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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ul 07. 2021

얀센 백신 맞는 아저씨들

코로나 19 백신 접종 맞고 온 날, 여름 햇살이 어찌나 좋던지.

Canon QL17 g3

Canon 40mm 1:1.7 lens

Kodak proimage 100 film

2021년 6월



소아과에서 주사를 맞았더니 뽀로로 밴드를 붙여줬다. 아이, 좋아.




 까똑.

 까똑 까똑.

 까똑 까똑 까똑 까까까까까똑.


 이른 아침부터 카카오톡 알림이 정신없이 울렸다. 휴직하고나서부턴 벙어리 삼룡이라도 된 양 하루 종일 별 말 없던 휴대폰이 웬일이람. 간밤에 무슨 난리라도 났나 싶어 바삐 화면을 켜 지난 알림들을 확인했다. 곳저곳의 단체 톡방에서는 숫자들이 여러 개 떠 있었다. 내용인즉슨 6월 1일부터 30세 이상 예비군, 민방위, 군 종사자 등은 얀센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단다. 해당 백신은 한미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은 100만 명 분의 코로나 19 백신이라고. 고향 친구, 대학 동기, 회사 동료들은 "예약을 했냐", "언제 할 거냐", "이거 맞아도 괜찮냐" 등의 문답으로 열띤 대화를 이어갔다. 그나저나 우린 아직까지 민방위가 끝나지 않은 30대 아저씨라서 이런 혜택도 받는다. 국가는 제 마음대로 젊은 남자들을 끌고 가더니, 역시나 제 마음대로 이런 뜻밖의 선물도 준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뜻밖의 고립감에 몸서리치던 참이었다. 일터에서 매일같이 만나던 사람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집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옹알거리며, 문화센터니 맘카페니 동네 모임이니 하는 곳들은 대다수가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참석하기 때문에 나 홀로 외딴섬에 갇힌 듯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이라고는 하나 없는 시간이었다. 이런 와중에 울리던 톡 소리는 단순한 알람 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예전에 속해있던 세계에 대한 연결고리가 아주 끊기지는 않았음을 증명하는 동아줄과도 같은 소리였다. 백신 접종 대상이라는 소식보다 더 반가웠던 건 내가 알던 사람들과의 연락이 다시금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지인들과 신나게 '상호작용'을 즐기고 난 후 백신 접종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다. 설마 이 나라에 백만이나 되는 장병들이 있겠냐마는 서둘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내 차례가 오지 않을 수도 있. 다행히 집 근처 소아과 병원에서 며칠 뒤의 날짜로 예약이 가능했다. 그동안 메이저 언론들에서는 화이자가 안전하니, AZ나 얀센 백신을 맞고 사람이 죽었다니 어쩌니 하는 뉴스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화이자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내 또래 친구들은 아무도 그런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딴 말 같잖은 소리 하지 마라고. 일단 맞을 수 있으면 뭐라도 맞아야지. 기자 너네들은 그럼 백신 안 맞을 건가. 젊은 신임 야당 대표도 얀센 맞으러 가던데. 이제는 다들 TV 뉴스나 신문보다는 팟캐스트, 유튜브, 커뮤니티를 더 신뢰하는 시대이다.


