메신저, 줌을 통한 화상회의로도 충분했다. 처음엔 다들 낯설어했지만 금방 적응해갔다. 오히려 불필요한 사담이 사라져서 회의 시간이 짧아지고 업무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회사 사람들만 그렇게 만난 게 아니다. 친구들과도 꼭 함께 모여 술을 마셔야만 소통이 가능한 건 아니었다. 영상으로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누고, 기분이 그리 나진 않지만 화면에다 대고 술잔을 짠ㅡ 하고 부딪힐 수도 있었다. 만나는 방법은 달라졌지만 나누는 이야기는 여전히 변함 없었다. 재택근무를 하면 출근할 때보다 훨씬 나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출퇴근의 경계가 희미해지니 일을 하는 것도, 쉬는 것도 아닌 애매한 기분이 하루 종일 계속됐다. 게다가 나는 업무에 육아까지 병행하니 집에 있는 게 더 고역이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TV를 많이 보게 됐다. 그동안 TV에는 재밌는 게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켜고 나면 볼 게 없어서 한참이나 채널을 돌려댔다. 결국 티빙과 웨이브 정기 구독권을 끊어서 더 재미난 걸 찾으려고 애쓴다. 아직까지 유튜브 프리미엄은 결제하지 않았는데 조만간이지 싶다.


 그리고 가장 극적으로,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갑작스레 경계를 넘어온 건, 역시 마스크와 손 소독제 아닐까.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그런 건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이나 쓰는 물건들이었는데 이제 집집마다 필수품이 되었다.


 갑작스레 낯설어진 집밥만큼이나 희한한 나날들이다.






+덧 1 : 아 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 글을 쓴 건 반찬 투정을 부리기 위해서는 아니다.


+덧 2 :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최근의 식탁 사진들. 그래도 나름 잘 챙겨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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