 예약 날짜가 돼서 병원으로 갔는데 기묘한 풍경을 마주했다. 아픈 아기라고는 하나 찾아볼 수 없고 죄다 성인 남자들뿐이다. 나처럼 백신을 맞으러 온 민방위 혹은 예비군 아저씨들이다. 아기 울음소리라고는 하나 없는 여기가 소아과가 맞나, 흠칫하게 된다. 기묘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얀센 백신은 한 바이알을 다섯 명에게 나눠서 투약한다고 한다. 그래서 접수한 순서대로 다섯 명을 호명하자 다들 "네!" 하고 외치면서 진료실로 입장한다. 대답하면서 손을 번쩍 드는 사람도 있다. 입장한 후엔 누가 안내해준 것도 아닌데 이름이 불린 순서대로 차례로 의자에 앉는다. "OOO 씨죠? 제 앞자리에 앉으시죠. 저는 뒷 순서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 병원이 아니라 흡사 예비군 훈련장 혹은 논산 훈련소에라도 온 분위기다. 나이 먹은 한국 남자들에게서 자연스레 풍겨 나오는 '통제받은 인간'의 잔향은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다. 어쩌면 K-방역의 성공은 이런 길들여진 인간들로 가득 찬 사회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년 여성이던 의사 선생남성 예비역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하루 종일 이런 모습을 지겹게도 봤을 테다. 역시나 지겨울 만큼 계속했던 말인지 기계적으로 백신 접종에 관한 주의 사항도 줄줄 읊고서는 질문이 있냐고 물어본다. 다들 별다른 질문이 없다. 짧은 침묵이 끝나고서 곧바로 접종이 시작됐다. 그리 대단한 건 없었다. 평범한 주사와 비슷한데 조금 더 따끔하다 싶은 정도. 다만 소아과에서 맞은 보람은 있었다. 주사를 놓은 데에다가 평범한 밴드가 아니라 뽀로로 밴드를 붙여줘서 왠지 더 보살핌 받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분명 20~30분 정도 기다리다 귀가하라는 안내를 들었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스리슬쩍 다들 사라져 있다. 이것 역시 예비군 훈련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말을 잘 듣지만 또한 말을 잘 듣지도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휴대폰에 어플을 하나 깔았다. 몇 번의 간단한 절차를 거치니 코로나 19 백신 접종 확인증을 내려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백신 보유자다. 암행어사 출두할 때 쓰는 마패라도 지닌 양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새 단톡방에서는 또다시 숫자들이 한가득 떠 있었다. 이번에는 주사를 맞은 후의 정보를 공유하는 내용들이었다. "누구는 고열이며 몸살에 시달렸다더라", "다른 누군가는 근육통 때문에 간밤에 한숨도 못 잤다더라", "아프면 타이레놀을 먹어야 하는데 약국에 없으면 비슷한 효과의 다른 약을 먹어도 된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부작용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던데" 등의 대화들이 이어졌다. 아직까지는 친구들 중에 심각한 부작용 증상으로 인해 뉴스 기사에 등장하는 녀석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한창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혼자' 살면서 여자친구도 '없는' C가 걱정됐다. 내 또래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아내와 단둘이, 혹은 아이 하나 둘은 있는 집에서 '함께' 산다. 하지만 C처럼 아직 미혼이라, 혹은 자발적이든 타의로든 비혼이라 외따로 사는 이들도 몇몇 있다. 그들은 우리가 챙겨줄 수밖에 없다. 혼자 자다가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챙겨주랴.


 "야야, 독거노인아. 너네 집 주소 좀 여기다 올려놔라. 너 오늘 주사 맞고 왔다매. 혹시나 밤에 혼자 아프면 어떡하냐?"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무심동로 OO OOO동 OOOO호."

 "내일 아침에 연락 없으면 119에 바로 신고 들어간다. 생존 보고 꼭 해라."


 다음날 아침, 다행히도 별 무탈하다는 C의 생존 알림이 왔다. 간밤에 열이 38도까지 오르긴 했으나 타이레놀을 먹고 잤더니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고. 인에게 아직 고독사라는 건 먼 훗날의 걱정거리란다. 이후로도 며칠 동안 다들 백신 이후의 증상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 혼자 산다', 라는 게 멋기는 하다.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의 노랫말처럼 혼자라는 게 편하고 자유로운 선택과 시간을 누릴 수도 있다. 아내에게는 비밀이지만, 아니,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결혼 전 혼자이던 그때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게 또 없다. 이럴 땐 독신이라는 게 롭고 불안한 삶의 형태이다 싶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닥치지 않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가 함께라면 소아과의 뽀로로 밴드 같이 고마울 텐데. 긴긴 밤 조금이나마 의지가 될 텐데. 이런 시국이 되어서야 새삼 느끼는 사실이다.


 그나저나 나는 백신 주사를 맞았음에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당일 저녁에 약간의 두통을 겪긴 했으나 이건 백신 때문이라기보다는 과식으로 인해 소화가 잘 안 됐기 때문인 듯다. 남들은 흔하게 겪는 고열이나 몸살 기운도 하나 없어서 좋긴 한데, 이건 내가 건강하지 않다는 걸 의미하기도 해서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건강한 사람이 백신을 맞으면 면역 반응이 활발하게 나타나서 이상 반응이 잘 나타난다던데 내 면역력이라는 건 이다지도 형편 없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주변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은 평소에 몸 관리를 열심히 하더라. 30대 아저씨라면 나남 할 것 없이 응당 운동도 하고 약도 챙겨 먹고 틈틈이 병원에 들러 관리도 받고 해야 한다고. 어쩐지. 그래서 나 빼고 다들 주사 맞고열이 났던 거였다. 36.5라는 같은 숫자만 계속해서 뜨는 체온계를 바라보며 그동안 나 혼자 몸이라는 데 소홀했나 싶어 새삼 반성하게 된다.      


 나와 내 친구들, 그러니까 '지금-여기'의 30대 아저씨들은 이렇게 살고 있었다. 뉴스를 보고, 뉴스가 아닌 것들도 보고, 직장에서 일을 하고,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했거나, 슬슬 삐걱거리는 몸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처음 마주하는 낯선 역병이 창궐하는 이상한 시대에서도, 우리의 일상의 날들은 여전히 예전과 별다를 바 없이 흘러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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